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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만하는 산부인과 의사란 이유만으로..
분만하는 산부인과 의사란 이유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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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19 1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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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미영(이화다나 산부인과 원장)
인두세라는 것이 있었다. 농노신분의 상징이기도 했던 이 악법은, 14세기 후반 영국의 대 프랑스전쟁(백년전쟁)의 전쟁비용 조달을 위하여 정부가 부과한 인두세에 대한 불만으로 비롯된 '와트 타일러의 난'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힘없는 농노이기에 아무 능력이 없어도 무조건 내야했던 이 인두세는, 그 후 신분이나 직업에 따라 납세 계급을 설정하여 일정한 세금을 떼는 계급세로 변환되기도 했다고 한다. 원시적 조세 형태고 지금은 거의 시행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최근 의료분쟁 조정법 하위 법령 제정과정에서 논의되고 있는 불가항력 무과실 의료사고 보상 재원 마련 안에 관한 내용을 보면서 갑자기 역사 시간에 배웠던 인두세가 떠오르고, 혹시 원시적 형태의 인두세의 부활이 아닌가 하는 불안한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산부인과 의사이기 때문에, 아니 단지 분만을 한다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아무 죄도 없이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사고에 대한 보상 재원 마련에 50%를 감당하라니...이 무슨 현대판 인두세, 신분세란 말인가?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 보상제도는 불가항력적으로 의사의 잘못이 전혀 없이 불가피하게 일어난 불행한 상황에 처한 환자, 즉 국민을 나라가 도와주고자 마련된 법이다. 이러한 법령이 제정되기까지 23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다.이 법안이 통과된 순간, 얼마나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할 수 없이 떠나보낸 그들의 환자들을 기리며 얼마나 기뻐했던가.

이 법안의 본래 취지는 국가가 어려운 상황에 처한 국민을 도와주려는 것이다.

법령에 적혀진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사고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인간으로서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환자는 물론 죄 없는 담당 의사는 환자를 잃은 슬픔에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즉 의사와 환자 모두 불행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어느 피해자인 국민은 도와주고, 다른 피해자인 국민에겐 부담을 떠안기려고 제정된 법은 절대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과실 책임주의 원칙하에 의사가 과실이 있는 경우에는 명백히 그 책임을 묻고 있다. 반대로 무과실인 경우 의사는 어떠한 책임도 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따라서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보상 재원은 반드시 국가 부담 원칙하에 진행 되어야만 한다.

우리나라가 진정 과실 책임 원칙하에 있다면, 법이 모든 국민 앞에 공평하다면 더 이상 불필요한 논의를 중단하고 국가가 보상 재원 전액 부담 원칙으로 결정해야 한다. 분만을 한다는 이유로, 산부인과 의사라는 이유만으로, 아무 죄도 없이 또 다른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산부인과 의사에게 불가항력적 무과실 보상 재원 부담을 강요 할 수도 해서도 안된다.

보상 재원 부담 논의가 50%에서 25%로 되든 또는 10%로 되든 그 의미는 다 똑같다. 단지 분만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재원 부담을 강요하는 하위 법제정이 이루어진다면 이는 대한민국 기본 법 정신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이고, 편협적이고 불공정한 법으로 그 본연의 좋은 취지를 상실하고, 결국 있으나 마나 하는 불필요한 법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다.

저수가 저출산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만이라는 성스러운 직업을 택한 것이 죄라면 그 누가 분만을 계속할 수 있을까? 산부인과 의사들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국민이며 똑같이 보호받고 모든 법 앞에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을 한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칭찬 받기를 바라지도, 그래 본 적도 없다. 다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태어나는 새 생명의 첫 울음 소리에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땀 흘리는 것을 보람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수행해 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국가가 할 일은 국가가 담당해야 한다. 불가항력적 무과실 보상 재원은 국가 부담 원칙 이어야 한다.

더 이상 무리한 요구로 지친 산부인과 의사들의 사기를 저하시키지 말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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