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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존중하고 공감하며 표현하라"
특집 "존중하고 공감하며 표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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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31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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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의 원리-우리가 갖춰야 할 것들
▲ 이영미(고려의대 교수 의학교육학)

최근 의료서비스의 소비자인 환자들의 권리의식이 높아지고 의료소송이나 분쟁건수가 증가하면서 환자와 의사 사이의 소통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진료시간이 짧다', '궁금증이나 걱정이 모두 해소되지 못했다', '의사가 설명을 잘 해주지 않는다' 등은 의사에 대한 불만의 단골메뉴이다.

그러나 과연 진료시간의 부족과 설명 부족만이 환자와 의사사이의 소통을 저해하는 요소일까? 만약 환자가 원하는 만큼 충분한 진료시간을 할애하고, 환자가 이해할 때 까지 자세히 설명해주면 이러한 불만은 모두 해소될 것인가? 이러한 불만의 근본적인 원인이 좀 더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의 요소들이 충족되지 못해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그래서 의사에 대한 환자의 불신이 팽배해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필자는 환자와 의사 관계에서 효과적인 소통의 키워드로 환자에 대한 '존중'·'공감', 그리고 '이것을 표현하는 것'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바탕으로 치료적 파트너 관계를 형성할 때 도움이 되는 몇 가지 기본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들을 진료의 흐름에 따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대부분의 의사들은 '환자에게 있어 병원에 가는 것'이 얼마나 하기 싫은 일인지 종종 잊어버린다. 의사에게는 너무나 친근한 병원 환경이 환자들에게는 불편하고 겁나고 어려운 장소인 것이다. 따라서 환자가 병원을 찾는 그 순간부터, 좀 더 편안한 마음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특히, 진료실 문을 열고 환자가 들어와서 의사 앞에 앉는 순간, 의사가 환자를 반갑게 맞이하고 상대방에 대해 존중과 관심을 표현하는 것은 향후 있을 수분 내지 몇 십분의 진료 분위기를 좌우한다. 이는 환자에게 인간적인 관심과 존중을 표현하는 일상대화, 즉 "날씨가 아주 매서운데, 오시느라 고생하셨지요?" 혹은 " 요새 아이들 많이 컸지요?" 와 같은 5초도 걸리지 않을 간단한 말로 충분하다.

아주 단순한 일상적 인사가 병원에 대한 두려움, 의사에 대한 경계심을 풀게 하고 환자의 마음이 열리게 할 수 있다.

환자의 말에 집중하고 경청해야

정보수집 단계에서 의사들은 제한된 시간 속에서 더 많은 정보, 더 쓸모 있는 정보를 효율적으로 수집해야 하기 때문에, 자신이 필요로 하는 질문 위주로 대화를 이끌어간다.

그러나 환자가 정말 의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혹은 의사를 통해 해결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말에 집중하고 경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환자가 오늘 병원에서 꼭 하고 싶은 말만이라도 의사에 의해 중단되지 않고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배려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처럼 열악한 의료 환경에서 환자가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내버려두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의 연구에 의하면 시간을 주어도, 환자의 주 증상을 호소하는 말이 평균적으로 90초 이상 지속되는 경우는 매우 드물었다고 한다.

90초가 너무 길다고 생각한다면, 그래서 이러한 여유를 제공할 수 없다면, 물론 의사의 귀중한 시간은 단축될 수 있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환자가 병원에 온 진짜 이유를 파악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경청의 기술은 무조건 상대방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상대방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언어적 혹은 비언어적으로 반응해주고 이에 대해 피드백을 주어야만 진정한 의미의 경청이 되는 것이다.

즉, 환자가 진술한 말에 대해 반복해주기 혹은 따라하기 (예로, 환자가 "어제 밤에 위가 아파서 한 숨도 못 잤어요." 라고 말하는 경우, "한숨도 못 주무셨다구요?" 라고 반응해주는 것) 그리고 재진술하기("잠도 못 주무실 정도로 위의 통증이 심하셨군요?") 등과 같이 언어적으로 피드백을 해줄 수 있다.

