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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악몽의 사무장병원 '난 이렇게 당했다'
coverstory 악몽의 사무장병원 '난 이렇게 당했다'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8.26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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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고발 의사 2명 전격 인터뷰]"모든 꿈 다날려…남은 건 빚더미 뿐"

▲ 민주당 주승용 의원이 주최하고 대한의사협회 주관으로 22일 열린 토론회에서는 사무장병원 근절을 위한 내부고발자 보호 제도화 등 방안이 논의됐다. ⓒ의협신문

Cover Story

[오성일 원장 사례] 2006년 여름. 오 원장은 아직도 그 날을 잊을 수 없다. 대학 선배의 손에 이끌려 간 일산 J병원. 그 곳은 오 원장이 평소 꿈에 그리던 병원이었다. 빌딩 6개층 규모에 150개 병상, 나무랄데 없는 의료장비에 최신식 설비까지….

선배와 함께 만난 사업가 홍 모씨는 (주)M 대표 명함을 건네며 이 병원에 80억원을 넘게 투자했다고 설명했다. 병원 빌딩도 자신의 소유라고 했다. 일산 뿐만 아니라 전주·남양주에도 메디컬빌딩을 갖고 있다고 했다.

'일산에는 서울대 출신 병원장들이 많으니 오 원장처럼 지명도 있는 의사가 원장을 맡으면 주변 병원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을 것'이라는 선배의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의사라면 누구나 꿈꾸는 병원장. 수 백 억 자산가의 든든한 뒷받침과 서울대 인맥이라는 주변 환경까지.

하늘이 주신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 원장은 그 해 11월 당시 정 모 원장으로부터 대표원장직을 승계하는 포괄적양수도계약을 체결했다.

의사가 된지 20년만에 병원장 자리에 앉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취임한지 3개월만에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진료비를 가압류 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내용인 즉 오 원장이 오기 전에 이미 빌딩 소유권은 홍 회장에서 D주식회사로 넘어갔으며, 수 천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를 내지 않아 진료비가 가압류 상태였던 것이다.

말로만 듣던 '사무장병원'의 마수에 걸려들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깨달은 오 원장은 '그만 두겠다'는 내용증명을 홍 회장에게 보냈으나 묵묵부답이었다.

당장 밀려드는 노인 환자들을 외면할 순 없어 진료를 계속 보던 오 원장. 열심히 일한 덕에 환자 수가 취임 전보다 3배 가까이나 늘었으나 의약품·물품대금 지급을 요구하는 업체들, 밀린 급여를 내놓으라는 직원들의 등쌀을 견디는데는 한계가 있었다.

오 원장은 2007년 11월 대한의사협회 불법의료신고센터에 자진신고 하고 홍 회장을 사기죄로 형사고발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법의 정의를 굳게 믿고 있던 그였다.

40억 빚 더미에 무고죄로 고소당해

그러나 오 원장의 진짜 악몽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이었다. 형사고발된 홍 회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오히려 오 원장은 홍 회장으로부터 '무고죄'로 고소를 당했다.

법원은 홍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16억원에 달하는 병원 부채를 홍 회장이 내놓아야 한다는 민사소송을 내봤지만 역시 패소했다.

어이없게도 홍 회장은 오히려 '내가 J병원 투자한 5억여원을 돌려달라'며 소송을 냈다. 오 원장은 또 지고 말았다. 제약회사가 밀린 대금 3억여원을 내놓으라며 낸 소송에서도, 환자 식사 제공업체가 미납금 3억 5000여만원을 갚으라며 제기한 소송에서도 모두 패소했다.

빌딩의 새 주인 (주)D와의 명도소송에서도 져 J병원은 2008년 4월 결국 폐업했다.

현재 J병원이 있던 자리에는 (주)D가 운영하는 새로운 사무장병원이 문을 열었다. 오 원장이 겪은 일 중 가장 최악은 의료법 위반으로 검찰에 기소돼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은 2010년 9월 오 원장의 의료법 위반 혐의를 인정하고 벌금 300만원에 처했다. 보건복지부는 의료관계행정처분규칙에 따라 오 원장에게 의사면허 자격정지 3개월 처분을 내렸다. 여기서 끝난게 아니었다.

