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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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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9.09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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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이혁(대한의사협회 고문 세계결핵제로운동본부 총재)

독서에 관하여는 과거에도 두어 차례 쓴 일이 있지만 요사이 독서에 대한 관심이 한 차원 다르게 느껴진다. 우리들 인생에서 책 읽기가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히 크다. 물론 사람마다 그 사정이 다르기는 하겠지만 지성인에게는 책읽기를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나이 들은 후 젊었을 때 읽었던 책을 다시 꺼내 읽어 보면 참으로 흥미롭다. 젊었을 때 느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무엇인가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1900)를 다시 펼쳤다. 그는 19세기 후반 독일의 철학자다. 아버지는 목사였는데 니체가 6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그는 1858년 프로테스탄트교 학교인 슐포르타에서 고전 교육을 받았다. 졸업 후 본 대학에서 신학과 고전문학을 공부했다.

재학 중 두 사람의 고전학 교수들의 대립 때문에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그는 음악에서 안식처를 찾았고, 낭만파 음악가 슈만(Robert Schumann, 1800-1856)의 영향이 두드러진 곡들을 작곡하기도 했다. 1867년 10월중에 입대했으나 다음해 3월 말을 타다가 가슴을 심하게 다쳤다.

장기간의 병가를 받고 그해 10월 라이프치히대학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그동안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의 철학을 알게 되었고, 오페라 작과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를 만나기도 했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이 발발하자 의무병을 지원했는데 1개월도 안되어 환자를 수송하다가 이질과 디프테리아에 걸렸다.

24세에 스위스의 바젤대학교수로 임명되었지만 교직에 있었던 것은 10년 뿐이며 그 후에는 질병 요양을 위해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저술에 몸 바쳤다.

그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Menschliches, Allzumenschliches>(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978)와<Also Sprach Zarathustra>(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1883-1985)로 학생시절 열심히 탐독했던 생각이 난다.

나이 들어서 이 책들을 다시 읽어보니 니체의 글은 대단히 쉽게 썼음을 다시 알 수 있었다. 칸트(Immanuel Kant, 1724-1804)나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같이 읽기 힘든 철학서적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니체는 어느 의미에서 철학자가 아니라 예술가라고 할 수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니체의 글의 특징은 짧은 경구(警句)와 단장(斷章)·잠언(箴言)이 특징이다.

그의 통찰력은 대단해 급소를 찌르는 시점(視點), 힘찬 생동감, 높은 곳을 향하는 굳건한 의지 등을 나타내는 단문들이기 때문에 그의 저서는 요사이도 잊혀지지 않고 있다.

니체의 철학이라고 할까, 독특한 사상은 칸트나 헤겔과 같이 장대한 체계를 목표삼아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정열적인 문장으로 써내려간 단편이나 단장(斷章)이 많다. 칸트나 헤겔은 자기 학설을 주장하고 철학의 골자로 하고 있지만 니체는 그의 발상을 그저 적었을 뿐이다.

니체는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에서 '허영심의 교활성'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허영심은 참으로 복잡하다. 예컨대 자신의 좋지 않은 성질이나 버릇, 좋지 않은 행동을 솔직하게 털어 놓을 때도 보다 나쁜 부분은 숨겨 놓으려는 허영심이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상대에 따라서는 무엇을 털어 놓을 것인지 무엇을 숨길 것인지에 변화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안목으로 타인이나 자신을 잘 관찰하면,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부끄러워하고 무엇을 숨기고, 무엇을 보여주고 싶어하는가를 명료하게 알 게 된다."

'친구를 만드는 방법'에 대해서는 "함께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기뻐할 때 친구가 생긴다. 그러나 질투라는 것이 친구를 잃게 된다는 점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는 "제 아무리 훌륭하게 보인다 해도, 000를 위해서 행동한다는 것은 비굴하고 탐욕스러운 일이다. 누구누구를 위해서라든지, 무엇 무엇을 위해서라든지 하는 경우 실패했을 때 상대 또는 사정 때문이라는 마음이 생기며, 잘 됐을 때에는 자신의 공적이라고 생각하는 만심이 생기는 까닭이다.

사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행동하는 것이다. 순수한 능동적인 사랑으로 행동할 때는 '…를 위해서'라는 말이나 생각은 나오지 않는다"고 적고 있다.

이 저서에서 니체는 '자그마한 후회도 없는 삶'에 대해 "지금의 인생을, 다시 한 번 그대로 되찾으면 좋겠다는 삶을 영위하라"고 했다.

니체의 글을 다시 읽고 얻은 결론은 과거에 읽었던 책들을 두 번 세 번 다시 읽어보라는 것이다. 독자들은 묘한 향기를 느끼게 되고, 전에 비하여 현재의 시점에서 보는 생각에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된다.

요사이는 인터넷 때문에 책읽기가 전과 같이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인터넷으로는 '지식'은 얻을 수 있지만 '인식'은 얻기 힘들다. 우리는 이 점을 잘 고려해야 한다. 편리하기는 하지만 인터넷으로 인식을 얻는 것은 한계가 있다.

또한 책을 읽을 때에는 "여백(餘白)을 읽으라"는 말이 있다. 본문은 물론이지만 글 속에 담겨져 있는 여백까지 읽는 것이 진짜 책읽기다. 책에는 백지가 있는 경우가 많다. 여백을 읽으라는 이야기다. 그림에도 여백이 많다. 그림의 여백을 읽지 못한다면 진짜 미술 감상가는 못된다.

과거 어머니들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는 습관이 있었다. 책을 읽어주는 어머니가 몹시 인상에 남고 그리워진다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그런데 요즈음 어머니들 사이에서는 이 미덕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니 쓸쓸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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