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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진료실로? 이젠 법학자가 나의 길"
"다시 진료실로? 이젠 법학자가 나의 길"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1.01.14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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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현아(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민을 내 가족처럼, 환자를 내 생명처럼'을 내건 대한의사협회 제33차 종합학술대회(대회장 경만호·대한의사협회장)가 2011년 5월 13∼15일 서울그랜드힐튼호텔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종합학술대회 조직위원회(조직위원장 김성덕·대한의학회장)와 <의협신문>은 33차 학술대회를 맞아 '릴레이 탐방 33인-진료실 밖에서 한국의료의 길을 묻다'를 기획했습니다.

이번 릴레이 탐방은 의사회원 가운데 진료실 밖으로 나가 새로운 세계를 개척한 주인공을 만나 ▲다른 길을 걷게 된 동기 및 배경 ▲일하면서 느끼는 보람 ▲외부에서 바라 본 의사 사회 ▲의사 회원에게 하고 싶은 말 등을 들어봄으로써 한국의료와 의사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기 위한 기획입니다.

종합학술대회 직전까지 연재되는 '릴레이 탐방'에 독자여러분의 많은 관심 바랍니다. <편집자 주>
 

인생의 진로가 결정되는 데는 작은 계기 하나면 충분하다. '발레할 사람?'이라 묻는 담임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든 강수진이나, 친구 집에서 8비트 컴퓨터를 우연히 본 안철수 한국과학기술원 석좌교수가 그렇다.

배현아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들과 다른 점은 약간 더 운명적이랄까? 전공의 시절이던 2000년. 의약분업을 밀어부친 정부에 반발해 의사들이 총파업으로 맞섰던 바로 그 해였다.

"파업을 해야 한다는데 온갖 법률용어 들이 등장해서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있어야지요. 일단 의료법 부터 공부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잠깐의 호기심에 그치지 않았다. 고달픈 인턴 기간 동안 연세대에서 법학석사 과정을 시작한 배교수는 응급실에서 밤을 지새우고 낮에는 법학 공부를 병행하는 '주독야경' 생활을 5년 넘게 지속했다.

2005년 응급의학 전문의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그는 이듬해 8월 연세대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는다. 학위 논문은 '응급의료체계에서 의사책임(전원 적절성을 중심으로)'.

▲ ⓒ의협신문 김선경

환자와 학생, 부담스럽긴 마찬가지

"처음에는 막연히 '임상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학문 자체에 빠져들더군요. 물론 갈등도 했지요. 2007년 여름학기 부터 법대 교수로서 강의를 시작했는데 처음 1~2년은 고민이 많았어요. 내가 과연 이 길을 계속 가야 하는 것인지…. 하지만 지금은 '이게 나의 길'이라고 마음을 굳혔어요."

환자를 상대하는 것과 학생들 앞에 서는 것, 둘 중 어느 쪽이 더 부담스러운지 궁금했다.

"제 전공인 응급의학의 경우 환자들의 상태가 크리티컬해서 부담이 매우 컸습니다. 그런데 학생을 상대하는 것도 마찬가지더라고요. 교수의 말 한 마디가 아이들 인생을 바꿀 수 있으니까요.

환자 상태가 호전되는걸 지켜보며 기쁨을 느끼듯, 내 밑에서 공부한 학생들이 꿋꿋하게 제갈길을 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성취감은 정말 대단하답니다."

법학 배울 수록 의학의 위대함 깨달아

▲ ⓒ의협신문 김선경
배 교수는 아직 법학에 대해 잘 모른다고 겸손해 했다. 한 참 더 배워야 한다고. 그런데 법학을 공부하다 보니 새삼 의학의 '위대함'을 깨닫게 된다고 한다.

"공부 자체는 굉장히 다르지요. 머리 구조를 완전히 바꿔야 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니까요. 그런데 의학이 가지고 있는 근거중심의 틀, 시간을 컴팩트하게 사용하는 트레이닝 같은 것들이 법학 공부에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융합 학문' 시대에서 의학의 잠재력은 실로 엄청나다고 강조한다. 의료계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밖에서 보니까 의학이 다른 학문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는 것. 공학은 물론이고 인문학·사회학 영역까지 걸어서 안걸리는 분야가 없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나노공학과 의료가 만나 나노의료(Nanomedicine)가 탄생하고, 여기에 윤리학이 접목돼 새로운 학문의 줄기가 생겨나는 식이죠. 알고 보면 의사면허 갖고 할 수 있는 일이 굉장히 많아요."

'그래도 의사인데…' 생각 버려야

그러나 아직까지 국내에서 의학과 다른 학문과의 융합은 신통치 않은 수준이다. 배 교수는 그 이유를 전문가의 '자만심'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의사들은 자신이 의사라는 사실을 존중 받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어요. 제가 법학박사 과정에서 상처받고 힘들었던 것도 '명색이 대한민국 전문의인데…'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어요. 자만심이죠. 기본적으로 '나보다는 저 사람이 더 많이 알고 있을 것'이라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래도 의사인데' 하는 닫힌 마인드가 모든 일에서 장애물이 된다는 것이다. 의료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의료소송이 의사의 의료과실로 인한 경우 보다는 의사-환자 사이의 '소통' 문제 때문에 빚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내가 설명해도 환자는 이해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결국 소송에서 '설명의무 위반'으로 발목을 잡게 되지요. 환자에게 중요한 설명은 무엇인지, 누구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지 인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의협이 '자율징계권' 가져야

진료실로 다시 돌아갈 가능성을 묻는 질문에 '0 퍼센트'라는 짤막한 답변이 돌아왔다. 병원에 가더라도 환자를 볼 자신이 없다는 것. 한참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가 어느 날 불쑥 청진기를 메는 것은 환자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요즘 의료계 핫이슈인 면허 재등록과 자율징계권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의료인 면허 재등록 제도는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재등록이 왜 필요한지, 그 이유를 정부가 합리적으로 납득시켜야 합니다. 단순히 의료인 현황 파악을 위한 것이라면 의협 같은 중앙회에 맡기는 것이 효율적이지요.

우리나라에선 힘들다는 분위기지만 자율징계권도 의협이 갖는게 맞습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의협이 충분한 자정능력을 보여줘야 하고요."

배 교수는 현재 '생명윤리와 법' '의료법론' '보건의료법정책' 3과목을 일주일에 6학점 강의 한다. 학생들이 가장 좋아하는 과목은 '생명윤리와 법'이란다.

과학적 지식을 알려주고 윤리적 문제를 던져준 뒤, 관련된 법과 규제를 가르쳐주면 매우 좋아한다고. 배 교수는 현재 의료법학회, 이화여대 기관생명윤리위원회, 동물실험윤리위원회 등에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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