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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과학적 근거 부족한 'DNA 맞춤'밥상
시론 과학적 근거 부족한 'DNA 맞춤'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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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7.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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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아(연세의대 교수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최근 한 케이블TV에서 "국내 최초로 DNA분석을 통해 맞춤밥상을 제공한다"며 유명 연예인들의 유전체검사 결과를 방송에 공개하고, '엔젤푸드'라고 하는 식단을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한 적이 있다.

이러한 형식의 연예 프로그램은 국내 최초 정도가 아니라 아마 세계 최초였을 것이다.

유전체검사라는 첨단기술을 이용해 검사하고 그 결과를 근거로 맞춤형 웰빙 식재료를 추천하는 내용이어서 시청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시청자들은 유전체검사까지 동원한 '엔젤푸드'에 신뢰를 보냈을 것이며 이 프로그램을 본 사람들은 "나도 유전체검사 한 번 해 봐" 하는 호기심을 느꼈을 만하다.

그러나 DNA분석을 통한 맞춤밥상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정보이며 아무리 공인이라는 연예인이라지만 유전자검사와 관련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윤리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한 제작진들의 고민도 부족했다.

대담하고, 결정론적인 방송 내용과 더불어 유전체검사라는 어렵고도 민감한 주제가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중심에 선 것에 대해 필자 개인적으로도 놀랍고 당황스러웠다.

유전체검사나 치료분야는 앞으로 인류의 생명과 건강한 삶을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한 분야다. 생명윤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만큼 더 주의하고,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유전체검사에 대해 시청자들이 잘못된 인식이나 정보를 가질 수 있겠다는 우려가 앞섰다.

방송 내용 중 몇 가지 대표적인 문제점을 살펴보자.

첫째,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해석 결과를 가지고 출연자에게 질병발생 위험도를 설명한 점이다. 모 연예인은 특정 유전자 변이로 인해 디스크에 걸릴 확률이 60% 증가할 것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이러한 해석내용은 2005년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제공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인 대상 연구 이후 중국인을 비롯한 다른 인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방송에서 거론한 특정유전자가 디스크와 관련이 없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다.

아직까지 과학적 근거가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는 확정된 사실인 것처럼 설명했다. 만일 이 유전자변이가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과학적 근거가 명확하다는 연구결과를 제시했다 하더라도 유전적 요인만으로는 질병의 원인 중 극히 일부분만을 설명할 수 있을 뿐이다.

디스크를 비롯해 고혈압·당뇨병·종양과 같은 질병들은 수많은 유전자가 복잡하게 얽혀 질병 발생에 관여한다. 여기에 환경인자까지 감안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유전적 소인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되고 있는 '신장 (키)'의 경우 지금까지 50개 이상의 많은 유전자 변이가 발견됐지만 이들을 모두 합해도 개인의 신장 변이를 4∼6% 정도 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되어 있다.

둘째, 유전체검사와 연관지어 과학적 근거가 없는 식재료를 추천한 점이다. 한 여성 연예인의 경우 5개의 유전자변이로 인해 유방암의 위험도가 증가하기 때문에 이를 근거로 나이아신 섭취를 권장했다. 하지만 유방암과 관련된 영양소 섭취 부분은 연구 문헌이나 기록에 없는 내용으로 확인됐다.

셋째, 유전자검사는 의료행위임에도 윤리적,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연예 오락 프로그램의 주제로 다뤄졌다는 점이다. 현행 생명 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의사의 의뢰가 없이는 독자적으로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수 없다.

과학적 입증이 불확실해 검사대상자를 오도할 우려가 있는 신체외관이나 성격에 대한 유전자 검사는 아예 해서는 안된다.

진료를 목적으로 병원 검사실에서 유전자검사를 시행할 경우에도 의료진은 검사를 진행할 때마다 환자로부터 동의서를 받고 있다. 특히, 소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전자검사의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있다고 하더라도 질병의 특성에 따라 유전상담을 거쳐 신중하게 검사 적응증을 검토해 시행하고 있다.

유전자검사에 대해 법적인 동의를 규정하고 있는 것은 유전정보가 다른 진료기록 이상으로 매우 중요한 개인건강정보이기 때문이다.

미국식품의약국(FDA)은 유전자분석이 의료행위임을 표방하고, 각 유전자검사 회사의 검사실에 대해 검사의 질관리 규정에 부합한 인증을 받도록 요구했다.

의료행위의 한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유전자검사 내용이나 중요한 개인 유전정보를 방송의 재미를 위해 공개하고, 소아의 검사결과를 방송한 것은 유전자검사가 갖고 있는 윤리적·사회적 영향에 대한 고려가 부족함을 보여준다.

보건복지가족부의 위임을 받아 국내 유전자검사의 질관리 및 적절성 평가를 수행하고 있는 '한국유전자검사평가원'(www.kigte.or.kr)은 이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유전자검사 결과를 해석하고, 식재료를 추천하는 행위는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해당 방송사는 사안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유전체검사 관련 방송을 즉시 중단하는 조치를 취했다. 이와 함께 정정보도문도 방송사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유전체검사는 단일 유전자에 대한 검사를 단순히 한 번에 많이 하는 개념 이상의 복잡한 검사다. 그러므로 유전체검사의 적절한 활용을 위해서는 임상적 유용성 검토를 위한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유전체검사를 직접 접하는 유전체학 전문의료인, 환자를 진료하고 검사를 처방하는 의료인, 보건의료 관계자, 환자에 이르기까지 각 단계의 관계자에 대한 교육과 소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미국 국립보건원 유전자보건사회자문위원회에서는 2010년 7월 보건의료 관계자들을 위한 유전학 교육 지침 초안을 발간한 바 있다.

유전체검사의 사회적, 제도적 중요성을 고려할 때 유전체검사에 대한 언론의 지속적인 관심과 관련 정보에 대한 정확한 보도가 앞으로 유전체검사의 활용 체계를 구축하는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생각된다.

유전체검사는 분명히 진료 체계에 혁신을 가져올 만큼 획기적인 기술이다. 지속적인 연구와 교육과 소통을 통해 우리나라에서 유전체검사를 보건의료에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최적의 모델이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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