더 큰 문제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비 환수 조치. 건보공단은 국민건강보험법의 '부당이득 징수' 규정을 근거로 사무장병원이 청구해온 모든 급여비용을 부당이득으로 간주, 전액 환수한다. 책임은 병원의 명목상 원장인 오원장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환수액은 무려 20억원. 현재 오원장은 행정법원에 의사면허 자격정지 처분 무효소송을 낸 상태다. 끝내 법원에서 면허정지 처분이 확정되면 오 원장은 40억원의 빚더미에 앉게 된다. 그는 "옥상에서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고 말한다.

오성일 계양서울실버요양병원장
처음부터 전혀 눈치채지 못했나?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합법적인 의료법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의료법인은 법인 명의로 의료기관이 개설되는데, 원장 명의로 개설됐다는 사실을 몰랐다는게 이해하기 어렵다.

―병원 원무과에 인감증명을 맡기고 모든 행정적 절차를 위임했다. 세세한 법률관계, 행정실무를 모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그런걸 하나에서 열까지 일일이 챙기는 의사가 과연 몇이나 될까.

전임 원장이 '사무장병원'이란 사실을 귀띔해 주지 않았나?

― 그 사람도 나를 속인 것이다. 사무장과 의사가 입을 맞추면 100% 속을 수밖에 없다. 내가 원장직 사임을 통보한 뒤, 내 뒤를 이어 원장으로 오기로 내정됐던 의사가 한 명 있었다.

나는 그 사람에게 모든 진실을 말해줬다. 사무장병원이고, 문제 많은 병원이니 절대 오지 말라고.

전임 원장 처럼 모른척 하고 병원을 넘겨버리면 나는 자유의 몸이 됐겠지만, 그 사람(후임 원장)은 지금 내가 겪는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겠나. 그런 짓은 할 수 없었다.

병원을 소개시켜준 선배가 많이 원망스러울 것 같다.

― 그 선배도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에게 굉장히 미안해 하고 있다. 재판이 열리는 내내 법원에 탄원서를 내고, 증인으로 출석해 유리한 증언을 해주었다. 선배에게는 아무런 감정이 없다. 선배와 홍 회장은 그 사건 이후 완전히 결별한 상태다.

물리적인 폭행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느날 조폭같은 남자들이 찾아와 멱살을 잡으며 '1억원을 대출받으라'고 협박하더라.

급여비 환수액 말고도 20억원이나 떠안게 됐다. 어떻게 처리 중인가?

―살던 아파트를 경매로 넘기고 여기저기 끌어다 갚고 있다. 현재 신용불량 상태다. 형사적 문제가 모두 마무리되면 일반회생을 신청해 볼 생각이다.

서울의대 나온 전문의가 이런 모습이 돼버렸다. 의사로서 품고 있던 모든 꿈을 다 버렸다.

사무장병원이 왜 근절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사무장들은 대부분 상당한 재력가다. 지역 정치인들과도 유대가 깊기 때문에 보건소에서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 복지부가 아무리 척결을 외쳐도 일선 실무자들이 소극적이면 아무 소용없다.

고발을 해도 행정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니 증거를 잡아낼 수 있겠나? 사무장병원은 토착화된 조직범죄 같은 것이다. 그들은 이미 기득권화 돼있다.

내부고발을 했는데 오히려 피해자가 됐다.

―벌금·면허정지·환수 3중 처벌이다. 너무 가혹하다. 사무장병원은 자진신고와 내부고발, 딱 이 두가지 방법 외엔 밝혀낼 수가 없다. 자진신고의 대가가 이런 것이라면 누가 용기있게 나서겠나.

내부 고발자·자진신고자에 대해서는 처벌을 경감하거나 면제하는 제도가 반드시 도입돼야 한다.

의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무장의 감언이설에 속으면 안된다. 번듯한 병원 몇 개 보여주면서 온갖 미사여구로 치장한다. 의사들은 법지식에 약하고 사회성이 부족해서 잘 속아넘어간다. 사무장병원으로 의심되면 당장 관심을 끊어야 한다. '잠깐 동안은 괜찮겠지'하면 이미 절반은 수렁에 빠진 것이다.

오 원장은 현재 대한의사협회 홈페이지(www.kma.org)내 불법의료신고센터 운영자를 맡고 있으며, '사무장병원 피해회원들의 모임'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있다. 피해 입은 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당부했다.

