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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사 인생 30년
청진기 의사 인생 3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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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5.09 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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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영상의학과)
▲ 문태용(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영상의학과)

병을 병이라 하면 병이고, 병이 아니라고 하면 병이 아니다.

새삼스레 노자의 도덕경을 되새기지 않아도, 수렁에만 빠져 있지 않다면 어느 정도 이해가 와 닿는 이야기다.

필자는 30년 의학 공부를 세 단계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첫 10년은 핵의학으로 입문하였고, 중간 십년은 간암치료를 위한 간동맥화학색전술(이하 색전술) 시술에 매진하였다. 이후 10년은 남들의 관심이 좀 덜한 근골격영상의학을 공부하고 있다.

이들 단계는 깊은 산 계곡에서 두 단계 폭포를 거쳐 흘러내리는 물과 같이 시간과 공간을 점유했을 뿐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하지만 어떤 변화가 나타날 때 그것이 인연이라 생각하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결코 망설이지는 않았다.

중반기라고 할까. 당시 새로운 진단방법들이 개발되면서 조기 간암을 진단하게 되었지만 정작 그 치료는 고전적일 수 밖에 없었다. 그 때 획기적으로 계발된 새로운 간암 치료 방법이 색전술이었다.

컴퓨터단층촬영으로 간암의 색전술 치료 효과를 판정할 수가 있었다. 근 10년 간 수 백 건의 간암치료 경험을 토대로 색전술의 치료 효과를 산정하기 위해 간암환자의 5년생존율을 조사하고자 하였다.

'그건 병원에서 오진한 것이오, 내가 만약 간암이라면 지금까지 내가 살아 있겠소?'

5년 전 간암으로 진단되어 색전술로 단 한번 치료를 시도했던 오십대 중반의 남자 환자였다. 이미 사망했을 거라는 어설픈 생각을 품고 그 사망 날짜를 확인해야만 했기 때문에 5년이 지났지만 병록지에 기재되어 있는 그 환자의 전화번호를 돌렸던 것이다.

그에게는 저승사자가 찾아 온 것이나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벌써 갔어야 할 네가 아직도 이승에 머물고 있었구나' 그에게는 소름끼치는 전화였다.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요? 나는 그런 병에 걸린 적도 없단 말이요. 도대체 간암이라니 말도 안 돼. 그건 의사양반이 붙인 병명이란 말이요. 것도 엉터리 의사가 말이요'.

죽음의 병을 부인하는 그의 방어기전은 완벽했다. 생각에서 완전히 지워버린 그 였는데, 이 놈의 전기선을 타고 하얀 옷을 입은 저승사자가 찾아 와 불가사의한 일로 여기고 있으니 이거 정말 귀신이 곡할 일이 아니던가. 그는 그 해 사망했다. 시신의 이름은 간암이었다.

CT 검사에서 환자들의 간암은 깨끗하게 치료되고 있었다. 나는 내 손이 황금을 만들어내는 '마이더스'라고 생각할 정도로 자신감이 있었다. 젊은 사십대 부부가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 남편이 간염이 있어 주기적으로 간초음파 검사를 받던 중 간암이 발견되어 그 암을 치료하기 위해 나를 찾아 왔다는 것이다.

CT 촬영상 정상 간조직과 암 사이에는 저항력을 나타내는 벽이 형성되어 있는 결절성 암이었다. 색전술로 그 암은 쉽게 치유될 수 있었다. 하지만 6개월 후 간의 다른 부위에 재발성 간암이 생겼다. 이것 역시 색전술로 괴멸시켰다.

이후 사 개월째 또 다른 암이 발생하여 이 또한 색전술로 치료하였으나, 그 이후 환자는 병원에 오질 않았다. 1년이 넘어 궁금하기도 해서 그의 댁으로 전화를 했다.

'여보세요, 혹시 일전에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아무개선생님 댁이 아니신가요?'
전화를 받는 당사자는 젊은 그 환자의 아내였다.

'그 새끼 죽었어요.' 흐느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뇌리를 스치는 그녀의 한 맺힌 고백 소리는 '두 아이까지 B형간염에 이환되어 있는데 먼저 저승으로 가면 날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의사라는 사람은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병 주고 약 주고 그것도 약 같지도 않은 약을 주면서 돈은 돈대로 받아먹고…'

사망 날짜를 알아야만 했지만 조용히 전화를 끊었다.

'그 새끼 죽었어요' 하는 말은 금방이라도 칼을 건네주면서 '쓸모도 없는 너, 이 칼로 자결하라' 는 소리로 맴 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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