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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추행 의대생은 변호받을 권리 없나?
성추행 의대생은 변호받을 권리 없나?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7.29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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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박한상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지금부터 17년 전인 1994년 5월, 한약상을 운영하는 부모를 둔 박 씨(당시 23세)는 도박으로 유학 비용을 탕진하고 이를 나무라는 부모를 등산용 칼로 수 십차례 찔러 잔혹하게 살해한 후 집에 불을 질렀다.

100억원이 넘는 부모의 재산을 상속받기 위한 범행이었다는 사실에 나라 전체가 경악했다. 박 씨는 변호사를 선임하지 못했다. '패륜아를 변호하는 행위는 곧 패륜'이었던 당시 분위기상 박 씨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변호사가 없었던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환경처장관을 지낸 황산성 변호사가 박 씨의 변호를 자처했지만 석 달만에 포기했다. 황 변호사는 "박 씨가 앞뒤 안맞는 논리로 범행을 부인해 도저히 변호활동을 수행할 수 없다"고 사임 이유를 밝혔지만, 온 국민의 따가운 눈총을 견뎌내기 힘들었던게 진짜 이유였을 것이라는데는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최근 집단 성추행 혐의로 구속 기소된 의대생들의 '초호화' 변호사 선임 논란이 한창이다. 고법원장·고검장·검찰청 부장검사 출신 등 전관 변호사가 많은 유명 법무법인이 의대생 성추행 사건을 수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인터넷에는 비난의 글이 쇄도했다.

한 일간지 기사 제목엔 '유전무죄'란 수식어까지 붙었다. 변호사 출신 모 국회의원이 수임 변호사 명단에 자기 이름이 잘못 올라갔다며 부랴부랴 해명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의대생들의 변호를 맡기로 했던 법무법인 3곳 중 2곳은 이미 법원에 사임서를 제출하고 사건에서 손을 뗐다.

이쯤되면 의대생을 변호하는 사람은 곧 파렴치한이 되는 분위기다. 술에 취한 동료 여학생 몸을 더듬다 구속된 학생들에게 고액 변호사 여럿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 국민 정서상 달가울리 없다.

그러나 여론재판이 피의자를 돌팔매질하는 수준을 넘어, 헌법 제12조가 보장하는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로막는다면 이는 매우 심각한 문제다.

피의자와 변호인을 동일시하는 우리 사회의 비이성적 태도는 '부모 살해범도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이 눈씻고 찾아봐도 없던 17년전이나 요즘이나 조금도 변하지 않은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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