또한 "예", "으음.."등의 추임새 혹은 고개 끄덕임 등의 비언어적 방법을 사용해 의사가 환자의 말을 잘 듣고 있음을 표현한다.

"당신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합니다"

요즘 '공감' 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참으로 많이 사용되는 용어이다. 환자와 의사 사이 치료적 관계 형성에 있어 '공감'은 매우 강력한 힘을 가진다.

의사가 환자에게 가져야 하는 공감(empathy)은 환자와 비슷한 감정을 가지고 함께 슬퍼하거나 그들을 동정하는 것(이는 sympathy에 해당함)이 아니며, 의사가 환자의 생각이나 뜻에 동의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는 의사의 인지적 상상력을 동원해 환자의 생각과 감정 상태를 이해하는 것이다.

즉, 통증으로 인해 고생한 환자가 있다면, '얼마나 아프셨을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라고 말해주는 것이고, 치료방법이나 예후에 대해 걱정이 심한 환자가 있다면, '걱정이 많이 되시죠?'라고 이해함을 표현하는 것이다.

또한 '병원에 입원하라'는 의사의 합당한 권유에 대해, 경제적 이유로 이를 결정하지 못하는 환자가 있다면, 그 사람의 어려운 경제사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공감이다.

그런데 '공감을 한다는 것'은 상대방에게 '내가 당신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라고 적극적으로 표현을 함으로써 그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 특히 의사와 환자와 같은 사회적 계약관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예를 들면, '입원을 못하시는데, 그런 어려움이 있으신 것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라고 공감하고 있음을 말해줘야 한다. 그 다음으로 해야 할 말은, 환자가 충분히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정당화시켜주면 더 좋다. 예를 들면, "그런 상황에서는 다른 분이라도 입원을 쉽게 결정하지는 못할 것입니다"라고.

그 다음, '환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의견을 질문하거나 혹은 의사가 대안을 제시한다면, 의사결정에 있어서 환자와 의사 사이에 파트너십이 형성될 수 있다.

또한 환자의 생각 또는 정보와 지식, 감정에 대해 '존중과 수용함을 표현하는 것' 역시 관계형성을 촉진하는 요소이다.

가령 인터넷이나 매체를 통하여 얻은 의학정보, 다른 의료진을 통해 정보에 대하여 그 정보의 신뢰성이나 타당성이 의심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환자를 무시하거나 처음부터 잘못된 것을 지적하기 전에 '환자의 생각을 수용하거나 인정한다'는 것을 표현해주는 것이 관계를 부드럽게 만들어준다.

즉, 먼저 환자의 생각을 들어주고 나서, '그렇게 생각할 수 있다'고 수용해주고 그 다음에 틀린 점을 고쳐주거나 의사의 전문적 의견을 말해주는 것이다. 일례로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제 병 같은 경우 A라는 새로 나온 약이 아주 효과적이라는데요, 선생님 저도 그 약을 좀 처방해주세요."

라고 요청하는 환자의 경우, '누가 그래요? 알지도 못하면서!'라고 무시하고 불쾌함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보다는 "아~ 그래요? 최근에 그런 연구들도 있지요. 환자분께서는 아주 본인의 질병 치료에 적극적이시고 열심이시네요." 라고 일단 환자의 생각을 수용해주고 그의 생각을 정당화시켜준다.

그 다음에 환자가 알고 있는 지식이나 생각 중 타당하지 못한 부분을 수정해주는 것이 좀 더 효과적인 환자 교육방법이다. 가령, "그런데, 제 생각에 그 연구는 아직 초기 단계라서, 좀 더 안전하게 하려면 지금 하시는 대로 치료를 하시고, 좀 더 연구결과가 확실히 증명된 다음에 다시 고려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라고 하는 것이 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만약 환자가 지적 수준이 아주 높은 사람이라면, 좀 더 많은 정보를 조사하고 공부할 수 있는 관련 정보 사이트를 소개해주거나 관련 논문을 복사해서 준다면 의사에 대한 신뢰는 더욱 상승할 것이다.

