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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총액계약제 논의 전 짚어봐야 할 문제
시론 총액계약제 논의 전 짚어봐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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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2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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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두륜(변호사 법무법인 세승)

최근 들어 총액계약제가 의료계의 이슈가 되고 있다. 특히 곽정숙 의원 등이 지난 11월 2일 총액계약제 도입과 관련한 국민건강보험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발의하면서, 앞으로 이 문제는 정치권에서도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아직 총액계약제의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된 바 없어서 제도의 당·부당을 평가하기는 이르다. 그러나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고 있는 일부 국가들의 사례나 총액계약제의 본질적인 내용 등에 비추어 볼 때 총액계약제 도입에 반대하는 의료계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간다.

총액계약제 도입은 2000년 의약분업 이후 우리나라 의료시스템에 일대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이슈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단순히 건강보험 재정 안정이라는 시각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보다 다양한 관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총액계약제 도입을 논의하기 전에, 다음과 같은 점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첫째, 총액계약제하에서 당연지정제를 유지할지 여부이다. 총액계약제는 의료인이 지불받을 수 있는 진료 수익이 총액으로 제한되어 있다. 의료인이 창의적인 진료를 할 동기가 없으므로, 의료의 질은 저하될 수 밖에 없다. 의료인의 직업의 자유가 제한되고, 환자들의 진료선택권이 침해될 수 있다.

2002년 10월 헌법재판소는 요양기관 당연지정제를 합헌으로 선고하면서도, '의학의 새로운 발전과 기술개발에 부응하는 진료수가의 조정을 통하여 시설규모나 설비투자의 차이, 의료의 질적 수준의 다양함을 보다 정확하게 반영해야 하며, 의료인에게 의료기술발전에 동기부여를 할 수 있는 신의료기술의 신속한 반영체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런데, 총액계약제 도입은 위와 같은 헌법재판소의 권고사항과는 전혀 반대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총액계약제 하에서 당연지정제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은 위헌 소지가 높다고 생각한다.

둘째, 임의비급여 또는 보험외진료의 허용 여부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요양급여기준에 위반되는 비급여 진료를 무조건 불법으로 간주해 왔다. 현재의 행위별수가제 하에서도 행위별 수가간의 불균형과 신의료기술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문제점이 많이 제기되고 있다.

그에 따라 최근 법원 내에서도 임의비급여를 제한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총액계약제 하에서는 이러한 신의료기술 도입 및 그에 대한 적절한 보상이 행위별수가제 보다 더욱 어렵다. 따라서, 총액계약제 하에서는 임의비급여 또는 보험외진료를 지금처럼 막기가 어려울 것이다.

셋째, 계약당사자로서 의료인단체의 대등한 지위를 인정하는 문제이다. 현재의 수가계약제 하에서도 사실상 의료인단체는 보험자에 비해 열악한 지위에 있다. 의료인단체는 보험계약 체결을 거부할 수도 없고, 일방적인 수가 지정에 대해서 진료를 거부하거나 단체행동을 할 수도 없다.

진료를 거부하거나 단체휴업 또는 폐업을 하는 경우에는 의료법에 따라 처벌된다. 이는 계약제의 본질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총액계약제가 도입된다면, 사실상 의료인은 정해진 급여를 받는 근로자의 신분과 크게 다를 바 없다.

근로자가 근로조건 향상을 위해서 단체행동이나 단체협상을 하는 것과 같이 의료인단체나 의료인에게도 그와 유사한 권리가 인정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째, 의료인단체에게 예산을 배분하고 관리, 감독할 수 있는 권한과 권위를 부여하는 문제이다. 의료법상 의료인단체는 모든 의료인이 당연히 가입해야 하는 법정단체로 되어 있지만, 의료인단체는 회원들을 관리하고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사실상 임의단체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료인단체가 보험자와 예산에 관한 계약을 체결하고, 정해진 예산을 내부적으로 적절히 배분·관리할 수 있겠는가? 의료인단체에 주어진 역할만큼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

아울러, 현재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갖는 진료비에 대한 심사권한도 의료인단체로 이전되어야 하는데, 과연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심사권한을 순순히 내놓을지 의문이고, 심사권한이 넘어간다고 한들 과연 의료인단체가 심사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는 더욱 걱정스럽다.

그 외에도 정책적으로 고려해야 할 내용이 많은데, 두 가지만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총액계약제로 인한 의료의 질 저하와 의료산업의 침체를 막기 위하여는 의료산업화 내지는 신의료기술에 대한 활성화 방안을 반드시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의료의 질 저하로 발생하는 의료사고에 대해서 국가 또는 보험자가 피해보상기금을 마련하여 전부 또는 일부를 배상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재 일부에서 주장하는 총액계약제는 건강보험 재정 안정에만 주안점을 둔 제도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건강보험 재정의 문제는 매우 다양한 원인으로 발생한 구조적인 것이지, 행위별수가제로 인한 과잉진료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건보재정 악화가 문제라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총액계약제 도입은 신중해야 한다. 만약 부득이하게 총액계약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우선 총액의 범위와 설정방법, 계약의 당사자와 방식, 예산의 분배와 심사 등에 있어서 의료공급자가 공감할 수 있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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