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환자 커뮤니케이션

만남과는 다르다. 환자는 자신의 신체에 이상을 느껴서 문제의 해결을 위해 의사를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환자의 질병경험은 환자에게는 일회적이고 최초로 경험하는 사건인 반면에, 의사에게는 일상적이고 반복적인 일로 여겨지기 쉽다.

제도상 의사는 전문적 직업인이고 환자는 비전문인이기 때문에 환자는 의사의 권위에 순응할 수밖에 없고 의사의 전문적 지식과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의사와 환자 간의 힘의 불균형을 고려하면, 의사가 환자를 면담할 때 환자중심적인 대화를 이끌기 위해서는 상당한 주의와 노력이 필요하다.

개원의가 환자를 진료할 때 필요한 화법과 태도를 의사와 환자의 면담대화의 기능적 단계에 따라 생각해 보도록 한다. 면담대화의 기능단계는 일반적으로 대화의 시작·병력의 전개·진찰대화·설명대화·대화의 종결 순서로 이뤄진다.

첫째,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인사를 나누는 것이 좋다.

대화의 시작에 필요한 요소는 환자에게 인사말 전하기, 자기 소개하기, 환자의 이름 확인하기, 진료에 대한 동의 구하기 등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과적인 기능적 요소를 일반 진찰실 대화에서 모두 관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아마도 우리의 문화적 특성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강조할 필요가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의 주호소 증상을 묻는 병력청취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환자에게 인사하기이다. 어떻게 인사할 것인가는 그때 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질 것이며, 의사 나름대로의 독특한 문장을 사용해 인사할 수 있다.

나이가 꽤 드신 어르신이 진료실에 들어오실 때에는 앉은 상태에서 인사를 나누기보다는 서서 정중히 인사를 나누는 것도 예의가 될 것이다.

둘째, 모든 환자를 초진 환자처럼 생각하고 질문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재진 환자를 볼 때에 지난 번에 진료한 내용에 이어서 질문을 시작하고 면담을 종결하기 쉽다. 그러나, 재진 환자라고 해도 마치 초진 환자인 것처럼 질문할 필요가 있다. "혈압약을 받기 위해서 요셨지요? 혈압약은 잘 드셨나요?" 이렇게 질문하며 병력을 전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혈압약을 받기 위해 오셨지요? 오늘 제가 혈압약 드리는 것 말고, 다른 것 도와드릴 것은 없으신지요?" 이렇게 마치 초진 환자인 것처럼 열린 질문으로 시작할 때에 환자는 이전 진료 시간에 미처 이야기하지 못했던 새로운 의료적 문제에 대한 요구를 의사에게 할 수도 있고, 더 중요하고 숨겨진 내면의 이야기를 비로소 의사에게 말할 수도 있다.

셋째, 병력을 들을 때에 맞장구가 필요하다.

어디가 불편해서 방문한 것인가를 질문한 직후에 환자의 이야기를 몇십 초라도 듣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의사는 어떠한 중간 개입없이 환자의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맞장구를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환자의 이야기의 흐름에 맞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며, "네, 네, 그렇군요" 등의 간단한 청자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넷째, 환자와 시선 접촉할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환자를 진료할 때 의사의 상체가 되도록 환자를 향하는 자세를 취하는 것이 좋다. 이때 의무기록이나 컴퓨터를 보기 위해서는 상체는 환자를 향한 상태로 유지하고 머리를 돌려서 기록을 참고하거나 자료를 입력하는 것이 좋다.

또한 환자에게 어떤 질문을 할 때에도 처음부터 환자와 시선접촉을 하지 못하더라도 질문의 끝에서는 환자의 얼굴을 보며 시선 접촉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다섯째, 환자의 이야기에 공감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공감은 환자와 라포를 형성하기 위한 기본적 태도이다. 환자가 보일 수 있는 감정은 다양하겠지만, 간단히 분류하면 슬픔·분노·상처·두려움 등이다. 환자가 대화중에 이런 감정이 실려있는 말을 할 때에는 의사는 공감의 기회를 상실해서는 안된다.

환자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 수용하는 말을 하고, 환자가 진료실에서도 감정을 느낄 수 있도록 허용해야 한다. 또한, 환자가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있을 때 의사로서 환자를 지지하는 말과 태도를 보여줘야 한다.