'역지사지 '설명은 충분히 알아들을 때까지…

"설명 잘해주기", 또는 '효과적으로 설명을 잘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많은 환자들은 의사가 바빠서 설명을 제대로 안 해준다고 불평하고, 또 대다수의 의사들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잘' 설명해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 의사들이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을 잘 관찰해보면, 의사들은 '환자가 꼭 알아야 할 것', 혹은 '환자가 꼭 알고 싶어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의사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위주로 설명을 한다고 한다.

그렇게 때문에 아무리 의사가 알아듣기 쉽게 자세히 설명을 해주어도, 환자는 설명이 부족하다고 하고, 잘 모르겠다고 하고, 심지어 설명해준 적이 없다고 불만을 표시하는 것이다. 이는 강단에서 교수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다 전달하고 나면, 학생들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배울 것이라고 생각하는 착각과 유사한 것이다.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설명이 되려면, 먼저 설명할 내용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고, 환자가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지와 의사의 설명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는지 정보의 요구와 수용능력 정도를 파악해야 한다.

"만성신부전이라는 병을 들어본 적이 있나요?"와 같은 간단한 질문으로 환자의 설명에 대한 요구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그 다음, 환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환자가 이해하기 쉬운 용어를 사용해 설명해야 한다.

설명을 하는 중간 중간에도 환자의 반응을 살피고 설명을 한 것의 이해 여부를 질문해 그에 따라 설명의 수준과 내용을 재조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많은 환자들은 의사가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지 잘 몰라도 일단은 다 듣고 보는 경향이 있고 나중에 '근데, 그게 무슨 소리죠? 잘 모르겠네요. '라고 해서 의사를 맥빠지게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제가 설명한 것이 이해가 됩니까?" 같은 확인질문을 설명 도중에 그리고 설명을 마치고 하면 좋다.

또한 진료상황에 따라 그림이나 모형을 이용하여 설명하거나 설명책자에 표시하면서 설명해주기 등의 방법을 사용하여 환자의 이해와 기억력을 촉진할 수 있다.

환자가 진료실 문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와서, 다음 환자의 진료를 방해하는 일을 예방하려면, 진료를 마치고 환자가 진료실 나가기 전에 ' 더 궁금하신 것은 없나요? 더 말씀하실 것이 있으신지요?' 라고 질문을 하여, 해결하지 못한 환자의 의문사항은 없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적 제약이 있다면, '오늘 저에게 말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다음 시간에 와서, 다시 말씀해주세요'라고 말하면 된다.

지금까지 진료에서 필요한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적 요소와 방법을 '존중', '공감', '표현하기' 의 세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일반적인 진료의 흐름 즉 면담시작하기, 정보수집 및 공유, 설명하기, 마무리의 순으로 기술하였다.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고대에서부터 의사가 보유해야 할 핵심적인 자질로 강조되어 왔으며 21세기에 이르러서는 의사의 직업전문성 회복과 사회적 책무의 일환으로 그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고 있다. 의사와 환자간의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은 바람직한 상호 관계를 창출하고 정보 수집, 제공 및 교환을 촉진하여 진단과 치료적 결정에 영향을 준다.

의사들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환자의 진료 만족도, 진료 결과와 건강증진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많은 연구결과를 통해 입증되고 있다.

열악한 의료 환경이 환자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이해하고 더 많은 것을 설명을 해주고 싶어하는, 대다수의 좋은 의사들의 희망을 좌절시키고 '설명 안 해 주는, 기계적인 의사'가 되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어려운 여건 속에서 진료를 해야 하는 그 자체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가동시켜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좋은 환경, 여유로운 상황이라면 커뮤니케이션 방법을 별도로 배우지 않더라도 누구나, 어느 정도 수준으로는 상대와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이 커뮤니케이션의 이론과 원칙을 배우고 익히는 것도 필요하지만, 이와 더불어 실제 의료현장에서 환자와 다양한 소통의 경험을 하고 있는 많은 의사들의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운 점, 성공사례와 비법을 함께 나누고 공유하는 것 그리고 더 좋은 의사소통방법들을 함께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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