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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

시론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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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2.18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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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태준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일본의사회와 대한의사협회 간의 따뜻한 교류는 일본의 다케미 타로(武見太郞) 회장 시대부터 계속돼 왔으며 가깝고도 가까운 나라의 관계에 있어서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두나라 의사회 간의 이러한 긴밀한 교류 배경 위에 이렇게 일본건강보장 50주년 기념 일본의사회 의료정책심포지엄에 초청 받아 '한국 의료의 빛과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게 돼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국회의원, 보건사회부 장관, 대한의사협회장을 역임하면서 보낸 30여년 간 필자는 한국 의료의 발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또 관련 정책들을 입안한 바 있다. 오늘은 이러한 경험들을 토대로 지난 30년 간 한국 의료의 비약적인 발전과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대해 발표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건강보험제도 도입 배경 및 경과

▲ 문태준 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1960~70년대 한국의 경제와 사회는 한국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상처로부터 점차 회복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최하위 후진국 상태를 면치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1인당 국민소득은 미화 1000달러에 불과했고 심한 빈부의 격차와 의료비 상승, 공공부분 의료기관 미비 등으로 인해 국민들이 현대적인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의 성공적인 건강보험제도 도입은 한국의 당시 여당 정치인들 사이에 건강보험제도에 관해 관심을 갖게 하는 계기가 됐고, 당의 요직에 있던 본인을 포함해 연구회가 구성되기에 이르렀다.

연구회는 1년 간의 검토를 거쳐 한국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 구체안을 마련해 대통령께 건의했다. 도입과 관련한 몇 가지 원칙으로서

1) 원칙적으로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한다
2) 우리나라의 경제 상황 개선에 따라 각 계층별로 점진적으로 적용 인구를 확대해 나간다
3) 취약한 병원시설(특히 지방의 시도립병원)에 투자를 증대해 의료보험제도를 감당할 수 있을 수준으로 현대화해 나간다
4) 의료보험수가 결정은 정부가 행정편의주의에 치우쳐 일방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각계각층과 협의해서 조정해 나간다는 방침을 세웠다.

그러나 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반대의 목소리도 만만치 않았다. 정부기관의 재정 담당 공무원들은 1인당 국민 소득이 미화 1000달러에 지나지 않는 취약한 경제 기반에서 전국민건강보험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무리라는 입장이었다.

또 의사들은 의료보험제도가 채택될 경우 보건의료 정책 전체가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에 좌우되어 의사들의 독립성과 자율성이 손상될 것을 우려했다.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어려운 사람들의 실정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었던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결단에 힘입어 의료보험제도가 채택되기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은 빈곤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치료비가 없어서 의료기관을 이용하지 못하고 어려움을 당했던 여러 환자들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전국민의료보험제도를 도입하는 데 대해 결심을 굳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하에 1977년 7월 한국에서 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정부는 먼저 직장의료보험으로서 5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들을 위주로 해서 적용범위를 정했고 고용자들이 보험료의 50%를 부담하도록 결정해 보험료 징수에 문제가 없도록 했다. 안정적인 구조하에서 재정적인 문제를 예방해 제도 실패의 위험성을 최소화하고자 한 지혜를 볼 수 있다.

1979년 1월에는 공무원과 사립학교 교직원을 편입했고, 1988년 7월에는 5인이상 근로자의 사업장까지 적용했다. 현재는 1인 근로자 사업장도 적용 대상으로 포함되는 등 직장의료보험은 비교적 순탄하게 확대의 길을 걸어왔다.

반면 농어촌 지역 주민과 자영업자들을 주로 하는 지역의료보험은 확대 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데 그 이유는 정확한 소득 파악의 어려움으로 인해 공평한 보험료 부과체계를 설정하는 것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러 가지 어려움을 뒤로 하고 1981년과 1982년의 시범 사업을 거쳐 1988년 1월 전국의 농어촌 지역을 대상으로 해 농어촌의료보험을 시작, 지역보험 확대의 큰 전기를 마련했다.

주목할 점은 보험료 납부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는 이들을 위해서 정부가 30%의 보험료를 보조하는 방침을 정해 즉각 시행함으로써 지역의료보험의 실패를 방지하고자 했던 점이다.

건강보험제도를 전국민 규모로 확대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부분은 도시의 자영업자를 포함시키는 문제였다.

