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국 심장병 환아들에게 새 생명을…
제3국 심장병 환아들에게 새 생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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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7.08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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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호 교수 경상대병원 흉부외과

"지금 알마티 시내에 수술을 기다리고 있는 환자는 145명이며(알마티 주에는 558명) 그 순서 때문에 2013년까지 기다려야한다고 합니다. 올해만 해도 30명이나 되는 환아가 수술을 받지 못해 사망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이들 중 3~5명이라도 제대로 된 진단과 수술을 해주는 것만이라도 너무나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서도 수술만 받으면 좋아질 수 있는 환아가 수술을 받고 건강하게 생활을 했으면 한다는 말씀도 소아병원 원장님께서 하셨습니다."

-카자흐스탄 알마티에서KOICA에서 근무하던 한 의사가 이상호 교수에게 전해온 편지다.

선천성 소아심장질환 수술의 권위자인 이상호 교수는 1989년 대한불교감로심장회와의 인연을 시작으로, 국경을 넘어 13년째 심장병 어린이들에게 인술을 전하고 있다.

 
이상호 교수는 1989년 대한불교감로심장회와의 인연으로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심장수술을 해주기 시작했다. 서울의대를 나와 국립의대에서 뜻을 펴보고자 진주로 왔고, 그곳에서 인연은 시작됐다. 간단히 이야기하면 이렇다.

진주의 한 불교학생회의 학생이 선천성 심장병으로 고생하고 있었는데, 그 단체의 선후배가 주축이 되어 모금 활동을 하게 됐다. 이 이야기는 불교신문을 통해 전해져 독지가, 스님 등이 동참하게 됐고, 이상호 교수가 수술을 맡게 된 것.

모금 중 남은 돈을 종자돈으로 그 학생회의 지도교수가 주무를 담당하며 1990년 진주 의곡사에서 심장병 후원회가 발족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대한불교감로심장회다.

수술을 계기로 그 단체의 의료고문을 맡게 됐고, 그때부터 중국, 베트남,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등 제3국의 소아심장병 어린이들의 초청 수술이 시작됐다. 중국 요녕성에서 온 조선족 아이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수술을 받은 아이들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16명에 이른다.

이런 활동에는 경상대학교병원 측의 지원도 한 몫 했다. 경상대학교병원에서는 2001년부터 선학로타리클럽, 보련회, 경남여의사회, 지역 인사 등과 협력하여 매년 해외 진료를 해오고 있는데, 올해로 11년째인 이 활동에서 심장병 어린이의 초청 수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상호 교수는 수술뿐 아니라 병원 측과 진료비 감면, 행정적, 인적 지원까지 협의하고 있다.

"제3국의 의료환경에 대해서는 모두 잘 알고 있겠지만, 특히 심장수술은 많은 비용과 인력, 고도의 의술이 요구되는 분야인 까닭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후진국이나 개발도상국의 환자들이 진료 혜택을 받기 어렵지요. 기억하실 겁니다.

우리나라도 1977년 국민의료보험이 시작되고 국가의 경제개발 정책으로 경제 사정이 나아지고 나면서 점차 심장수술의 시혜를 받기 시작했지 않았습니까? 우리나라 어린 환자들이 미국 등에 가서 수술 받는 예가 많았었지요.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거꾸로 되었어요. 제가 2008년 소아심장학회장일 때 우리 나라에서 외국의 소아 환자들을 데려다 치료해준 현황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우리나라는 어느새 어려운 이웃나라 환자들을 돕는 의료 선진국이 되었더군요."

올초에는 라오스에 다녀왔다. 우리나라에서 태어났으면 간단한 수술을 통해 클 수 있는 심장 질환인데도 열 살이 되도록 아무 손도 쓰지 못하고 병을 키우고 있던 아이를 만났다. 몇 년 더 지나면 수술조차도 어려운 상태로 발전하리라는 것은 뻔한 일. 안타까운 사례들은 이외에도 참 많다.
 
종교, 국경 넘어 돌봐온 10만 여 환자들

 
이상호 교수의 손길은 비단 제3국 어린이들에게만 닿은 것은 아니었다. 1996년 10월 대학친구에게서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여자 환자에 관한 얘기를 들었다. 서른 살이 되도록 수술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연이 기가 막혔다.

그 환자는 기독교인이었지만, 감로심장회에 이야기를 꺼냈고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종교간 벽을 넘어 사랑이 깃든 경우다. 또 욕지도에 사는 5kg 저체중의 여자아이도 기억난다.

