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은 왜 복지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나?
의협은 왜 복지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나?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1.06.10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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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특정집단 이익 대변 신뢰 상실
'보건의료 발전' 철학 부재에 실망과 불신 터져

의협이 7일 기자회견을 통해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특정 이익집단을 노골적으로 대변하고 나선 복지부의 공정하지 않은 의료정책을 더 이상 신뢰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복지부는 3일 국민의약품 구입 불편을 해소하겠다며 중앙약사심의위원회(중앙약심)에서의 의약품 분류 재검토 방안을 제시했다. 복지부는 일반의약품에서 의약외품으로 나올 수 있는 약품이 있는지 중앙약심을 통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복지부는 중앙약심에서 의약품을 재분류하기로 한 만큼 논의결과를 기다려보자는 입장이다.

반면 의료계와 시민단체는 "국민이 요구하는 가정상비약 슈퍼판매 요구를 묵살하고, 특정이익집단의 이익을 옹호하고 있다"며 반발했다.

먼저 중앙약심에서 의약외품 분류를 통해 국민이 약국 이외에서 가정상비약을 구입할 수 있는 묘안을 도출해낼 수 있겠는가를 따져보자. 결론은 "아니올시다"다.

약사법에서는 '의약외품'을 "인체에 대한 작용이 약하거나 인체에 직접 작용하지 아니하며, 기구 또는 기계가 아닌 것과 이와 유사한 것"으로 규정, 일부 의약품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나 '인체에 대한 작용이 약하거나, 인체에 직접 작용하지 아니한다'는 의약외품의 정의에 대해 복지부는 "간접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중추신경계에 작용하지 않는 약"이란 해석을 내놓으면서 폭을 좁히고 있다. 복지부는 "지금 분류체계로 한다면 몇몇 종합감기약과 몇몇 진통제는 중추신경에 직접 작용을 하기 때문에 의약외품으로 보기 어렵다"며 "까스활명수나 위청수 같은 약들은 중추신경에 직접 작용하지 않기 때문에 의약외품으로 꼽을 수 있다"고 언급, 의약외품 가이드라인까지 슬그머니 제시했다.

복지부는 중추신경에 직접 작용하는 약은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없다는 뜻을 내비쳐 국민이 원하는 해열제·진통제·소화제 등 가정상비약의 대부분을 의약외품으로 분류할 수 없도록 선을 그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약심을 통해 의약품을 재분류하겠다는 복지부 입장은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를 허용할 수 없다는 얘기와 다를 바 없다.

경실련이 "복지부가 이번 공식발표를 통해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아야 할 시점에서 아무런 토대도 없고, 역할도 못해온 중앙약심에서의 논의를 운운하는 것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고, 복지부의 무책임함을 그대로 드러낸 것으로 비겁하기까지 하다"고 비판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의협이 가정상비약 약국 외 판매를 허용하도록 약사법 개정을 추진하라고 요구하고 나선 것은 중앙약심을 통한 의약품 분류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는 것을 간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약사회에 목맨 복지부…약 독점 권력 손대지 못해

가정상비약을 국민이 구입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는 방안의 하나가 철도·비행기·선박 등 특수장소를 24시간 문을 여는 슈퍼나 주유소 등에까지 확대하는 안.

복지부는 특수장소 확대안에 대해 "약국외 판매·특수장소 지정을 통해 몇몇 가정상비약을 판매하는 방안은 약사법상 약사들이 동의하지 않는한 실현 가능성이 없다고 보고 더 이상 검토한 바 없다"고 밝혔다.

'특수장소에서의 의약품 취급에 관한 지정'(복지부 고시)에 따라 특수장소에서 의약품을 취급할 수 있는 자는 특수장소 인근 약국 개설자로 규정하고 있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자인 약사가 일반의약품 공급에 동의하고 협조를 하지 않는한 방법이 없다는 것이 복지부의 설명이다.

