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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겨울밤의 열기 속으로

청진기 겨울밤의 열기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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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1.01.07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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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광익(대구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 송광익(대구 늘푸른소아청소년과의원)

하필이면 그 때, 그 곳에다 판을 벌였을꼬? 진종일 지척지척 겨울비 뿌리는 날을 잡아 배추 다듬는다고 빨간 고무장갑 난리판을 벌이더니만, 기어코 매운바람 쌩쌩 기승을 부리는 다음날에 배추 버무린다고 빨갛게 언 손 녹일 틈도 없이 곧장 배달까지 나섰단다.

맞춤하여 병원 바로 건너편, 한 회원님의 식당 앞마당을 빌려서 판이 벌어진 것이다. 차라리 멀찌감치 떨어지기라도 했으면 보는 눈이나마 덜 미안할 텐데, 판판이 굼뜬 몸에 마음만 바쁜 놈이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영 죽을 맛이다.

진료를 마치고 딴에는 두터운 장갑에다 방한모까지 뒤집어쓰고서 쭈빗쭈빗 건너가니, 벌써 마지막 배달까지 나갔단다.

매년 저녁 느지막이, 특히나 주변 시선에 한창 마음이 쓰이는 사춘기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늦은 밤 시간을 이용하고는 했지만, 올해는 학교 선생님들까지 많이들 나와서 거드는 바람에 일찌감치 서둘렀단다.

"아이고, 이렇게 와준 것만 해도 고맙지요." 라는 뻔한 인사치레에 뻔뻔스러운 낯짝만 붉히고 있는데, 마침 마지막 배달 팀에서 도움을 요청하는 연락이 왔다. 동네방네 다 돌리고서, 한 아파트 단지의 마지막 몫만 남았다고 이야기를 건네는 낯익은 얼굴들이 꽁꽁 얼어있다.

발갛게 언 귓불들 보기가 민망하여 냉큼 방한모를 호주머니에 쑤셔 놓고서, 쌀자루와 김장 꾸러미를 안고서 뒤를 따랐다.

호들갑스러운 한파 때문인지 거의 집들을 지키고 있는 덕분에, 부재중인 집주인을 찾아 짐 꾸러미를 쥐고서 헤매는 일도 별로 없이 배달은 수월하게 진행되었다. 손발이 좀 맞는가 싶더니만 일감이 벌써 다 떨어졌단다, 이런…….

방학이 채 시작하기도 전에 진작 숙제를 다 마친 아이들처럼 환한 얼굴들이 모였다. 그 중에는 혹 떼려 왔다가 혹만 붙이고도 연신 싱글벙글대는 혹부리 동네 아저씨들도 여기저기 보인다.

연이틀 북풍한설에 꽃다운 마누라 얼굴상하고 다리라도 삘까봐 한 걸음에 달려왔다가 그만 주저앉아서 온갖 궂은일을 마다않던 아줌마 회원들의 서방님들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괜히 미안하고 자꾸만 고마워지는, 얄궂은 열기로 데워진 술잔들을 주고받는 푸근한 겨울밤이다.

"김장김치도 못먹을줄 알았는데. 쌀까지. 무거운거 드시고.. 용기와 사랑을 주시는 사랑단 넘 고맙습니다. 저도 어려운 사람 도우며 살고 싶어지네요. 김장하시느라 고생하시고.. 고맙습니다."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어느 회원님에게 전해진 감사의 문자라고 한다. "약간에, 아주 작은 힘이나마 보태어 준다고 시작한 사랑나눔회의 일들이 이렇게 나눔의 바이러스가 되어 돌아오네요. 그리고 또다시 주위를 살피게 됩니다.

김장김치 맛을 못보고 있는 이웃이 있는가를... 회원님들! 이 메시지가 더더욱 열심히 하라는 격려로 듣고 힘을 내어 봅시다. 사랑나눔회 회원님 홧팅!! 그리고 사랑합니다~" 꼭 술기운 탓만이 아니라 벌겋게 상기된 회장님의 열띤 목소리다.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들 이르지만, 마주 잡아주는 손앞에서 절로 터져 나오는 유치찬란한 환호성조차 정겨운 겨울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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