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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살려주세요
청진기 살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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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27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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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애양(은혜산부인과의원)
▲ 김애양(은혜산부인과의원)

싱그러운 오월의 출근길, 바람을 타고 아카시아 향기가 물결친다. 이토록 아름다운 계절이건만 발걸음은 가볍지가 않다. 어제 걸려온 산모 보호자의 전화 때문일 것이다. 내게 정기적으로 산전 진찰을 받던 중인데 태아가 6개월 만에 뱃속에서 사망한 걸 미처 알아내지 못했다고 항의를 했다.

오늘 병원으로 찾아와서 나의 과실을 입증하고야 말겠단다. 의사가 된지도 30년 가까이 되건만 환자를 생각하면 늘 불안감이 엄습한다. 저 버드나무 솜털씨앗처럼 떠도는 나의 불안함을 감출 길이 없다.

그러한 불안을 가중시키기라도 하듯 등 뒤에서 요란하게 사이렌 소리가 울린다. 달려오는 구급차에 그려진 로고가 눈에 뜨인다.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지팡이다. 아스클레피오스가 누구이던가?

그는 태양신 아폴론과 아름다운 코로니스 사이에서 생겼다. 즉 신과 인간 사이의 자식이라는 특이한 신분이다. 게다가 그의 출생 내력은 더욱 기구하다.

코로니스가 불륜을 저질렀다는 누명을 쓰고 장작더미 위에서 화형에 처해지려는 순간, 뒤늦게 자신의 아이를 가졌다는 말을 듣고 아폴론이 배를 갈라 꺼낸 아이가 바로 아스클레피오스이다. 말하자면 삶과 죽음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는 현자 케이론에게서 의술을 배운다.

 
특히 뱀을 이용한 치료를 잘해서 지팡이에 감긴 뱀 그림으로 그를 상징하고 있다. 하지만 명의가 된 것이 죄였을까? 그의 죽음 또한 예사롭지가 않다. 그리스의 미남 청년 히폴리스를 구해 낸 것이 그 발단이다. 히폴리스는 다이아나와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다른 여신의 원한을 사서 죽임을 당하게 된다.

해신(海神) 포세이돈이 파도 가운데 황소를 내보내어 히폴리스는 마차에서 떨어져 죽는 것이다. 놀란 다이아나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달려가 제발 애인을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의사는 약초를 내어주고 그것으로 히폴리스의 생명은 되살아난다. 하지만 이번엔 소식을 들은 주피터가 진노한다.

유한한 목숨을 지닌 인간을 의사 멋대로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낼 수는 없는 법이다. 제우스는 아스클레피오스를 지옥으로 밀어 넣는다.

여신들의 사랑 놀음에 희생양이 된 아스클레피오스의 사망은 질병을 구제하고 죽음과 싸우는 의사들에게 맥 빠지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신의 뜻대로 인간이 살고 죽는 것이라면, 신의 계획에 의해 병들고 아픈 것이라면 의사란 언제까지나 신의 반역자일 수밖에….

환자가 의사에게 매달려 "살려주세요"라고 하듯이 의사는 신에게 멋대로 환자를 치료한 저를 "살려주세요"라고 기도해야만 할까? 치료를 잘못하면 환자와 보호자에게 혼날 터이고, 치료를 잘하면 신에게 혼나야 하는 게 의사의 운명이라니….

오늘따라 버드나무 솜털씨앗이 유난히 뽀얗게 날아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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