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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인턴제, 정말 없어지나요?"

coverstory "인턴제, 정말 없어지나요?"

  • 이은빈 기자 cucici@doctorsnews.co.kr
  • 승인 2011.09.2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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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수련제도 개편 TF서 제도 폐지 가닥
의료계 내부 입장 첨예…부작용 최소화 전문가 의견은?

Cover Story

일정표를 보았다. (중략)…식사시간을 제외하곤 쉬는 시간이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문득 선배님께 들은 얘기가 기억났다. 수술시간이 길면 열 시간도 넘게 걸리곤 하는데, 그렇게 오래 수술실 안에 있다 보면 방광 용적이 터지기 일보 직전까지 이른다는 것이었다.

-<인턴일기: 초보의사의 서울대병원 생존기>(2008, 글항아리) 발췌

서울시내 대학병원 인턴이 업무중 의국원들의 도시락을 나르고 있다.
의사사회에서 통과의례처럼 겪는 인턴 생활을 우스갯소리로 '인내 생활'이라고 한다. 한 달을 단위로 과를 바꿔 다니며 1년을 일해야 하는 프로그램 특성상 인턴이라는 신분을 가진 이들에게는 소속된 과도, 보장된 미래도 없다.

장장 50여년이라는 세월 동안 병원에서 일꾼 역할을 도맡아온 인턴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의사 양성체제를 손질하기 위한 첫 단계로 인턴제도를 폐지하는 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면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인턴기간이 소모적이라는 문제 제기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만 의료계 안에서도 입장차가 커 공론화가 쉽지 않았다.

의사 면허를 가진 상태에서 다양한 과의 진료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인턴제를 옹호하는 입장 이면에는 값싼 의사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병원 경영 측면의 현실적인 이유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턴으로서 배우는 업무는 사실상 1~2달이면 습득할 수 있는 것이며, 이를 위해 1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는 것은 투자 대비 교육적으로 얻는 이익이 적다는 게 일선 의료현장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교수들의 공통된 견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는 최근 발간한 '전문의 제도개선 방안 연구' 보고서(이하 보고서)를 통해 인턴제에 대한 개선책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의학회를 중심으로 왕규창 대한의학회 교육수련이사(서울의대 교수·서울대병원 신경외과)가 책임연구원을 맡은 해당 보고서에는 기존 인턴제의 문제점을 확인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들이 제시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행 인턴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교육적 목적이 결여돼 있는 단순 잡무가 주를 이룬다는 것이다. 인턴의 역할은 시대 변화에 따라 변모해 왔지만 '굳이 의사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점에선 달라진 게 없다.

방사선 검사 후 필름을 찾고 판독을 받는다던가 진단검사지를 찾는 일·검사 예약·장부 정리 등이 과거 인턴의 업무였다면 현재는 PACS·OCS·EMR 등의 보급으로 상당 부분이 전산화됐다.

잡무가 줄었다면 의사로서 실질적인 현장 교육이 강화됐을 법하지만, 환자들의 인식 변화로 인턴이 진료하는 것에 대한 반감이 커지면서 이전보다 더 진료에 관계없는 잡무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수련교육실장은 "지금 인턴제가 질적으로 낭비가 심하다는 것은 교육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알 것"이라며 "남이니까 1년을 어떻게 보내든 말든 부려먹어도 된다고 생각하면 걱정할 게 없겠지만 폐지해야 할 제도임에는 분명하다"고 잘라 말했다.

수련제도 개선 TF 실행계획 공개 예정

각 학회 수련교육이사들은 지난해 8월 첫 공식 모임을 갖고 인턴제도를 축소 또는 폐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모았다. 대형병원 인턴을 레지던트 1년차(New Resident1, NR1)로 전환하고 중소병원은 인턴제를 유지하는 부분 폐지안과 NR1으로 통일하는 완전 폐지안이 제시됐다.

이 가운데 대한의학회가 무게를 두고 있는 폐지안은 후자에 가깝다. 미국과 유사한 서브인턴 수련 제도를 만들고, 일정기간 임상 수련 후에 환자를 진료할 수 있는 자격을 주는 방안이다.

