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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반쪽짜리 DUR로 국민건강 지킨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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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은아 기자 eak@doctorsnews.co.kr
  • 승인 2011.01.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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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국 일반약 DUR 적용 안해…병원급 도입 시일 걸릴 듯
개원의들 "귀찮아도 명분있어 참여" 일방 희생 강요 '불만'

Cover Story

▲ 제주도 A대학병원 문전약국 입구에 '타이레놀을 금기 약물과 병용하거나 중복 복용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주겠다'는 친절한 안내문을 걸어둬 기대감에 부풀게 했지만, 실제 점검 행위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지난해 12월 1일부터 DUR(의약품처방조제지원시스템) 제도가 전국적으로 시행됐다.

1월 7일 현재 DUR 프로그램을 탑재한 요양기관은 전체 15%. 기관별로는 약국이 41%로 가장 높은 반면 의원급은 3.2%로 아직 낮은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청구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의 개발이 완료되는 1월 말쯤이면 의원급 의료기관의 프로그램 탑재율이 41%까지 올라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2003년 약사 중심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DUR제도가 2010년에서야 빛을 보게 된 데는 의료계의 역할이 컸다. 조제 단계 DUR의 한계와 안전한 약물 사용의 필요성을 인식한 의료계가 DUR 도입과 제도 설계에 적극 참여하고 나서면서 '진정한' 의미의 DUR 물꼬가 트였다.

하지만 DUR을 적용하지 않고는 전자 급여청구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4월 1일까지 3개월 남짓 남겨둔 지금, 올바른 DUR제도 도입을 위한 선결조건의 추진 상황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앞서 살펴봤듯이 DUR 탑재율이 높지 않은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실제 지난해 12월 초 <의협신문>이 실시한 개원의 대상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9%가 4월 1일까지로 돼있는 유예기간 동안 추이를 지켜본 뒤 DUR 구동시기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답해 아직도 상당수 의사들이 DUR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부분의 의사들이 DUR 서비스의 취지에 공감하고 있는 것과는 상반된 현상이다. DUR 시행에 따른 진료시간 지연과 환자와의 불필요한 마찰, 심사조정 증가 등에 대한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DUR, 그들만의 리그는 안 된다"

2010년 12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발표한 DUR 제주도 시범사업 평가 결과에 따르면 의사들은 향후 필요한 제도적 장치로 ▲약국판매약(일반의약품) 포함 ▲병원급 의료기관의 DUR 시행 ▲팝업창 조치 인센티브 부여 ▲비급여 처방약 포함 등을 꼽았다.

제주도 지역 시범사업에 참여하고 지금도 진료 과정에서 DUR을 적용하고 있는 D내과 L원장은 현재의 DUR제도를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렀다.

일반의약품의 경우 시범사업에서도 아세트아미노펜·나프록센·아스피린 장용정·슈도에페드린+트리프로리딘 등 4개 성분에만 적용됐을 뿐 아니라, 이마저도 중복처방·병용금기 점검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인근지역 S내과 L원장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이 원장은 "사실 DUR 점검으로 팝업창이 뜨는 경우의 대다수는 소화제나 제산제가 2~3일 정도 겹치는 경우"라며 "병원급 의료기관이 보통 한 달이나 보름씩 장기 처방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의원급 DUR로 거둘 수 있는 효과는 상대적으로 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진정한 의미의 DUR은 일반의약품과 병원급 의료기관이 참여해야만 가능하다는 지적이다.

제주시에 개원하고 있는 P내과 P원장은 시범사업 때 6개월 남짓 참여했다가 지금은 아예 청구프로그램의 DUR 옵션을 꺼뒀다.

P원장은 "조금 귀찮고 불편하더라도 환자를 위해서라면 할 수 있다"면서 "하지만 지금처럼 약국 빠지고 병원 빠지는 DUR은 개원의가 약을 덜 쓰도록 하려고 감시하는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약국 자율에 맡겨서 될 문제인가

지난해 7월 대한의사협회 DUR대책위원회는 제주도 시범사업의 현지점검을 벌였다.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일반의약품을 구입하려 할 때 약국에서 신분증을 확인하거나 병용금기나 중복처방이 있더라도 환자에게 설명하는 등 적절한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지난해 12월, 3단계 DUR(전국 확대 시행)과 가장 근접한 형태의 DUR을 운영해본 경험이 축적된 제주도에서 조차 일반의약품 DUR은 자리잡지 못했다.

