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5 18:04 (목)
청진기 '족보'라는 이름으로 구겨지는 의사의 백년지대계

청진기 '족보'라는 이름으로 구겨지는 의사의 백년지대계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1.04.29 10:2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충기(세브란스병원 내과 R4)

▲ 김충기(세브란스병원 내과 R4)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 의사의 길을 택하고 있다는 사실은 현재 그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훌륭한 인재들로 구성된 젊은 의사들은 미래에 대한민국을 가장 앞장서서 이끄는 중추적 인재들로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자리잡을 수 있을까?

예나 지금이나 의대생들은 엄청나게 쏟아지는 현대 의학의 지식을 짧은 시간 동안 습득하기 위해 수없이 반복되는 시험을 치른다.

안타까운 점은 많은 학생들이 좋은 의사가 되기 위한 지식을 습득하고자 하는 목적보다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는 심정으로 당장 내일의 시험을 통과하기 위해 '족보'를 탐독한다는 점이다. 물론 족보를 제대로 공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국 시험에 출제되는 내용은 학습과정에서 가장 강조되는 핵심이기에 의사로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지식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공부해야 내용이 모두 족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느 학생들처럼 많은 부분 족보에 기대어 의대 시절을 거친 필자는 모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그게 최선인가요? 확실해요?"라고 다시 묻지 않을 수가 없다.

시험은 매우 효율적인 평가 수단임에는 분명하다. 하지만 곰곰이 따진다면 그 효율성의 기준은 피교육자보다는 교육자들에게 우선한다.

과거의 기출문제를 그대로 내는 것은 그다지 힘들 것도 없거니와 일부 새로 문제를 출제한다고 하더라도 그 내용에 대한 이해의 정도를 각자로부터 알아내기 위한 수고의 총합과 비교한다면 더없이 편리한 방법이다.

무엇보다도 객관화된 절대적 기준을 바탕으로 개인별 평가를 수치화하고 등수를 매기기에 어려움이 없기에 공정성에 대한 시비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좋은 의사를 양성하기 위한 목적을 반영하고자 한다면 평가의 과정은 좀더 유연해야 하며, 족보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울 수 있는 길을 고민해야 한다.

얼마 전 몇 명의 후배 의대생들이 의사국가시험 시험문제를 유출했다는 혐의로 입건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짐작 건데 그들은 나름대로 관행대로 족보를 만들었을 뿐인데 결국 합격도 취소되고 재시험도 유예기간을 거쳐야 하는 '중형'에 처해질 위기를 맞게 된 것이다.

다만 그러한 족보의 관행을 본받아 내리 전하는 데에 일조하여 결과적으로 후배들이 고충을 겪게 되고 있음에 대해 필자 본인 스스로도 송구스럽고 안타까운 마음이다.

세상이 바뀌어 의대생들의 족보는 정당한 평가를 방해하는 반칙으로 규정되고 있고, 결국 선배의 길을 쫓은 애꿎은 몇몇 의대생들은 촉망 받는 인재에서 범법자의 처지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법리적인 판단의 잘잘못을 가리고 싶지는 않다.

다만 빠르게 변화하는 의학이라는 학문 그리고 의료라는 분야에 있어서 더욱 기민해야 할 교육에 대한 고민과 변화의 노력은 오히려 뒤쳐진 결과가 바로 이 사건에서 드러난 것이다. 세상은 선배들처럼 공부하던 의대생들에게 심지어 법적인 처벌을 가하려고 하고 있다.

의대생들은 수십 년을 대를 이어 온 구식의 방법의 틀에 가둬놓아야 하는 기계적인 존재가 아니다. 앞에서 언급하였듯이 그들은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들이고 그 중 많은 이들은 뛰어난 창의력과 진취성을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마저도 당장 눈앞에서 떨어지는 성적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생존을 위해 몸부림칠 수밖에 없음은 자명하다. 기출문제와 요약집과 함께 전투하듯이 치열하게 머릿속에 지식을 잔뜩 구겨 넣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견뎌낸 생존자들을 의료계가 길러낸 최고의 인재들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의학 교육의 도제식 전통은 의학의 시초로부터 비롯되었고 지금에까지 이어져 선배 의사를 선배님이 아닌 선생님이라 부르며 따르고 배우도록 하고 있다.

즉, 선배 의사들은 모두 선생님이며 교육자이다. 변화하는 환경에 맞춰 선배들이 노력하지 않는다면 결국 후배들은 후진적 교육 환경 하에서 사회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으며 의료계 전체의 퇴보를 가져올 수 있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에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사들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금번의 사태의 문제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차후 이러한 안타까운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근본적인 노력을 기울이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