 

[신원용 원장 사례] 서울 청담동 ○○성형외과에서 일할 때만 해도 전도가 양양한 젊은 성형외과 의사였던 신 원장.

그러나 2008년 6월 병원이 사무장에게 팔렸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병원 소유자인 안 모 원장이 개인적인 재정적 압박을 이유로 손 모씨에게 병원을 통째로 넘긴 것.

당시 여러가지 내부사정으로 안 원장 대신 병원 개설자로 이름을 올렸던 신 원장은 졸지에 불법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의사로 전락하고 말았다. 3개월 뒤인 2008년 9월 안 원장이 자살을 하면서 신 원장의 불안감은 더욱 깊어졌다.

사망한 안 원장이 과거에 진 빚을 손 씨가 '투자'라는 명목으로 갚아 주었는데, 그 채무는 고스란히 신 원장 것이 돼버렸다. 빚을 갚고 병원을 떠날 처지가 못됐던 신 원장은 '내가 운영하는 사업체에 투자해서 병원을 키워보자'는 손 씨의 유혹에 넘어가 집을 담보로 5억원을 대출, 손 씨가 대표로 있는 '경영지원 회사'인 (주)O에 집어 넣었다.

2009년 9월 병원은 강남구 논현동 P성형외과로 이전했고, 이후 신 원장과 사무장 손 씨는 끝없이 갈등을 빚었다. 가장 큰 마찰의 원인은 수입의 배분 문제였다.

당시 P성형외과의 월 매출애은 약 10억원 정도. 수입의 60%를 사무장이 가져갔다. 의사들이 힘들게 번 돈의 절반 이상을 손가락 까딱 안하고 가져가는 손 씨가 괘씸했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의사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는 눈길이었다. 의사들끼리는 식사를 못하게 한다든가, 병원 직원들이 마치 '프락치'처럼 의사들을 동태를 감시하는 비상식적인 분위기 속에서 신 원장은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다.

견디다 못한 그는 2010년 5월 병원을 나왔다. 예상대로 손 씨의 협박이 시작됐다. 병원의 세금을 모두 물어내야 한다, 의료장비 등 물품비용 대금 미납금 2억원 정산하라, 수술 잘못돼서 환불 요구 들어온 3∼4000만원도 다 해결하고 떠나라….

신 원장이 병원에 투자한 5억원에서 이들 금액을 '까고' 주겠다는 손 씨에 맞서 신 원장은 채무부존재확인소송을 냈다. 이와함께 관할 보건소에 손 씨를 의료법 위반으로 고발해달라고 진정했다.

서울지방검찰청은 지난 7월 28일 손 씨를 벌금 1000만원에 약식기소했다. 스스로 자수한 신 원장도 손 씨와 동일한 처분을 받았다. 자신에게도 법적 불이익을 돌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모를리 없었다. 그러나 신 원장은 "하루라도 더 일찍 나오지 못한 것이 후회될 뿐"이라고 한숨 짓는다.

▲ 신용원 쥬얼리성형외과의원장
병원이 사무장에게 넘어갔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바로 나오지 못한 이유가.

―나오려고 했다. 그런데 사무장이 '병원 채무 7억원을 고스란히 떠 안게 될 것'이라며 겁을 줬다. 일 하면서 차츰 갚아나가는 방향으로 가는게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당장 병원을 나와버리면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도 두려웠다. 그 때 과감하게 떨치고 나왔어야 했는데…. 후회스럽다.

주변에 사무장병원으로 인해 피해 입은 의사들은 어느정도인지.

―상당히 많다. 지금 우리 병원 의사 중에도 수원에서 사무장병원 원장으로 있다가 자진해서 폐업신고 해버린 분이 있다. 사무장은 도망가고 온갖 채무 등 뒷처리를 다 떠안았다고 한다.

짐작컨데 전국 의원급 의료기관의 30%정도는 사무장병원이 아닐까 생각한다.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상상을 초월하게 많을 것이다.

사무장병원인줄 알고도 들어가는 의사도 있나?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이유는 '돈' 때문이다. 봉직의로 취직하는 것보다 사무장병원에서 일하는게 수입이 보통 1.5배~2배 정도 많다. 특히 의사 개인의 초기 자본이 전혀 들지 않는다는 것은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사무장병원은 당사자만 모른척 하면 외부에서 거의 알 수 없기 때문에 안전할 것이라는 믿음도 생긴다. 여러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실제로 사무장병원에서 일하면 돈을 많이 벌게 되는지.