기자가 실제로 방문한 A대학병원 문전약국은 입구에 '타이레놀을 금기 약물과 병용하거나 중복 복용하고 있지 않은지 점검해 주겠다'는 친절한 안내문을 걸어둬 기대감에 부풀게 했지만, 실제 점검 행위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

약사는 타이레놀을 요구하자 "나라에서 타이레놀을 얼마나 드시는지 조사하고 있다"며 A4용지에 이름을 적고는 약을 내줬다. 어떤 약을 복용하고 있는지, 중복해서 약을 복용하고 있지는 않은 지에 대한 조사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중복 복용이나 병용금기 복용을 걸러낼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순간이었다.

이에 대해 약사들은 주민등록증을 일일이 확인하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고 있지만, 개원의들은 병원에서도 내원 때마다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연락처 등을 매번 확인하고 있는 만큼 필요하다면 환자를 설득해서라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윤창겸 DUR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의료정책포럼> 기고문에서 "시범사업 연구 결과에서 보듯 자신의 건강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겠다는 대국민 설문결과는 일반의약품에 DUR을 적용해야 한다는 국민의 기대와 의지를 보여준다"며 "이를 통해 환자가 복용하는 모든 약에 대한 정보를 의사가 추적관찰할 수 있게 돼 환자의 건강권 확보에 만전을 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책임과 의무만 늘고 지원은 없다

전국적인 DUR제도 시행이 넘어야 할 관문 중 하나는 병원급 의료기관에 DUR을 도입하는 것이다. 복지부는 내년 말부터 병원급에 있어서도 DUR을 탑재해야 급여 청구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방침이지만, 계획대로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지난해 8월부터 DUR 시범사업에 참여한 제주대병원은 12개 진료과 17명의 교수가 원외처방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DUR을 시행하고 있다.

그나마 2년 전 병원을 이전하면서 전산 환경을 대대적으로 개선한 것이 도움이 됐는데, 올해 상반기 안으로 원내처방에 대해서도 DUR을 적용할 예정이어서 서버와 네트워크를 증설하는데 약 5000만원 정도의 예산을 추가 투입할 예정이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소요되는 시간과 안정적인 시스템 운영에 대한 부담감이 만만치 않다는 게 제주대병원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원대은 제주도의사회장은 "그나마 규모가 큰 대학병원은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중소병원의 경우 전산프로그램 개발 업체가 도산하는 등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원활하지 않은 사례도 많아 DUR 도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지적했다.

이아나 제주대병원 전산팀장은 "1일 평균 2000여명의 환자가 왔다갔다 하는 상황이라 사소한 시스템 장애라도 발생할 경우 의원급에 비해 상대적으로 피해가 엄청나다"며 "병원들이 제대로 시스템을 구동할 수 있도록 인프라 구축에 대한 정부 지원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수가 지원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현재의 수가제도가 모든 행위별로 의사의 업무량·소요시간·위험도 등을 분석해 상대가치 점수를 책정하고, 이에 대해 수가가 결정되는 방식이기 때문에 DUR제도가 본격화됨에 따라 발생하는 의사의 추가 업무량과 소요시간을 보상해줘야 한다는 것.

제주에서 개원하고 있는 S내과 L원장은 "환자가 100명 가량 되다보니 DUR을 시행하기에 버거운 것이 사실"이라며 "국민 건강을 생각해서 동참하고 있기는 하지만, 의사에게 도움이 되는 것 없이 희생만 강요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윤창겸 위원장은 "정부에서 주도하니까 무조건 따라오라는 과거 방식을 답습하기 보다는 행위에 따라 정당한 수가를 신설함으로써 제도의 수용성을 높이고 나아가 제도의 연착륙을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일국 복지부 의약품정책과장
지난해 12월 1일부터 DUR제도가 전국으로 확대 시행됐지만, 아직까지도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다. 일반의약품에 대한 DUR 적용·병원급 의료기관의 참여·의료기관에 대한 인센티브 등이 그것이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의 의견을 들어봤다.

그동안 표류해왔던 DUR제도가 전국 단위로 시행된 데는 어떤 계기가 있었다고 보나?

