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12:28 (금)
청진기 블랙(Black)에 대처하는 자세
청진기 블랙(Black)에 대처하는 자세
  • Doctorsnews admin@doctorsnews.co.kr
  • 승인 2011.04.15 10:42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 조영대(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부회장)

2011년 2월, 자신이 사용 중인 S전자 휴대폰이 폭발했다며 허위 신고한 혐의로 20대 남성이 구속 기소됐다. 그는 휴대폰을 전자레인지에 넣고 가열해 불태우고는 충전 중 폭발했다고 언론에 허위사실을 유포해 기사가 보도되게 하였을 뿐 아니라, 상습적으로 1인 시위를 벌여 해당 회사를 압박하여 결국 보상금 및 새 휴대폰을 받았다.

이 사건의 경우 기업에 악의를 가지고 접근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노리는 소비자, 이른바 블랙 컨슈머(Black Consumer)를 논할 때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사례이다. 그런데 비슷한 일들을 공중보건의사들 사이에서는 심심찮게 접할 수 있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는가?

"복무담당 계장으로부터 민원을 발생시켰다는 이유로 구두로 주의를 받았습니다. 얼마 전 지소에 방문한 아저씨께서 '처방전 복사'를 부탁하셔서 전원하도록 권유 드렸더니 군청 게시판과 보건소를 뒤집어 놓으셨나 봅니다.

설명은 충분히 시간을 들여서 했음에도 오히려 불친절하다고 몰렸을 뿐만 아니라 위에서는 웬만하면 그냥 들어주라는 식으로 은근히 압박을 합니다. 다른 분들이 오셨을 때도 저렇게 무작정 요구하면 다 해줘야 되는 건가요?"

물론 범죄행위와 해당 민원을 동일 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일 자체가 큰 실례가 될 수 있다. 민원을 제기하는 환자들 대부분은 어떤 악의를 가지고 있어서가 아니라 보건소에서 더 편하게 원하는 것을 얻어낼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요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상위 의료기관의 처방전을 똑같이 원외처방 해달라는 부탁뿐만 아니라, 진료가 필요한 환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대리처방, 충분한 준비 없는 단체출장접종 요청, 당일 초진에 의한 진단서 등의 서류 제출 등 궁극적으로 환자의 건강에 위해를 가할 수 있어 지양해야 될 진료행위들을 하도록 끊임없이 강요받고 있다.

단기간의 항의 혹은 민원 처리에 급급해서 보건소나 시, 군청 등의 행정기관에서 먼저 적당한 선에서 타협하고 조용히 넘기려는 태도가 이러한 '떼법'을 부추기도 한다.

일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오히려 도를 지나쳐서, 비협조적인 선생님들에 대해 민원을 발생시킨다는 이유로 근무지 변경이나 진료장려금수당 삭감 등의 협박을 하는 경우까지 가끔 보고된다(현재 공중보건의사제도 운영지침에는 민원을 유발시킨 때 근무불성실 등의 귀책사유가 있어야 행정처분을 내리도록 되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서 의사-환자 간의 신뢰가 약해지는 사회적인 손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공공의료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젊은 의사들이 오히려 공공의료에 대한 불만세력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오죽하면 3년 사이에 보건소는 쳐다보기도 싫더라는 선생님들이 나올까.

블랙 컨슈머의 경우에는 문제가 제기된 상황에서 기업의 과실인지 소비자의 일방적인 주장인지를 밝혀내기가 쉽지 않다. 원인을 명확히 밝혀내지 못한 상황이라면 문제를 처리함에 있어서 당연히 소비주권을 우선하여 고려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진료현장에 있어서는 외적인 부담을 이유로 의학적인 판단을 무시하는 것이 결국 소비자, 즉 환자들에게 독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공중보건의사들 스스로도 성실의 의무를 수행하며 잘못된 사례에 대해 환자 한 분 한 분을 설득하는 노력을 기울여야겠지만, 공무원들 역시 휘둘리지 않고 원칙적인 대응을 통해 비합리적인 요구가 통하지 않는 풍토를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