학회 수련교육이사들은 제도를 점진적으로 축소·폐지하는 것보다는 일시에 축소·폐지하는 것이 제도 공존에 따르는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레지던트로 들어갈 수 있는데 인턴 수련을 하는 것은 오히려 무능력자로 낙인이 찍혀 레지던트 수련병원에 들어가는 데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관점에서다.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인턴제 폐지를 비롯한 수련제도 대수술이 실행에 임박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보건복지부를 주축으로 의료계·정부·시민사회단체·경제계 대표들이 지속가능한 보건의료체계를 논의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활동한 '보건의료미래위원회(미래위)'에서는 지난 8월 의료자원 관리 선진화 방안의 일환으로 이 같은 전공의 수련체계 손질을 공식화한 바 있다.

이날 공개된 자료를 보면 임상체험보다 단순 잡무 처리를 주로 하는 등 인턴제도를 통해 실습교육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지 않은 실정을 고려해 새로운 레지던트 과정(NR1)을 신설하는 계획이 나와 있다.

인턴제 폐지로 늘어나는 수련과정 5년에 대해서는 "레지던트의 전문성, 사회의 요구 충족 및 교육체계 효율성을 강화하기 위해 수련기간을 조정한다"고 언급, 폐지와 더불어 획일화된 수련기간 체제에도 변화가 필요함을 시사했다.

미래위의 발표가 강제성을 지니지 않는 선언적 제안에 불과했다면, 체제 개편을 위한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올해 2월 전공의 수련제도 개선 TF를 조직한 보건복지부는 그 동안 4차례에 걸쳐 인턴제 폐지에 대한 각계 의견을 조율했다.

대한의사협회·대한의학회·대한병원협회·대한전공의협의회·보건복지부 관계자와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으로 구성된 TF는 늦어도 내년 초까지 활동을 마무리 짓고 실행계획을 공개할 예정이다.

아직까지 세부적인 합의사항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인턴'이라는 용어가 의료현장에서 더 이상 쓰이지 않게 되는 것만큼은 거의 확정적이다.

정우진 보건복지부 사무관(의료자원정책과)은 "인턴이라는 단어가 없어지는 것이지 장점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인턴이 레지던트 제도에 흡수돼 재편성되는 것은 맞지만, 파장효과가 클 것이기 때문에 TF에서 어떻게 논의해나갈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닻 오른 인턴제 폐지, 불안 요소는 무엇?

전공의 수련제도 개편이 인턴제 폐지로 가닥이 잡히면서 야기되는 불안 요소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턴제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젊은 의사층에서 뚜렷한 찬성 의사를 표시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수도권 보건소에서 근무하고 있는 한 공보의는 "인턴제를 없애는 것 자체는 반길 만한 일이지만, 지금 인턴이 하는 일은 누가 하게 되는 거냐. 전공의 1년차에게 그대로 잡무가 돌아갈지 모르는 일"이라며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이렇듯 폐지 후 후폭풍이 예고된 상황에서 NR1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안착하기 위해서는 어떤 선결과제가 필요할까. 인턴이 없어지면서 낮은 연차의 전공의들에게 불똥이 튀지는 않을지, 업무의 성격은 변하지 않은 채로 인턴이라는 호칭만 사라지는 것은 아닐지, 예상되는 부작용과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책들을 <의협신문>이 짚어봤다.

▷의대 졸업 직후 NR1, 인턴 마쳐도 NR1?

시행 첫해 가장 큰 문제는 1년차 전공의수가 두 배로 늘어나는 것이다. 인턴과정을 마친 의사(R1)와 의과대학 졸업 후 인턴 과정을 밟지 않은 의사(NR1)가 같은 1년차 전공의로 들어가면 위계질서가 깨지면서 혼란이 생길 공산이 크다.

한국의학교육학회는 16일 중앙대병원에서 열린 제1차 졸업 후 교육 심포지엄에서 처음 4년 동안 두 제도(R1, NR1)가 공존하되, 이후 새로운 제도만 남겨 정착시키는 대안을 공개했다.

학계가 목표하고 있는 대로 2014년 새 제도가 전격 시행되면, 4년 후인 2018년부터 인턴을 거치지 않은 NR1을 온전히 선발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이 때 NR1은 학회 재량으로 기존 R1과 교육 프로그램이 달라질 수 있다.