―사무장병원의 운명은 딱 정해져 있다. 처음에는 사무장과 의사 사이가 굉장히 좋다. 서로 믿고 의지하며 병원을 잘 운영해 나간다. 하지만 병원 수입이 늘어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결국 수익배분 등을 놓고 다투게 되면서 사이가 틀어지게 되고, 사무장이 배신하고 나면 의사는 모든 법적·금전적 책임을 떠안게 된다.

구체적으로 어떤 책임들을 떠안게 되나?

―첫번째가 세무적인 문제다. 사무장은 소득신고를 굉장히 낮춰서 한다. 소득세 신고를 제대로 안했다가 나중에 문제가 생기면 모두 원장의 책임이다. 두 번째로 의료기구나 소모품 대금이다.

사무장병원은 월말결재를 다 해주지 않고 조금씩 남겨둔다. 이게 쌓이면 나중에 엄청난 금액으로 불어나는데, 원장이 병원을 떠난다고 할 때 협박 수단으로 이용된다.

사무장병원은 '공리스'나 '이중리스' 같은 불법행위도 많이 저지른다. 걸리면 모두 원장이 책임져야 한다. 사무장병원이 잘 되면 잘 될수록, 의사가 짊어져야 할 빚더미는 눈덩이처럼 늘어나는 셈이다.

다른 사무장병원에 들어갈 생각도 해보았나?

―미치지 않고서야…. 당해본 사람은 다신 안간다.

다른 의사들에게 해주고 싶은말이 있다면.

―의사가 주인인 병원이 아니라면, 사무장이 아무리 그럴듯한 청사진, 좋은 조건을 제시하더라도 무시해 버려야 한다. 처음엔 월 2000∼3000만원 번다고 좋아하다가 나중에 형사적으로 문제 생기고, 경제적으로도 그동안 벌어들인 수입 한번에 다 날아가는게 사무장병원이다.

신 원장은 P성형외과를 나온 뒤 빚을 얻어 현재의 의원을 차렸다. 다행히 아직 젊은데다 능력도 인정받아 개원 1년만에 자리를 잡았다고 한다.

신 원장은 "그나마 나는 사무장 병원에 당한 케이스 중에서 형편이 나은 경우"라면서도 당시의 일을 떠올리면 몸서리가 쳐진다며 고개를 젓는다.

전국 노인요양병원 절반 사무장병원"

사무장병원 적발 소식이 끊이지 않고 있다<최근 주요 사건 별표>.

<최근 적발된 사무장병원 주요 사건>

▲ 2010년 12월 27일 부산경찰청, 6억 6000만원 급여청구한 사무장병원적발
▲ 2월 17일 동두천경찰서 4억2000여만원 부당청구한 요양병원 사무장 등 구속
▲ 5월 4일 전남지방경찰청, 보험금 허위 청구로 6000만원 편취한 한방병원 사무장 입건
▲ 5월 경기도 동두천경찰청, 49억여원 부당청구한 사무장병원 적발
▲ 7월 26일 광주지방경찰청, 통원환자 100명에게 허위입원확인서 발급한 사무장병원 원장과 사무장 구속영장 청구
▲ 7월 28일 서울지검, 강남구 P성형외과 사무장과 공동원장 등 3명 약식기소. 사무장 소유의 경영지원회사(MSO)가 병원을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드러나.
▲ 7월 31일 부산지검, 사무장병원 운영자 28명에게 의료법인 명의 빌려준 법인대표와 브로커·사무장 등 구속기소. 기업형 사무장병원 첫 적발.

겉으로 드러나는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이 의료계의 지적이다. 국내 노인요양병원의 약 절반 가량이 사무장병원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다.

최근 네트워크 병원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경영지원회사(MSO)의 의료기관 운영지원이 활발해지면서 합법을 가장한 편법·불법 사무장병원도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사무장병원의 폐해는 널리 알려진대로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사무장병원 12곳을 조사한 결과 허위·부당청구 등 불법행위가 평범한 의료기관의 1.5배에 달했다.

