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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무시하는 보건행정 언제까지

시장 무시하는 보건행정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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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23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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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훈정(의협 의료정책연구소 연구조정실장)

최근 ESD 사태로 보건복지부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비현실적인 의료수가나 적응증 등은 차치하고, ESD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재료, 즉 수술용 칼에 대한 문제를 우선 짚어보자.

ESD의 급여전환과 함께 보건복지부는 수술용 칼의 급여가격을 9만 원대로 정했다. 그 이유는 수입업체가 원가자료를 공개하지 않아 심평원이 관세청을 통해 얻은 수입가격 자료를 근거로 그 원가를 5만 원대로 산정했기 때문이다.

현재 고시에는 수입 치료재료의 가격 인정 범위를 원가의 1.78배로 명시하고 있어 이를 곱한 금액이 9만 원대라는 계산.

그러나 수입·제조업체는 수술용 칼의 급여가격이 공급가의 30%에 불과해 경영 손실에 따라 공급 차질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심평원이 가장 싼 칼의 가격을 근거로 하였으며, 또 판매가에는 판관비와 R&D 비용이 포함되기 때문에 원가만을 기준으로 급여가격을 정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것이다.

이윤을 우선하는 기업의 주장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것을 감안해도,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킨 공급 중단 사태까지 벌어지게 된 배경에는 극단적 반발을 야기한 정부의 무리수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건강보험 급여가 되기 전 ESD가격은 재료대를 포함, 약 250~300만 원이었으며 그 중 수술용 칼의 공급가는 약 40만 원 선이었다. 그런데 건강보험 수가는 50만원, 칼은 9만원으로 모두 1/4 수준으로 떨어졌으니, 당연히 격렬한 반발이 나올 수밖에 없다.

또 해당 기업은 가격의 감소폭은 물론이고 타 국가와의 형평성도 들고 나왔다. 칼의 공급가격이 일본은 30만 원대, 대만은 50만 원대로서 급여화 이전의 시장가격이 결코 높지 않았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강요할 경우 부득이 철수할 수밖에 없다는 배수의 진을 치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글로벌 프라이스

사실 다국적기업의 '글로벌 프라이스(Global Price)' 주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2009년 대체 불가능한 혈우병치료제 '노보세븐'의 경우 환율 변동에 따른 글로벌 프라이스를 유지하기 위해 대폭 인상을 요구했었고, 정부는 시장철수 압력에 굴복하여 약가를 인상해주었다.

그동안 국내시장에서의 약가 결정은 한 마디로 정부 마음대로였다. 지난 8월 12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약가제도 개편방안'에 나와 있듯이 시장의 수요공급보다는 정부의 '결정'에 의해왔던 것이다.

의약분업 이후 과다 책정된 복제약가로 인해 약품비가 급증한 것도 정부의 결정에 의한 것이고 이를 감당하지 못해 대규모로 인하하려는 것도 오로지 정부의 결정에 의해서다.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일방통행은 복제약 생산에 치중된 국내 제약사들한테나 쉽게 통하는 것이었지 독점적 지위를 지닌 다국적제약사들 앞에서는 번번이 망신을 당해왔다.

'글리벡'의 경우 보건복지부의 약가 직권 인하에 반발하여 소송을 제기, 1심과 2심에서 '국내 글리벡 가격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저 수준이고, 환자 본인부담 절감은 법령상 의무가 없다'는 이유로 제약사가 승소,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즉 정부의 '후려치기 식' 약가 결정은 글로벌 프라이스 등 시장논리를 앞세운 다국적제약사의 반발에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는 시장철수 위협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물론 국민의 입장에서는 약가든 의료수가든 정부가 낮게 책정할수록 그만큼 국민의 부담을 덜 수 있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의료도 엄연한 '시장'이며, 시장 논리를 무시한 일방적인 행정은 필연적으로 큰 부작용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 간 국내 제약사들이 복제약의 거품에 취해 R&D에 소홀히 해온 결과, 대체가 어려운 특허약에 대한 경쟁력을 상실하여 다국적 제약사의 시장철수 압력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약품뿐만 아니라 의료기기나 치료재료도 마찬가지여서, 수술용 칼을 공급하지 않으면 수술을 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지어는 신종플루 위기가 고조된 지난 2009년 8월에는 질병관리본부장이 직접 유럽으로 백신을 구하러 가는 촌극을 빚었다.

이미 5월에 다국적제약사로부터 백신을 구입할 수 있었으나 정부가 지나치게 낮은 공급가를 요구하여 계약이 결렬되었고, 신종플루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지자 비상확보에 나선 것이었다.

당시 언론은 '백신 구걸'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강하게 비판했다. 왜 미리 적정가를 제시하여 백신을 확보하지 못했는가. 예산을 아끼는 것도 좋지만 국민의 건강이 우선 아니었을까.

적정한 가격이 의료의 질을 담보

이제 의료수가의 문제로 넘어가보자. 이번에 보건복지부는 급여가 되기 전에 250~300만 원정도 받던 ESD 수가를 50만원으로 후려쳤다.

그 근거로서 외과의 개복수술 수가와 '형평'을 맞춘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1/4~1/5로 크게 깎인 근본적인 이유는 개복수술의 수가가 원래 형편없이 낮은 것이지 비급여 ESD 수가가 비정상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배를 열지 않고 위의 대부분을 살리는 등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ESD가 개복수술에 비해 지나치게 비싸다고 판단되었다면 환자들이 외면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 입원 기간의 감소와 수술 후 조기 사회복귀 등을 감안하면 그로 인한 국가적 기회비용의 절감은 개복수술과의 비교를 떠나 ESD의 수가를 보다 현실적으로 책정해 줄 충분한 이유가 된다. 환자들도 그것을 알기에 기꺼이 수술비를 지불해왔던 것이고.

그러나 ESD의 수가가 대폭 깎인 채 급여화가 된다면 여러 가지 부작용들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우선 ESD 급여 수가를 정하는데 근거로 삼은 상대가치점수를 생각해보자. 상대가치점수는 업무량(시간·노력 등), 자원량(시설·인력·자본 등), 위험도로 구성된다. 그러면 기존의 술기와는 다른 신의료기술이 등재되고 급여화 될 경우 그 차이를 어떻게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계상할 것인가.

이미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하고 있는 비급여 가격과 사실상 정부가 결정하는 급여가의 괴리를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여타 OECD 국가들에 비해 저평가 되고 있는 업무량과 자원량은 차치하고, 저수가에 반해 높은 의료분쟁 배상의 부담을 안고 있는 우리 의료시장에서 현재 상대가치가 위험도를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큰 의문이다.

단지 기존의 술기보다 점수가 낮아야 하고 그 결과 비현실적인 저수가를 강요받는다고 하면, 난이도와 위험도가 높은 것은 외면 받을 수밖에 없고 따라서 의학의 진보는 이루어질 수 없다.

결국 이번 ESD 수가와 재료대 건 역시 시장가를 무시하고 정부가 무리하게 가격을 낮추려다가 빚은 것이다. 사태의 추이는 지켜봐야겠지만, 더 이상 후려치기 식 의료가격 결정은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말로만 의료산업화를 외치면서 왜 시장을 무시한 보건행정을 고집하는가.

우리 내시경 실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제 경쟁력이 있는 좋은 기술은 마땅히 우대해야 한다. 기존의 상대가치점수 내에서 충분한 수가 보장이 힘들다면 건강보험 가입자들을 설득하여 추가 재원을 마련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국민 건강을 책임 진 정부의 역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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