당시 한국의 세금징수체제에 미흡한 점이 많았던 관계로 도시 자영업자의 약 70% 이상이 세금을 내지 않는 상태에 있었다는 점이 의료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데 있어 큰 난관으로 대두됐다.

이런 문제들을 헤쳐나가야 했던 1988년에는 공교롭게도 필자가 보건사회부 장관직을 맡고 있었는데, 돌이켜보면 그때가 일생에서 가장 열심히 일했던 시기가 아니었나 싶다.

한국은 의료보험제도 도입 과정에서 일본과 같은 조합주의를 채택했는데 이러한 조합주의는 도시 자영업자를 적용 대상에 포함하는 문제에 있어 상호간에 불평 없이 비교적 공정하게 소득과 보험료 납부액을 결정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인구가 밀집되어 있고 거의 모든 국민들이 일일생활권에 속해 있는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웃끼리 서로 돕는다는 근본 정신을 기반으로 한 조합주의는 건강보험제도의 성공적인 정착에 단단한 기반이 됐다.

그러나 조합 간 보험료 부담 및 급부 불형평은 조합주의의 단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더해 한정된 풀링(pooling)으로 인한 재정불안정 문제와 소득이전의 효과가 낮다는 문제도 있다.

한국에서도 1990년대에 들어 각 조합 간 보험재정의 격차와 의료 이용, 보험료 부과를 둘러싼 불형성이 문제가 되어, 단계적인 보험자 통합을 거쳐 2003년 완전통합, '국민건강보험관리공단'이라고 하는 단일보험자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다수의 보험자인 조합주의에서 단일 보험자인 통합주의로 변경된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통합주의는 폭넓은 풀링을 통한 재정안정과 소득이전 효과가 있고, 보험료 부담과 급부에 있어 조합 간의 불형평을 어느 정도 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의 보험자 통합 이후 지역보험에서 있어서의 보험료 부과의 불형평 문제는 어느 정도 개선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공단 조직의 비대화에 따른 효율 악화와 경쟁 감소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어, 아직 통합에 대한 전체적인 평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리고 있다.

여러 난관을 극복하고 1989년 7월 1일 마침내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출범할 수 있었다. TV를 통해 오늘부터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은 어느 병원에 가서도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연설한 것은 한 사람의 의사로서 또 한 사람의 정치인으로서 영원히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이었다.

진료비가 없어서 진료를 포기하고 진찰실에서 돌아서는 환자 및 환자 가족들의 축 늘어진 뒷모습을 쳐다보는 것이 늘 의사로서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이었는데 이를 건강보험제도의 도입과 성공적인 운영을 통해서 일단 해결할 수 있었던 데 대해서는 감회가 남다르다.

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된 이래 지난 30여년 간 의료기반 확대와 국민 건강 지표 등에서 획기적인 성과가 있었다.

우선 국민들의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1977년 가입자 1인당 0.1일에 불과하던 입원, 내원일수가 2009년 기준으로 1.91일로 증가했고, 외래 내원일수 역시 1977년 0.7일에서 16.07일로 늘어났다. 의료기관 내원일당 진료비 역시 입원은 4만 1334원에서 12만 5131원으로, 외래는 6530원에서 1만 7998원으로 증가했다.

의료수요가 급속하게 증가함에 따라 의료공급 측면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는데, 종합병원은 1980년 82곳 이었던 것이 2009년에는 296곳으로 증가했고 병원의 대형화 현상도 두드러졌으며, 의원급 의료기관도 1980년 6363개소에서 2009년에는 2만 7036개소로 증가했다.

의료인력도 증가해 인구10만명당 의사인력은 1981년 39.7명이던 것이 2006년 141.1명까지 증가했고 의료기관의 증가에 따라 병상수도 증가했는데, 특히 병원급 의료기관에서의 병상수 증가가 눈에 띈다.

건강보험제도가 성공적으로 정착해 국민 건강 향상에 기여했다는 점은 각종 건강지표의 개선을 통해서도 살펴볼 수 있다.

우선 기대수명은 1960년에 52.4세로 OECD 평균인 68.37세보다 16년 정도 낮았으나, 2005년도에는 78.5세로 OECD 평균치에 도달했고,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OECD 국가의 2배에 달하던 영아사망률은 2002년 현재 출생 1000명당 5.3명으로 OECD 평균인 6.2명에 비해 낮은 수치를 나타내는 등 획기적인 진전이 있었다고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건강보험제도가 정착하는 이면에는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었다.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의 특이한 점은 피조합원들이 지역과 종류에 관계 없이 의료기관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점인데, 이러한 정책은 대형병원으로의 환자 쏠림 현상을 부추겼으며 서울의 유명한 병원일수록 환자의 급격한 집중이 문제화 됐다.