유화진 대한의사협회 법제이사(의사·변호사)는 "사무장병원은 속성상 진료의사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진료의 연속성이 떨어지고 진료비 감면 행위·불법 교통제공 행위 등 환자 유치에만 주력함으로써 진료의 질도 낮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대한치과의사협회에 따르면 최근 언론에 보도된 기업형 사무장 병원인 U치과그룹의 경우 일반치과보다 임플란트 재시술율이 6배나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부는 지난해 10월 사무장 병원 적발시 개원 이후부터 모든 요양급여비용을 환수한다는 내용의 '사무장병원 척결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의 단속 의지에도 불구하고 사무장병원이 활개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무장은 집행유예, 의사는 빚더미

무려 40억원에 달하는 빚을 짊어지고 신용불량자가 된 오성일 원장. 반면 그를 인생의 나락으로 떨어뜨린 홍 회장이 받은 처벌은 벌금 2000만원이 전부다.

더욱이 홍 회장은 일산 J병원 사건 이전에도 전주에서 운영 중이던 병원이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고 사무장병원으로 드러나 의료법 위반으로 기소돼 집행유예 및 보호관찰 처분을 받은 전력이 있다. 재범임에도 불구하고 벌금형에 그친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나 의료법인, 비영리법인 등 의료기관 개설자격이 없는 자가 의사 명의를 빌려 병의원을 개설한 경우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징역형을 선고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 집행유예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난다. 하지만 원장인 의사는 그렇지 않다.

사무장병원과 관련된 모든 법적·경제적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 사무장이 저지른 세금탈루, 제약·의료기기 업체와 이뤄진 불법 리베이트 수수 등에 따른 경제적 책임은 물론 병원 직원 해고와 관련된 근로기준법 위반, 의료사고 발생에 따른 채임도 모두 원장의 몫이다.

실질적인 병원 소유자가 아니더라도 법적 개설자가 의사 본인의 명의로 돼있기 때문이다.

올해 1월 대법원은 "사무장병원과 의사가 맺은 모든 계약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설령 오 원장과 홍 회장이 병원과 관련된 법적·경제적 책임을 실질적 소유자인 홍 회장이 모두 진다는 내용의 각서를 주고 받았더라도 법원은 이를 인정치 않는다는 것이다.

무조건 개설 명의자인 의사가 모든 책임을 져야 한다. 가장 무서운 것은 공단의 진료비 환수 조치다.

"의사는 공범 아니고 피해자"

22일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한 토론자는 "사무장병원인지 여부는 조금만 살펴봐도 알 수 있다"며 "의사가 사무장병원이란 사실을 모르고 명의를 빌려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미 알고 있으면서도 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 원장은 "의사 사회의 독특한 문화를 몰라서 하는 소리"라고 반박했다.

그는 "의사들은 다른 곳에 취업할 때 거의 대부분 아는 선후배나 동료의 소개를 받아 가게 된다"면서 "소개 받을 당시에는 조금도 의심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유화진 법제이사도 "사무장병원에 고용된 대다수 의사들은 애초 사무장병원인지 알지 못하고 근무하다가 나중에 탈법·불법행위를 요구받을 때 비로소 알게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점에서 의사들은 범죄행위의 공범이라기 보다는 피해자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법적 지식이 희박한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이경권 변호사(법무법인 대세)는 "대부분 의사들이 의료법 등 관계 법령에 대한 지식이나 이해가 부족하다"며 "사무장병원 처벌 법규에 대한 교육·홍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특히 젊은 의사들이 초기 개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현실이 사무장병원의 마수에 쉽게 빠지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한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가 지난해 4월 전국 1009곳 의원급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개원 투자비용으로 평균 3억 7000만원(임대)~5억 7000만원(자기건물)이 소요된 것으로 나타났다. 필요자금 대부분은 금융권에서 조달했으며, 대출금액은 평균 4억3000만원에 달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금융권의 의사 대출 한도가 크게 줄어 실제로 대출 가능한 금액은 많아야 2억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을 조달할 능력이 없는 새내기 의사로서는 모든 여건이 잘 갖춰진 병원에서 의사 경력을 쌓을 기회를 뿌리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진신고 의사 처벌 경감·면제해야

불법 사무장병원을 근절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사무장에게 큰 경제적 타격을 주는 방법 외에는 사무장병원을 척결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는 주장이다. 이경권 변호사는 "사무장병원 개설의 경제적 유인을 없애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민주당 주승용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원회)은 요양기관의 서류상 소유자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지배자, 즉 사무장도 건보공단의 급여비용 환수 대상에 포함시키는 내용의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추진 중이다.