-의약품을 중복해서 복용하는 것이 문제라는 점에 대해 국민도 많이 알게 됐다. 그동안 같이 먹을 수 없는 의약품에 대한 연구 결과들도 축적됐고,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기반도 갖춰지는 등 시점이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또 의사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에 의원급, 나아가 병원급까지 확대할 수 있게 됐다.

아직까지 상당수 의사들은 처방 정보나 진료 정보가 노출되거나 잘못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지난번 심평원 설명회에서 우려가 해소된 것으로 안다. DUR로 인한 정보를 다른 목적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DUR제도는 처방단계와 조제단계 모두에서 적용되는데, 이러한 형태로 계속 가는 것인가?

-이중으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할 수도 있고, 불필요할 수도 있다. 국민 건강 차원에서는 병·의원에서 한 번 거르고, 약국에서 한 번 더 거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또 일반의약품까지 제도를 확대하게 되면 약국의 역할이 있기 때문에 현재의 형태로 계속 갈 것이다.

일반의약품의 경우 시범사업에서는 일부 성분만 포함됐다. 일반의약품은 어느 정도까지 포함시킬 것인가?

-아직 논의 중이다. 2월 중으로 관련 위원회를 열어 일반의약품에 대해 DUR 제도를 언제부터 어느 범위까지 적용할 것인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당초 일반의약품은 DUR에 포함시키기로 한 사안이고 또 일반의약품에 대해서도 DUR제도를 적용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기 때문에 상반기까지 방안을 마련하겠다.

일반의약품은 전문의약품과 달리 DUR을 강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나?

-DUR은 의사나 약사가 국민 건강을 위해서 참여한다는 전제가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강제한다고 참여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다만 약국에서 주민등록증을 요구하기가 어렵다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어 더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은행에서 카드 비밀번호를 누를 때 사용하는 방식이나 기타 다양한 방안을 고려하겠다.

DUR참여기관에 대해 수가나 인프라 구축을 지원할 계획이 있나?

-DUR로 인한 의료비 절감 여부가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수가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 DUR은 의료비 절감 보다는 국민 건강을 위한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진행하는 것이다. 병원급 의료기관의 부담이 있을 것으로 알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협조해주실 것으로 믿는다.

 

원대은 제주도의사회장
"일부 의원만 참여해서는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지난해까지 제주도에서 시범사업이 진행됐지만, 사실상 이제부터가 진짜 시범사업이다."

지난해 제주도 지역에서 진행된 시범사업을 진두지휘하며 의원급 의료기관의 참여율을 높이는 데 기여한 원대은 제주도의사회장은 앞으로 전국적 DUR사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원 회장은 "DUR이 당초 복지부 계획대로 약사 중심으로 운영된다면 이미 나간 처방을 다시 변경을 해야 해 번거로울 뿐 아니라 각자 업무에 바쁜 상황에서 원활한 피드백이 이뤄지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특히 환자가 많은 의원의 경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지만, 처방 단계에서 DUR을 실시하는 것이 원칙적으로 맞다"고 말했다.

원 회장은 이어 "처음에는 시스템이 느려서 버벅거리기도 했지만 지금은 크게 문제되는 사례는 많이 줄었고, 시간도 과거에 비해 단축됐다. 다만 전국에서 심평원 서버에 접속할 경우 시스템이 제대로 돌아갈지는 걱정"이라며 "시범사업은 의원급 의료기관과 대학병원 한 곳만 대상으로 했지만, 동네의원의 참여만으로는 DUR 제도의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용금기나 중복처방을 거르기 위해서는 국민들이 손쉽게 구입해 복용하는 일반의약품과 장기 처방이 많은 병원급 의료기관의 참여가 필수적이라는 것.

원 회장은 정부가 제대로된 DUR 시행을 위해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나마 대의명분을 내세워 참여했던 의원급 의료기관마저 등을 돌리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원 회장은 "솔직한 심정으로 DUR 시행으로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하는 의원급 원장들 입장에서는 DUR을 안 했으면 하는 생각도 있지만, 조금 힘들더라도 국민 건강을 위해 적극 동참하고 있다"면서 "하지만 정부가 의원급 의료기관에만 희생을 강요하려 한다면 제도에 참여해야 할 명분은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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