당시 심장수술에 매우 어려움을 겪던 시기였지만, 밤 새워 간호하고 쾌차 후의 밝은 모습을 보았을 때의 기쁨은 말로 다 표현하기 힘들다.

"저는 특정한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아니 모든 종교를 그냥 받아들인다고 봐야겠지요.

감로심장회의 활동에 처음 산파역을 맡았던, 지금은 광명회라는 또 다른 자선단체 일을 하시는 교수님을 비롯하여 보련회장, 로타리 클럽 회장 등과 의논을 참 많이 하여 왔는데 덕분에 지금까지 어려운 환자 돕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십시일반의 봉사단체로 출발한 감로심장회는 벌써 20년을 맞았고 스님들과 수많은 불자, 독지가들이 동참해주고 있다. 해외 환자 초청 치료는 물론 농어촌, 산간 지역 등 소외된 지역의 무료 진료 활동에도 오랜 세월 도움을 받았다.

덕분에 서부 경남 일원에서 적체되어 있던 심장병 어린이의 진료와 특히 어려운 가정의 환자들 수백 명을 치료해 주는데 기여할 수 있었다. 감로심장회는 그런 공헌을 인정받아 MBC사회봉사대상을 받은 바 있다.

이상호 교수가 관여하고 있는 봉사진료단체는 한국심장재단과 감로심장회, 광명회와 경상대학교병원 해외의료봉사단, 선학로타리클럽, 경상대학교 보련회 등이 있다.

게다가 1993년부터 2003년까지는 경상남도의 도 사업이었던 심장질환 무료 진료와 가정 형편이 어려운 환자의 수술 지원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몸담았다. 1990년부터의 무료 순회 진료는 감로심장회만 해도 7만 명 이상으로 지금껏 돌봐온 사람이 어림잡아 10만 명 정도다.

초심 잃지 않는 좋은 의료인 되고파

의대생 시절에 기독학생회라는 학생활동 동아리에 몸담아, 매주 서울의 빈민촌에서 의료봉사를 다녔던 기억을 떠올린다. 70년대 전후에도 힘들고 지친 환자는 차고 넘쳤다. 이상호 교수 역시 어렵게 성장했기에 남의 일 같이 않았던 터였다.

"서울의 어느 달동네에 살던 때, 고등학교 3학년이었습니다. 갓 난 막내 남동생이 원인 모를 병으로 죽게 됐어요. 너무 어려웠던 처지라서 아버지와 함께 내 손으로 동생을 산능성이에 파묻었지요. 사실 원인 모를 병이라기보다는 돈이 없어서 병원에 못 갔고 진찰 한번 못 받아본 겁니다.

시간이 흘러도 계속 마음에 사무치더군요. 의사란 인간이 고뇌하는 생로병사의 짐을 덜어내기 위해 노력하는 직업이 아닐까요?"

흔한 길은 가지 않겠다는 의지로, 남들이 힘들다 돈도 못 번다 하는 흉부외과를 선택했다. 서울에서 진주로 내려온 것도 어쩌면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의사의 본분은 환자를 돕는 것입니다. 의사들은 의사가 되려는 시절의 초심을 무심결에 실천해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의 굴레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이런 초심이 좀 흐트러질 뿐이겠지요.

의사라면, 욕심을 내서 환자나 사회에 해악을 주거나 술수를 부리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료인의 정도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상호 교수는 대학에서 퇴직을 했기에 지금껏 해오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여러 가지 고민이 많다. 한편으론 이제껏 초청해서 치료해주었던 다른 국가로 눈을 돌려본다.

"나 자신이 어려웠던 시절을 경험했기에 선뜻 돕고 싶은 마음이었지 않았나 싶어요. 사실 수술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스트레스였는데, 환자 선정부터 여행 스케쥴, 수행 인원의 배려와 재원 마련까지 진행하는 것은 부담되었던 게 사실이지요.

감로심장회는 물론이고 광명회, 선학로타리 클럽, 경상대학교병원 측과 보련회 등 도움 주신 분들이 참 많아 고맙습니다. 교수로서는 퇴직을 했지만 좋은 의료인으로 남고 싶은데, 어찌될지 모르겠네요."

마지막으로 "마음으로 환자를 대하는 일"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 이상호 교수. 그의 온화한 얼굴에 번지는 미소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경을 초월해 많은 환아들에게 소중한 빛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글·정지선<보령제약 사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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