병원 이용에 있어 본인부담금을 차등화 했으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었다. 이와 더불어 3시간 대기, 3분 진료라는 문제도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운영관리 측면에서도 건강보험제도를 관리하는 공단 조직이 지나치게 비대해져서 재정적인 비효율을 초래하고 있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정치적인 면에서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한국은 건강보험제도를 도입함에 있어 건강보험제도를 총괄하는 철학에 대한 논의와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즉 '고부담·고급여'의 원칙을 내세울 것인지 '저부담·저급여'의 원칙을 내세울 것인지 지향점을 명확히 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뚜렷한 지향점 없이 정부·노동조합·기업·시민단체는 의료비는 무조건 저렴할 수록 좋다는 고정관념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고 이러한 고정 관념은 일부 정치인들의 소모적인 포퓰리즘과 결부해 급여 확대에 대한 환상을 불어넣고 있다.

반면 급여 확대에 따른 부담 증가에 대해서는 누구도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2000년 보험자통합과 의약분업이라는 큰 변화가 있은 후 건강보험재정은 위기에 놓였다. 보험자통합과 의약분업의 실시 여파로 인해 재정지출이 증가해 보험료 인상과 국가재정 지원을 통해 겨우 안정화시킬 수 있었다.

▲ 2일 일본의사회 초청으로 '일본 건강보장 500주년 기념 의료정책 심포지엄'에 참석한 문태준 의협 명예회장이 '한국의료의 빛과 그림자'를 주제로 특강을 하고 있다.

위기가 진정되자 정부는 보장성 강화방침을 정하고 2006년 6세 미만의 아동 입원비를 무료화하고 입원환자의 식대를 80%까지 지원하는 정책을 실시하게 되는데 이 정책은 또 다시 건강보험 재정을 적자로 만드는 원인이 됐다.

결국 2008년 6세 미만 아동 입원비는 10% 본인부담, 입원환자의 식대는 50% 지원으로 한 발 후퇴하게 된다. 지금의 건강보험재정이 그대로 유지될 경우, 2030년에는 48조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국민건강보험공단은 추정하고 있다.

재정파탄을 막기 위해서는 매년 보험료를 3~5%로 인상해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실에서 알 수 있듯이 급여 확대에는 부담 증대도 필수적으로 따르게 마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한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무상의료'는 건강보험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지 않는 무책임한 복지 포퓰리즘일 뿐이다.

마지막으로 건강보험제도 하에서 의료 공급의 주체가 과연 누구냐 하는 혼란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정부와 건강보험공단이 공급자가 되고 의사회는 그들의 지시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 노릇을 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점이 심히 우려된다.

향후의 과제로서 건강보험재정을 강화하기 위한 대책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고 넘어가고자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보험료를 적정 수준으로 인상하는 것인데, 현재 한국의 보험료율은 5.64%로서 사회보험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라고 할 수 있다.

또 건강보험에 대한 정부지원금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것이 필요하고 건강보험재원을 다양화하는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는 담배에만 건강부담세를 적용하고 있지만, 이에 더해 주류 등에 건강부담세를 적용하는 것도 고려해 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건강보험제도 도입 경과와 성과 및 과제 등에 대한 발표는 이 정도로 마무리하고 지금부터는 일본과 비교해 한국 의료의 특수한 부분에 대해 잠깐 살펴보고자 한다.

한국의 건강보험법에서는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비급여로 명시, 이론적으로는 이러한 비급여를 제외한 의료행위는 모두 급여의 대상이 된다고 볼 수 있다.

비급여의 주요한 예로는 로봇 수술, MRI 등 신의료기술에 의한 치료와 정책상 급여를 인정하기 어려운 항목(상급병실 차액료 등), 일정 기준을 충족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를 희망할 경우의 선택진료 등을 들 수 있다. 비급여는 100% 본인부담이다.

