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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4 15:38 (수)
의료·건강관리는 '정치철학'의 구현

의료·건강관리는 '정치철학'의 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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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4.08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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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호진(충북 청주·서울아동병원장)

■ 박호진 원장은 1977년 서울의대를 졸업하고, 인제대 서울백병원에서 전공의과정을 거쳐 1985년 내과전문의 자격을 취득했다.

2008년 청주대 대학원(사회학과)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의료사회학>(공저, 2005년), <프로페셔널리즘>(2007년) 등이 있다.

다음 카페에 개설된 '류근일의 탐미주의 클럽(cafe.daum.net/aestheticismclub)-논객의 목소리'를 통해 꾸준히 집필활동을 하고 있다.

필자와 류근일 탐미주의 클럽 운영진의 양해를 얻어 일부를 전제했다.

"의료행위는 정치철학의 구현이다!" 독일의 통일이전 동서독을 연구했던 어느 학자의 결론이다. 환자치료가 정치와 유관하다니 다소 어리둥절하다. 그러나 차분히 뜯어보면 지극히 당연하다. 우리는 그동안 중요한 포인트를 놓치고 있었다.

맹장을 떼는 행위 자체는 가치중립적이다. 미운 놈의 맹장이라고 대충 뗀다는 건 있을 수 없다. 사상, 인종, 빈부의 차이 등을 이유로 일체의 차별을 두어선 안 된다. 그래서 인술이다. 수술행위는 그렇다 치고 수술실은 어떠한가?

모든 제도는 이데올로기에 근거하여 만든다. 의료제도나 건강관리제도도 마찬가지다. 의료행위는 바로 그 제도 하에서 이루어진다. 이데올로기는 병의원의 설립·관리·운영에, 궁극적으론 수술실의 운영과 개별 의료행위에도 영향을 준다. 한국의 정치이념은 헌법에 규정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쟁의 원리다. 이것이 모든 걸 지배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다. 환자가 규정에 어긋나는 처방을 요구했다. 의학적으론 타당했다. 그 요구를 들어주면 필자가 비싼 약값을 건보공단에 다 물어내야 할 판이었다. 치료는 의사의 재량이지만 보상은 그렇지 않다. 장관의 고시에 어긋나는 진료가 되기 때문이다.

환자의 선택권이 인정되지 않아 전액 본인부담도 안 된다. 짜증도 나고 한마디 했다. "청와대에 가보세요. 국민이 뽑은 대통령한테요!"

환자 왈, "당신, 의사 맞아? 당신 믿고 찾아왔어. 날더러 어떻게 하란 말이야. 노xx이가 의사야! 의사!" 거센 항의에 정신이 퍼뜩 들었다. 해결책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의사가 환자와 짜고 건강보험을 속이는 것이다. 진단명을 부풀려 기준을 충족시키면 된다.

부정의(不正義)한 타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스스로 알아서 기면 더 편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다. 그만큼 나의 혼은 병들어 갈 것이다.

필자는 직업을 통해 사회보장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꼈다. 사회통합의 명분은 다 좋다. 하지만 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을 조장할 수 있다. 나아가 부정의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사회주의 제도에서 각 치료는 '사회적 기준'에 따라야 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겠지만 어느 분야든 그 원리는 동일하다. 모든 '필요'는 위원회에서 정한다. 시시콜콜 위원회가 많고 몇 사람이 결정한다. 사회가 주인 노릇한다. 개별 의사와 환자의 의견은 개털이다.

의사는 위원회의 나팔수가 되어야 한다. 잘 되면 체제나 위원회의 공이고, 잘못되면 개인 탓이다. 이게 사회주의의 실상이다.

같은 사회보험이지만 독일은 다르다. 기본 틀과 운영에 자유주의 요소를 최대한 반영한다. 소규모 조합을 여럿 만들고 국민들은 각기 가입한다. 게젤샤프트(Gesellschaft, 이익집단) 개념이다. 비슷한 사람끼리 모여 작은 집단을 구성한다. 구성원은 비용을 부담하고 지출을 결정한다.

자연히 개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각자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다. 개인들의 책임 의식도 높아진다. 정부의 개입은 간접적이고 보조적이다. '보수적 조합주의' 복지 모델이라 한다.

한국에선 사회보험에 대한 오해가 큰 것 같다. '사회'보험이므로 '사회주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나아가 확실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런 사람들 중엔 진짜 사회주의자도 있을 것이다. 오해와 진짜가 뒤섞여 혼란의 시너지를 일으키는 것 같다.

진짜는 뒤에서 미소 지을 것이다. 자신의 의도대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복지 자체라기보다는 복지 교조주의에 매달리는 일부 인사들의 속내를 엿볼 수 있다.

유력한 여당인사가 '맞춤형' 복지를 말한다. 그의 깊은 속을 헤아리고 싶다. 그러나 정신 바짝 차리고 지켜야 한다. 진짜들이 곳곳에 박혀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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