불법행위에 따른 경제적 책임을 지도록 함으로써 사무장병원 개설 욕구를 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적발을 전제로 한 처벌적 규정은 예방의 실효성이 떨어져 보인다. 무엇보다 병원 내부로부터의 적극적인 신고를 유도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유화진 법제이사는 "사무장병원의 불법행위는 내부자가 아니고서는 그 실체에 대한 정확한 파악이 어렵고, 자백을 하지 않는 한 도저히 적발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증빙자료를 조작·위장하고 있다"며 "사무장에 고용된 의료인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오 원장의 경우처럼 처벌을 감수하고 자진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빚더미에 올라서는 구조에서 사무장병원 척결은 요원해 보인다. 내부 고발자를 보호하는 제도 마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유 이사는 "의사가 자신과 관련된 타인의 범행에 대해 진술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규명에 기여했다면, 형벌을 감경하거나 면제해 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적발된 장소에서 3년 개설금지"

내부 고발자 보호와 함께 의료법인이나 비영리법인의 의료기관 개설 기준을 강화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현행 의료법은 비영리법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지자체의 허가만 받으면 된다. 이를 보건복지부령에 따라 허가받도록 고쳐 정부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

또 사무장병원에 명의를 빌려준 사회복지법인은 다시는 의료기관을 개설·운영할 수 없도록 하고, 사무장병원으로 적발되고 개설허가를 취소당하거나 폐쇄명령을 받은 의료기관이 위치한 장소에서는 일정 기간 내에 의료업을 할 수 없도록 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대부분 사무장병원이 위치한 건물주와 사무장병원의 실제 주인이 동일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밖에 의료기관 개설특례 조항(제35조)에서 병원급 의료기관 설립 단서 조항을 삭제하고 반드시 의원급만 설립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민법·특별법에 따른 비영리법인의 범위도 구체적으로 법률에 열거함으로써 비영리법인의 형식만 빌린 비공익법인의 무분별한 의료기관 개설을 막는 방안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의료기관에 금융권 차입 외에 외부 자본의 유입을 허용하는 제도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현재 국회에는 정부가 제출한 '의료채권 발행에 관한 법률안'이 계류 중이다.

이 법은 의료기관을 개설한 비영리법인에 의료채권 발행을 허용함으로써 신규 자금 수요, 유동성 위기 등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고 자금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의료채권 발행은 대형병원에게만 유리한 것이어서 의료계의 빈부 격차를 심화시키고 병의원의 수익추구 행위를 증폭시켜 결과적으로 국민에게 해를 입힐 것이라는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권용진 서울의대 교수(의료정책실)는 "의료기관이 채권을 발행하더라도 일반기업과는 다른 회계구조상 투자자들의 관심을 얼마나 끌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사무장병원 '감별'하는 방법은?
사무장병원 여부를 파악하는 것은 결코 쉬운일이 아니다. 병원과 관련된 모든 서류가 의사인 원장 명의로 돼 있어서 외형상으론 하자를 찾기 힘들다.

사무장병원에 대한 아무런 법적 기준이 없는 상황에선 법원의 판례가 유일한 지침이 된다. 대법원은 2003년 4월 사무장병원을 판단하는 몇 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우선 '개설'의 의미가 중요하다.

대법원은 의료기관 '개설'의 정의를 '특정인이 의료기관의 시실 및 인력충원, 자금조달 등에 주도적 입장에서 장악한 상태'로 보았다. 구체적으로 ▲투자한 금액 ▲인사관리권의 행사 주체 ▲투자금의 회수 방식 ▲병원의 수익이 누구에게 귀속되는가 ▲의료장비 등 물적장비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등을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선우 변호사(법무법인 세승)는 "검찰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해도 밝혀내는데 애를 먹는 것들을 평범한 의사들이 사전에 알아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했다. 결국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일찌감치 손을 떼는 것만이 현재로선 피해를 최소화하는 유일한 방법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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