그러나 이론적으로는 비급여를 제외한 의료행위는 전부 급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더라도 실제로는 진료비 심사에 있어서 급여에 대한 별도의 급여기준이 존재, 임의비급여라는 부분이 발생해 매우 복잡한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급여기준을 초과하는 의료행위는 인정받지 못하지만, 환자를 진료하는 데 필요하기 때문에 환자와 의료기관 간 합의를 거쳐 환자에게 진료비를 부담시키는 것이 임의비급여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임의비급여는 급여기준의 불명확함과 건강보험재정의 한계가 원인일 것이다. 임의비급여의 주요한 예로서는 수술재료대, 고가의 암환자 약제 비용 등을 들 수 있다.

한국에서는 하나의 질병에 대해 급여항목과 비급여항목을 섞어서 진료하는 이른 바 '혼합진료'가 가능하다. 일본에서는 원칙적으로 금지되어 있는 혼합진료가 한국에서는 건강보험제도 도입 초기부터 인정된 이유는 '저보험료/저급여/저수가'의 구조하에서 한정된 급여를 보완해 환자의 니즈에 부응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또 보험재정 부담 증가를 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의미도 있었다. 비급여와 혼합진료로 인해 정부는 건강보험 급여 항목을 확대해 나가면서도 보험재정에 대한 과도한 압박을 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비급여와 혼합진료는 높은 본인부담이라는 결과를 가져왔다.

2008년 현재, 건강보험 보장률은 62.2%로서 이는 OECD 국가의 평균 보장률인 80%와 비교하면 낮은 수준이다.

2008년 현재, 전체 진료비에서 보험재정 부담률(보장성)이 62.2%, 법정본인부담(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의료행위에 대한 본인부담)이 22.6%, 비급여진료에 대한 본인부담이 15.2%를 차지하고 있다(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건강보험환자의 진료비 총 58조원 중 보험재정에서 약 35조원, 법정본인부담 약 23조원, 비급여본인부담 약 11조원 정도로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에서도 현재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건강보험진료비 청구 및 심사 전산화에 대해서도 잠깐 언급하고자 한다. 한국에서 진료비 청구 전산화는 1996년부터 EDI에 의한 진료청구 시범사업을 실시한 이후 2004년 전자청구율 99%를 달성했다.

또 진료비 심사건수도 크게 늘어 2000년 4억1천만 건이었던 진료비 심사건수는 2009년에는 12억 8000만 건으로 3배 이상 증가했다. 이러한 심사에 있어 전산화를 추진, 심사의 전문성과 효율을 도모하고자 했다.

2010년 청구건수의 50% 이상을 전자심사를 통해 처리하고 있다. 이를 통해 연간 약 930억원 정도의 의료비를 절감하고 150명의 인력을 대체하는 효과가 있었다.

맺음말

1958년에 필자가 미국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여 연세대학교병원에서 뇌신경외과학과장으로 근무했을 때 만난 12세 소년과 그 가족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다.

소뇌의 종양으로 수술이 필요한 소년의 아버지에게 상황에 대해 설명하고 수술을 권유하게 됐다. 시골 농부였던 소년의 아버지는 가족들과 의논하겠다며 시간을 달라고 하고 문 밖에 있는 부인과 이야기하러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는 "소작농으로 5인 가족으로 전 재산은 농사 짓는 데 필요한 황소 뿐인데 수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황소를 팔면 살아갈 길이 막막해 지기 때문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을 참고 수술을 포기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하고 진찰실을 나갔다.

힘없이 돌아서는 소년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면서 30대 초반의 젊은 의사로서 아무 것도 해 줄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깊은 좌절을 느꼈다.

왜 의사가 되었는가? 미국에 가서 최신 의료지식과 기술을 배우고 돌아왔지만 사회 전체가 빈곤한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 하는 고민이 나를 무겁게 짓눌렀다.

세월이 흘러 30년 후인 1988년에 빛이 찾아왔다.

오늘 여러분에게 설명 드린 바와 같이 여러 과정을 거쳐 한국에서도 전국민건강보험이 완성돼 1989년 7월 1일 필자가 TV 연설을 통해 "오늘부터 모든 국민이 재정적 부담 없이 자유롭게 의료혜택을 받게 되었습니다" 라고 선언한 순간은 의사로서, 그리고 정치가로서 국민들에게 빛을 선물할 수 있었던 잊지 못할 소중한 순간이었다.

의사와 환자 간에 놓여 있던 재정적 장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었다. 그 과정에서 스스로가 역할을 할 수 있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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