특수장소 의약품 취급자를 의료기관 또는 의약품 도매상까지 확대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조차 없이 약사회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복지부가 물러서는 양상을 보이자 시민단체는 "약사회 눈치보기에 급급해 빈껍데기에 불과한 내용을 발표했다"며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약사회가 국민불편 해소를 위해 제안했다는 당번약국 활성화 방안도 그렇다.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허용해야 한다는 국민의 요구가 거세지자 약사회는 2007년 '24시간 약국'을 도입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실패했고, 지난해에는 심야시간대 약국 운영을 공언했으나 전국 약국의 0.3%만이 참여,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약국 5부제 당번약국 역시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 요구를 비껴가기 위한 임시방편임에도 복지부는 "약사회의 약속은 지켜볼 필요가 있고, 상당부분 국민의 불편을 해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혀 "약사회를 대변하느냐"는 비아냥마저 듣고 있는 상황이다.

의협은 여야 국회의원들에 대해서도 가정상비약 약국외 판매에 대한 입장을 분명히 밝혀달라는 요구를 했다. 국민의 불편을 외면하는 국회의원을 국민에게 낱낱이 알림으로써 낙선운동과 연계하겠다는 의지도 내비쳤다.

일부 직역의 반대표가 두려워 이익을 대변하려 한다면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원하는 대다수 국민의 표심을 통해 이를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의약품 안전성 내세우면서 더한 약국 불법행위는 눈감아

복지부는 "의약품의 슈퍼판매와 관련해서 의약품의 안전성이 최우선적으로 고려돼야 하고, 국민의 불편함은 안전성보다 우선할 수 없다"며 "안전성이 최우선이고, 그 다음에 불편함의 해소가 뒤따라야 한다는 원칙은 변함없다"고 강조했다. 또 "약의 오남용과 약품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약사에 의해서 약국에서만 팔아라는 것이 약사법의 취지"라고 강변했다.

복지부가 의약품 안전성 원칙을 운운하고 나선데 대해 의료계는 "의약분업 이후에도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약사들의 불법 임의·대체조제와 무면허 의료행위에 대해 감시·감독을 소홀히 해 온 복지부가 의약품 안전성에 대해 말을 할 자격이 있느냐?"며 격앙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의약분업의 가장 큰 목적은 약사들의 임의진단 및 처방에 근거한 무분별한 약제의 조제 및 판매를 근절해 국민의료를 정상적인 의료제도로 전환하자는 것. 의약분업제도의 대원칙은 의사는 조제권을, 약사는 처방권을 각각 포기하는 빅딜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의약분업제도 11년이 지난 현재까지 의약분업의 대원칙을 뒤흔드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정부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2008년 약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22.3%가 "임의조제가 이뤄지고 있다"고 답변, 임의조제가 여전히 근절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약국에서의 불법행위에 관한 가장 최근 조사라고 할 수 있는 2010년 6월 의약분업 10주년을 맞아 본지가 의사 회원 8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약국에서 처방전 없이 전문의약품을 판매하거나 문진하는 사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적이 있는가'란 질문에 "가끔있다"(47.6%)와 "자주있다"(15.3%)는 응답이 62.9%에 달했다. ▶그래프 참조

 
이처럼 약국에서의 불법 행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음에도 복지부는 단속이나 감독에 대해서는 말과 행동을 아끼고 있다.

의료계는 "의약분업 시행 10년이 지났음에도 기본원칙 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감시·감독을 소홀히 한 복지부에 불신의 눈길을 보내고 있다. 복지부가 '선시행 후보완'을 내세웠지만 평가를 통해 제대로 보완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의협 불법진료대책위원회가 국민과 함께 임의조제 등 심야 당번약국의 불법사례를 수집해 법적 조치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것은 의약분업 파기 행위에 눈감고 있는 보건당국에 대한 항의의 뜻이 담겨있다.

지난해 6월 9일 열린 의-정 간담회에서 전재희 당시 복지부 장관은 "건강보험 30년 성과에 대해서는 정부 입장에서도 정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건강보험 제도와 의약분업에 대하여 연구기관을 통해 객관적인 평가를 추진하되, 어떤 의제를 갖고 연구·평가할 것인지는 공단·심평원·의협·병협·학계·시민단체 등 관련 기관이 모두 참여해 협의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대답, 객관적인 평가를 추진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지만 의약분업 재평가는 아직도 수면 아래서 잠자고 있다.