여섯째, 진찰을 하면서도 진찰 소견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 좋다.

진찰할 때에도 대화가 가능하다. 진찰하면서 필요한 병력청취의 질문을 할 수 있고, 환자에게 공감해 줄 수도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진찰하면서 즉시 진찰 소견을 환자에게 설명해 주는 것이다. "지금 목안을 진찰해 보니 목안에 염증 소견을 보입니다. 폐소리는 정상으로 들립니다" 등이다.

일곱째, 환자가 이해하기 힘든 전문용어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

의사들은 특히 설명대화에서 짧은 시간에 진단에 관한 설명이나 치료법에 대해 설명하면서 부주의하게 전문의학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이런 전문용어는 환자가 잘 이해할 수 없으므로 의사의 제안에 동의할 수 없게 된다.

뿐만 아니라 전문용어 사용 자체가 비전문인으로서의 환자의 입장을 더욱 약화시키게 되므로 주의해야 한다. 부득이 전문용어를 사용하여 설명대화를 하는 것이 효율적일 때에도 전문용어를 사용하기 전이나 사용한 후에 용어의 설명을 같이 해 주고 환자가 잘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것이 좋다.

또한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거나 앞으로의 치료방법에 대해 설명할 때에 의사가 생각하는 모든 내용들을 거침없이 설명하면 환자는 의사의 설명속도를 따라가면서 이해하기가 어렵다.

환자의 수준을 고려해 작은 분량으로 나누어서 이야기하고, 설명 도중에도 환자의 이해를 확인하는 질문을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설명의 내용이 많을 때에는 '첫째로, 둘째로' 등과 같이 범주화해 설명하는 것이 좋고, 중간에 설명한 내용을 요약해주고, "이제부터 설명드리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와 같이 중간 예고를 해주는 것도 좋다.

여덟째, 진단명을 통보할 때에 환자에게 사전경고를 하는 것이 좋다.

환자의 입장에서 들을 때에는 의사가 설명하는 모든 진단 결과는 좋지 않은 소식으로 들릴 수 있다. 따라서 의사는 이러한 진단명을 환자에게 전할 때에 사전경고의 언급을 하고 본 내용을 말하는 것이 좋다. 사전경고를 위해서는 "염려되시겠지만~", "죄송합니다만~" 등이다.

또한 환자에게 진단명을 통보하면서도 환자의 감정의 변화를 잘 살펴서 공감해주고, 환자가 전달한 내용을 충분히 수용할 수 있도록 설명의 진행을 배려해야 한다.

아홉째, 종결대화를 분명히 언급하는 것이 좋다.

모든 진료면담이 마칠 때에 환자에게 "지금까지 이렇게 이렇게 진료해 드렸습니다."라는 종결의 언급을 해주는 것이 좋다. 이런 말을 함으로써 이제 면담을 마칠 것이라는 것을 환자에게 알리는 것이며, 이어서 환자의 이해를 확인하는 질문이나 추가로 하고 싶은 질문이 없는지 자연스럽게 묻게 된다.

"이해가 되셨나요? 궁금한 것은 없으신가요?" 등의 간단한 질문으로도 환자 중심적인 종결대화를 멋지게 할 수 있다. 다음 재진 약속을 하는 것 외에도 치료에도 불구하고 증상이 좋아지지 않거나 예상치 않은 부작용이 생길 때에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는지에 관한 안전 조치에 대해 환자에게 설명하는 것이 좋다.

열째, 의료 면담의 표현들을 긍정적이고 수용적 표현으로 하는 것이 좋다.

"검사결과에 이상은 없습니다."라는 표현보다는 "검사결과는 정상입니다. 건강하십니다."라고 표현할 때 더 긍정적으로 들린다. "더 질문할 것이 없으시지요?"라고 묻는 것보다는 "질문할 것이 있으신가요? 있으시면 지금 질문하셔도 됩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수용적이다.

진료실에서 환자를 대할 때에 필요한 몇 가지 면담 기법에 대해 기술했다. 의사중심적인 면담기법에서 환자중심적인 면담기법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는 간단한 몇 가지 대화기법의 변화를 통해서도 가능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환자의 만족도를 높이며 의사의 치료 처방에 대한 환자의 순응도를 높여서 결국 임상결과의 향상이라는 의료의 궁극적 목표의 성취를 보다 가능하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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