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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우리나라 의사들의 우리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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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3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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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중앙의대 교수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 안지현(중앙의대 교수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요즘 방송과 인터넷에 생소한 단어들이 즐비하다. '엄친아', '완소남', '차도녀', '레알'…. 모임에 나가 무슨 뜻인지 어리둥절해 하면 구석기시대 인물이나 외계에서 온 생물체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인터넷 검색으로 새로운 단어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다. 휴대전화 문자 몇 글자로 안부를 묻고, 업무 중간에도 컴퓨터 메신저로 짧은 대화를 나누며, 140자 안에 감정까지 담아 전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에 살고 있으니 띄어쓰기·맞춤법 정도는 가볍게 무시해주고, 간편하게 줄인 신조어는 애교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아무리 언어가 시대를 반영한다지만 이들 단어의 생명력이 과연 얼마나 갈까 싶다. 하기야 의대와 병원에 들어와서 처음 듣게 된 '땡시'며 '종병'이라는 말도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

'귤화위지(橘化爲枳)'라고는 하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언어를 마치 일본어인양 꾸며 내놓는 경우가 허다하다. 국민들에게 대사증후군(metabolic syndrome)의 경각심을 알리기 위해 영어의 앞 발음을 따서 '메타보(メタボ)'라는 단어까지 만들어 캠페인에 나설 정도다.

돌아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 가운데 일본어인 것을 잊고 무심코 우리말처럼 쓸 때가 있다. 이제는 일본어인 '쇼부' 대신 '승부'로, '와꾸' 대신 '틀'로, '유도리' 대신 '융통성'이라고 말하는 습관을 들이자. '야채'가 일본식 표기이므로 대신에 '채소'라는 단어를 쓰자는 의견도 있다.

깊이 들어가면 우리말을 제대로 쓰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아나운서들은 고마움을 전하는 말로 '감사(感謝)합니다'보다는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를 선호한다.

'고맙습니다'가 순우리말이기 때문인데 실제 우리가 쓸 때에는 윗사람이 '감사합니다'를 높임말로 받아들일 거라는 막연한 생각에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주저하게 된다. '축하드립니다'보다는 '축하합니다'가 더 적절한 표현이지만 역시 같은 이유에서 '드립니다'로 인사할 때가 많다.

예전에 표준어였던 '더우기'(×)도 '더욱이'(○)로, '있읍니다'(×)도 '있습니다'(○)로 바뀐지 오래지만, 덩달아 '있음'(○)을 '있슴'(×)으로 잘못 아는 사람이 많다. 또한 '몇일'(×)이 아니라 '며칠'(○)이고, '삼가하다'(×)도 '삼가다'(○)로 써야 옳다. '소고기'(○), '쇠고기'(○)는 어떻게 써도 무방한 복수 표준어로 인정되었다.

내가 한국어 원어민인데 뜻만 통하면 그만이지 왜 피곤하게 단어 하나하나에 신경을 써야 하냐고 할 수도 있다. 물론 국어학자도, 아나운서도 아닌 이상 모든 표현의 옳고 그름을 꼼꼼히 따지기는 어렵다.

하지만 더 바른 표현을 알게 되면 바로 잡는 습관이 좋지 않을까? 공문서가 잘못된 우리말 투성이면 영어 철자가 틀린 이상으로 신뢰감을 떨어뜨린다.

가끔 진료실을 찾아오는 외국인 환자를 보내고 나서, 해외의료봉사에 나서기 전, 영어로 논문을 쓰거나 발표를 앞두고 서둘러 영어 표현이 맞는지 찾아보는 정성의 아주 작은 일부를 떼어 우리말 바르게 쓰기에 투자하는 것은 어떨까?

올해로 국립국어원이 문을 연지 20주년을 맞이했다. 한류 열풍으로 세계 각국에서 한국어 배우기 열기가 한창이니 지구상에 우리말 사용 인구가 1억을 돌파할 날이 기다려진다.

어렵고 복잡한 표현은 차차 관심을 갖더라도 지금 먼저 하나만 고쳐보자. 학술대회 좌장이나 발표자, 방송에 출연한 의사들이 종종 겸손의 미덕에서 '저희나라'라고 할 때가 있는데 '우리나라'라고 해야 옳은 표현이다.

즉 주권국가인 대한민국만큼은 낮추지 말고 '우리나라'라고 해야 한다. 공인·연예인 등이 방송에서 '저희나라'라고 했다가 두고두고 인터넷에 회자되는 경우를 자주 본다. 이제부터 우리나라 의사들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든 '우리나라'라고 자신있게 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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