정부에 대한 불신은 2000년 의약분업과 건강보험통합 과정에서 본격적으로 싹트기 시작했다. 정부가 2001년 건강보험 재정 파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2차에 걸친 재정 안정 종합대책을 통해 의료계의 고통분담을 요구하며 4조원 가량의 급여비를 회수해 간 것도 불신을 쌓는 요인이 됐다.

정부는 재정 안정 종합대책 시행으로 건강보험 재정에 다소 여유가 생기자 회수한 급여비를 돌려주거나 의료계가 줄기차게 요구한 원가 이하의 급여비 보전은 외면한 채 보장성 강화에 초점을 맞춘 선심성 보험정책을 앞세우며 불신의 간극을 더 넓혀갔다.

2006년 터진 생물학적동등성시험 조작 사건은 복제 의약품에 대한 불신은 물론 허술한 의약품관리제도를 운영해 온 정부 정책을 뿌리부터 불신하게 만들었다. 생동성 조작 사건은 의사들로 하여금 의약품 안전에 대한 의혹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됐다.

정부는 시중에 유통되는 제네릭 전문의약품 가운데 무작위로 샘플을 뽑아 약효동등성을 평가해 보자는 의료계의 제안을 외면한 반면 가정상비약 슈퍼판매에 대해서는 의약품 안전성 원칙을 내세우는 모순을 보이고 있다.

복지부의 의약품 안전성 원칙은 상비약 보관함을 단계적으로 보급하겠다는 것에서도 앞뒤가 맞질 않는다.

시민단체는 "가정에 쌓아두고 국민이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언제든 꺼내 복용할 수 있는 상비약이라면 약국이 아닌 곳에도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는 것 아니냐"며 "복지부의 상비약 보관함 보급 방안은 약사회 논리를 그대로 취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대형병원 감기환자 막겠다더니 개원가 공멸 부르는 선택의원제 강행

대형병원으로 감기환자까지 몰려드는 기형적인 의료왜곡을 막기 위해 정부도 많은 고민은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의료전달체계 확립과 1차 의료 활성화를 위한 복지부 차원의 TFT도 꾸려졌으며, 의료계와 머리를 맞대고 다양한 회생방안을 모색한 데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 하다.

하지만 대형병원 외래로 감기환자가 몰려드는 것을 방지한다거나 무너지고 있는 1차의료를 살리기 위한 대안들이 논의를 거듭하는 과정에서 건강보험 재정 안정화와 지속 가능성을 염두에 둔 의료공급과 의료이용 제한을 위한 제도로 변질되면서 또 다른 불신을 촉발하고 있다.

선택의원제는 이미 의료급여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선택 병의원제도 처럼 의사의 의료공급과 환자의 의료이용을 제한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특히 환자 등록을 해야 하는 선택의원제의 경우 신규 개원의들이 아예 개원 시장에서 발붙일 땅을 찾을 수 없다는 문제를 안고 있다. 정부가 선택의원제를 강행할 경우 신규 개원의들의 거센 반발과 기성 의사들과의 대립은 불가피하다. 현재의 골격에서는 의협이 선택의원제를 수용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의약분업 제도 강행 때부터 신뢰를 잃기 시작한 복지부가 의료계 내부에서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선택의원제를 강행하려든다면 11년 전 의료대란에 이어 제2의 투쟁이 촉발될 위험이 있다.

의약분업 투쟁을 통해 언론과 국민의 쓴소리에 뭇매를 맞은 쓰라린 경험을 한 의료계가 당장 거리로 뛰쳐나올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국민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국민에게 불편을 강요하는 잘못된 제도에 대해서는 당당히 제목소리를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를 사실상 포기한 복지부를 성토하며, 장관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선 배경에는 의약분업 이후 누적된 불신이 자리하고 있다.

MB정부 출범 이후 복지부는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수립해야 하는 보건의료발전 5개년 계획조차 만들지 않았다. 보건의료 발전에 대한 철학 부재에 대한 실망과 불신이 가정상비약 슈퍼 판매 철회와 선택의원제 강행을 계기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 양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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