 

<표2> 인턴제도 폐지에 따른 수련안

2010 2011 2012 2013 2014 2015 2016 2017 2018 2019 2020 2021
R1 R2 R3 R4                
Intern R1 R2 R3 R4              
  Intern R1 R2 R3 R4            
    Intern R1 R2 R3 R4          
      Intern R1 R2 R3 R4     `  
        NR1 NR2 NR3 NR4 (NR5)      
          NR1 NR2 NR3 NR4 (NR5)    
            NR1 NR2 NR3 NR4 (NR5)  
              NR1 NR2 NR3 NR4 (NR5)
                NR1 NR2 NR3 NR4

 

▷다른 과 돌면서 진로 탐색할 기회 잃나

고된 인턴 생활 속에서 얻는 보람으로 여러 과를 순환하면서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가질 수 있는 점을 들 수 있다. 학생 임상실습이 부실한 의대나 의전원의 경우 필요한 술기를 습득하기 어렵기 때문에 인턴 과정이 특히 유용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의대 졸업 후 곧바로 과를 정해 레지던트로 들어가면 응급실이나 다른 과의 분위기를 체득할 수 있는 기회가 원천적으로 차단되는 것이 아닐까? 보고서에 따르면 인턴제 폐지 이후에도 이런 순기능이 유지될 수 있도록, 진료과와 개인의 필요에 따라 다른 과 파견 수련이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파견 수련은 반드시 1년차에 국한될 필요가 없으며, 이에 앞서 각 학회별로 타과 순환 교육수련의 틀을 정립하는 과정이 수반돼야 한다. 제도가 안정화되면 진료과 특성에 따라 수련기간을 4년 또는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도 학회 차원에서 추진될 전망이다.

▷레지던트 수련 No, 인턴 원하는 졸업생 어떻게

인턴과정을 생략하고 시작되는 NR1 제도는 의대 졸업 후 레지던트 수련을 원하지 않는 의사들의 수련 요구에 부응할 방법이 없다. 또 레지던트 수련 전 임상경험을 더 쌓고 싶어하거나 선발에 탈락한 경우에도 수련을 받을 수 없는 맹점이 생기는데, 이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것이 일반진료 육성 체제를 별도로 마련하는 것이다.

의학회는 레지던트 수련 대신 일반진료의를 수련하는 병원을 선정, 양성 프로그램을 설계해 일반진료 수련병원 개설에 맞춰 의사자격증과 분리된 진료면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을 구상했다.

내과·소아청소년과·가정의학과 등의 1·2년차 교육만으로 일반의 자격을 부여하거나, 전문과 수련기간을 축소한 후 세부전문의 과정을 활성화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남겨진 과제는

복지부는 이르면 내년 초부터 관련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방침이다.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등에 관한 규정에서 '인턴'이라는 용어를 빼고 TF에서 확정한 개편안이 차례차례 들어갈 것으로 전해졌다.

의학회가 제출한 보고서를 그대로 수용하지는 않겠지만, 논의를 시작한 계기 자체가 의학계 건의로 이뤄진 만큼 의학회가 건의한 내용의 상당부분이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부터 관련 법 개정 등 제반사항을 조성하는 작업에 탄력이 붙으면 애초 새 제도 시행 시기로 잡은 2014년까지 현실적으로 충분히 준비할 시간이 남아 있다.

왕규창 교육수련이사는 "인턴제 폐지는 연구보고서 차원을 넘어 국가에서 실제 적용방안을 고민하는 단계에 왔다"면서 "주무부처에서 체제 개편을 추진하는 동안 학회와 병원, 대학은 교육 커리큘럼을 내실화하는 데 주력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왕 이사는 "인턴으로 들어와 있던 인력이 '과 사람'이 된다. 학회마다 그에 맞는 교육 프로그램을 고민해야 할 시기"라며 "의대 실습교육도 이전보다 활성화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인턴제 폐지와 맞물려 얘기가 나오고 있는 진료보조인력(PA) 양성화와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30~50%까지 늘리는 방안에 대해서도 각계 입장이 첨예한 만큼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기존 인턴이 해온 업무 가운데 상당수가 보조인력에 전가될 것으로 예상되지만 국가 차원의 인건비 지원 등 금전적인 해결책도, PA 도입 여부에 대한 의료계 내부 입장도 아직은 오리무중이다.

김일호 대한전공의협의회장은 "인턴제만 놓고 보면 폐지하는 게 맞지만 인턴제 폐지논의 과정에서 왜 가정의학과 전문의 비율을 늘리려는지 복지부의 의도를 알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김 회장은 "가정의학과가 아닌 다른과 전문의도 일차진료를 할 수 있는데도 굳이 가정의학과 전문의를 늘리겠다면 개원가에서 이들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며 "심각하게 고민해 봐야 할 사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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