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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환자를 생각하라"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환자를 생각하라"

  • 김영숙 기자 kimys@doctorsnews.co.kr
  • 승인 2011.09.09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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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맞은 두개안면성형 원조 박병윤 교수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환자를 생각하라. 환자의 말은 항상 옳다."
성형외과의사로서 40년 가까이 환자를 진료하고 수술해온 박병윤 전 연세의대 교수가 후배 의사들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너무 가혹하다는 생각과 함께 혹시나 '나는 옆으로 걷더라도 너희들은 똑바로 걸어라'는 훈장님 말씀이겠거니 하는 의심에 박 교수에게 물었다.

"교수님은 24시간 365일 환자를 생각하셨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기자의 예상을 여지 없이 깨는 것이었다. "그럼요." 그리고 이어지는 당부 한마디. "외과의사들에겐 특히 수술실에 있는 걸 즐기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책을 읽든 인터넷을 하든 수술실에서 했으면 하구요.

또 선배나 동료들의 수술을 보고 이들이 어떻게 일하나 지켜보면서 내 술기를 변화시켜 가는 것에 재미를 붙였으면 해요."

뼛속까지도 외과의사다운 말이다. 그는 그의 말대로 하루 24시간 365일 자신이 진료하는 환자를 생각하다 보니 그의 무의식의 세계까지 지배했다.

▲ 신촌 세브란스병원에서의 마지막 진료를 마친 지난 8월 30일 박병윤 교수가 간단한 짐을 챙긴 뒤 외래 진료실을 나서고 있다. ⓒ의협신문 김선경
"하루 종일 환자 진료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다보면 꼭 아침 꿈에 아이디어가 나타나요. 하지만 깨어나서 얼마 지나면 생각이 안나요. 그래서 머리맡에 메모지를 두고 꿈에서 깰 때 마다 적어봤어요. 처음엔 힘들었지만 고민하고 노력하다 보니 아이디어가 기억이 나더군요.

노벨상을 받을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었지만 소소하나마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를 얻기도 했어요."

1972년 세브란스병원 인턴을 시작으로 1980년부터 의대교수로서의 그의 삶에서 '교육·연구·진료' 중 단연 '진료'에 방점을 두었음을 짐작하고도 남을 이야기다.

지금이야 '성형외과'에 대한 인기가 하늘을 찌르지만 박 교수가 레지던트를 하던 때만 해도 그야말로 '내·외·산·소'의 절대불변(?)의 전통적 선호도가 있던 때여서 당시엔 성형외과를 터부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선배들이 없다보니 환자한테 후유증이 발생하면 문의하고 상의할 데가 없었다"는 그는 두개안면성형외과학, 특히 선천성기형 분야에 천착해왔고, 그의 쉼없는 노력은 '구순구개열수술' 하면 '세브란스 박병윤 교수'를 연상시킬 만큼 전국에서 협진의뢰가 와 이 분야의 1인자로 손꼽혔다.

이렇게 그가 집도한 구순구개열 수술케이스는 5000건. 구순구개열수술이 일반적인 외과수술보다 통상 2배의 시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기록적인 수치다. 그는 이 기록들을 하나 하나 보관해왔고, 올 5월 '연세 두개안면 성형외과학 Ⅰ'(구순구개열 편)이라는 보물로 궤어놓았다.

"환자를 수술하는 데 나와 같은 시행착오를 줄이기를 바라는 마음과 많은 환자에게 아직은 부족하고 앞으로 더 많은 발전을 이루는데 조금이라고 참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400~500건의 두개악안면수술 경험을 담은 두번째 책은 10월에 상재할 예정이라고 귀뜸한다.

성형외과 초창기 세대로 성형외과학의 괄목할 변화를 지켜 본 그의 감회는 어떨까?

"재래식 화장실이 현대식 양변기로 바뀐 셈"이라는 한마디가 모든 걸 말해줬다. 한국의 사회·경제성장에 비례해 현대의학중에서도 가장 극적인 변화를 해왔다는 것.

1999년 그의 인생엔 새로운 전기가 찾아온다. 1998년 교내 소아과학교실 창립 85주년 행사에 들른 그의 가슴엔 '우즈베키스탄 해외의료선교 활동 보고'(고세중 발표)가 꽂혔다. 당장 이듬해인 1999년 첫 의료봉사단을 꾸렸다.

 
우즈베키스탄의 의료현실은 약품은 물론 변변한 수술기구조차 없었으며, 성형외과란 학문 자체가 없어 구순구개열 등 선천성 기형환자나 화상으로 인한 흉터, 손발 기형 등을 치료받지 못한 환자가 많았다. 매년 수술기구나 약품을 기증하고, 30~40명의 환자를 수술했지만 성에 찰 리 없었다.

그래서 우즈베키스탄 현지 의사에게 성형외과학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의료봉사라는 데 생각이 미쳤고, 2000년 타쉬켄트국립소아의과대학의 이비인후과 조교수인 무라드를 초청해 2년간 성형외과 교육을 시켰다.

무라드는 우즈베키스탄의 성형외과학을 창설하고, 주변국가들에 영향을 미쳐 박 교수와 함께 2008년 중앙아시아 국제성형외과 학술대회가 개최하고, 박교수는 초대회장에 추대됐다.

이 일로 박 교수는 2008년 우즈베키스탄 최고 공로 의료인 훈장, 2009년 제8회 한미참의료인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13년째 우즈벡 의료봉사에 헌신해온 그는 해외로 나가는 많은 의료인·병원에게 '새로운 곳을 개척하라'고 조언했다. 봉사할 곳이 많은데도 한국 의료기관들은 한 곳이 소문나면 같은 곳으로 몰려가는 경향에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한국에 두개안면성형외과학을 도입·확립, 요즘 한창 세간의 화제가 되는 양악수술의 원조인 그에게 한국의 성형수술 세태에 대해 물었다.

"솔직히 성형외과의사로서 성형을 원하는 사람이 많은 거 환영할 일지요. 하지만 정도껏 했으면 해요. 예전과 달리 요즘은 '나 성형수술했어요'을 얼굴에 표시하는 경향이 있는데 타고난 모습을 유지시키면서 조금씩 보완했으면 해요.

그리고 양악수술 같이 리스크가 큰 수술은 1~2년은 계획하고 해야지, 생명을 담보하는 수술은 바람직하지 않아요."

박 교수는 8월말 연세의대를 정년하고, 9월부터 제자가 운영하는 연세미성형외과에서 개원의로 인생 2모작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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