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5 18:04 (목)
낙엽을 기다리며

낙엽을 기다리며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0.12.24 11:39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달회 지음/도서출판 운향 펴냄/1만 2000원

무슨 일에서든지 삼십여년을 넘게 여일한 결과물을 내보일수 있는 것은 그에 깃든 노력 못지않게 축복이다. 절대자의 도움 없이 인간의 능력만으로 성과를 내기에는 예기치 않은 한계가 언죽번죽 들고나기 때문이다.

의사동인 박달회의 서른일곱번 째 수필집 <낙엽을 기다리며>는 구순의 노옹에서 부터 이제 불혹을 갓 넘어선 청년(?)까지 세대와 시간의 간극을 메우면서 의사로서의 삶과 생활 가운데 뿌리내린 의업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이번 수필집에는 모두 열여섯명의 필진이 적게는 한 편에서부터 많게는 일곱편까지 삶의 단상을 엮어내고 있다.

1973년 발족한 이후 의사수필동인들의 사랑방으로 자리잡아 온 박달회. 이헌영 회장은 이번 작품집 들머리에서 "허우대는 거창하게 커가나 점차 신뢰의 물은 메말라가는 의료계의 현실에서 의료인들 상호간에, 대형병원과 동네병원 간에, 의료인과 환자 간에 신뢰의 마중물이 되고 윤활유가 될 수 있는 박달회로 자랄 수 있"기를 바랬다.

유형준 한림의대 교수(한강성심병원 내분비대사내과)는 '마테오와 정의'에서 핏줄을 제손으로 끊으면서까지 지키려 했던 '정의'와 환자를 치료한 후 대가로 한그루 씩 심게한 살구나무가 결국 숲이 됐다는 중국 오나라 때 동봉이라는 의원의 이야기를 전하면서 '행림(杏林)'의 의미를 살핀다. 이밖에 '부메랑이 두렵다' '차닦이 헝겊' '제주단곡' 등이 실렸다.

이상구 원장(이상구신경정신과의원)은 '번민을 출구를 찾아서'는 서울시 대의원회 의장 선거에 출마하면서 당선의 기쁨은 누렸지만 그로 인해 내적 후유증에 시달리며 마음의 평정을 찾지 못하는 고단함을 풀어내고 있으며, 의장으로서의 업무와 삶에서의 인간관계 모두에서 엉켜진 문제들의 실마리를 찾고자 하는 바람을 내비친다. '삐·따·빠세대' '잊고 살아온 동화의 세계를 그리며'도 볼 수 있다.

김숙희 원장(김숙희산부인과의원)은 '루터, 괴테, 그리고 독일여정'에서 '나는 독서하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 80년이라는 세월을 바쳤는데도 아직까지 그것을 다 배웠다고 말할 수 없다'는 괴테의 말을 좇아 그렇게 되기를 소원하고, '스마트하게 살기'에서는 스마트폰을 쓰게 되면서 겪게 된 좌충우돌 사용기가 눈길을 끈다. '성폭력을 생각한다'와 '죽음을 기억하고 죽음을 준비하라' '캣'도 있다.

노익장을 보이면서 매년 작품집의 한자리를 넉넉하게 자리잡아 온 소진탁 연세의대 학장은 구순을 맞은 올해에는 '박달회의 발전을 기원하면서'를 통해 "박달회가 뜻을 같이 하는 회원들의 쉼터이며, 사회나 국가적으로 크고 넓은 시야를 통해 국민보건을 위해 공헌할 수 있는 모임이 되어 갈 것"을 당부했다.

남상혁 대한의사협회 고문(전 남상혁외과의원)은 '비교, 그것은 욕심의 사생아' '타인 속의 나 그리고 너' '청산은 우리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은행나무' '마음의 행로' '소들의 합창' 등의 수필과 함께 시 '함박눈'에서 '살아온/무게만큼/뿌려대는 함박눈/…흘러간/그리운 세월/눈꽃되어 피었구나'로 맺고 있다.

박문일 한양의대 교수(한양대병원 산부인과)는 '몸과 마음'에서 몸 따로, 마음 따로 지내는 일상을 돌아보고 몸과 마음은 결국 서로 에너지를 공유하는 하나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조급하게 현대의료기술에만 메달리다 보면 환자가 아닌 사람도 환자가 되는 현실을 되짚으면서…. '베이비플랜' '우리나라는 마초국가'에서는 임신·출산·육아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유태연 원장(유태연피부과의원)은 '강변의 천국'에서 삶의 한 부분이 된 음악을 이야기한다. 강변 산책의 동반자인 휴대용 FM라디오 예찬과 함께 음악을 듣는데 필수적인 이어폰 때문에 발생하는 난청의 굴레롤 짚는다. 들을 수 있는 축복이 오랫동안 이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우면산 자락에서' 'Golf와 Nolf'에서도 음악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홍순기 원장(청담마리산부인과의원)은 '주디의 행방'에서 군입대와 유학으로 집을 떠난 아들들의 빈자리를 채워준 반려견 '주디'를 잃어버린 후 결국 찾지 못하고 가슴에 묻기까지의 일들이 생명의 소중함과 함께 잔잔히 그려진다. '단상 2010' '식물경영' '오래된 편지' 등도 싣고 있다.

조재범 병원의사(성애병원 가정의학과)는 '김평화 선생님을 추억함'에서 평양의대 출신으로 탈북해 국내에서 수련을 받은 후 전문의시험을 얼마 앞두고 유명을 달리한 김평화 선생과의 추억을 돌아본다. 다시 태어날 때는 갈등 없는 세상에서 이름대로 평화롭게 사시길 기원하면서…. '강아지의 출산' '부부여행' '스포츠' '초월' 등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정동철 원장(해암병원)은 '상자 속의 상자'에서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리는 것은 결국 또 다른 틀 속에 갇히게 되는 상황을 만들게 된다는 것과 결국 홀가분함에 취해 벗어나기를 원했던 원초의 상자속으로 다시 들어와 느끼는 자유를 말한다. '빨간 늙은이' '손녀가 주문한 미팅' '인생의 기하학적 오차'에서도 삶을 관조하는 원숙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한광수 원장(용현의원)은 '잊을 수 없는 은사 원종덕 박시님'에서 적십자혈액원장을 역임한 원종덕 박사와 필자의 인연을 소개하면서, 가족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는 의료선진국의 상황과 대비해 국내 헌혈제도 개선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큰이'에서는 병원식구의 재롱둥이였던 애완견 '큰이'의 죽음에 대한 아쉬움이 진하게 묻어난다.

최종욱 원장(관악이비인후과의원)은 '삼재'에서 마음을 비우고 항상 베풀며 서로 사랑하고 모든 것을 지혜롭게 해결하는 마음의 부적을 지니고 실천하는 것이 삼재 액운을 몰아내는 길이라고 말하고, '점'에서는 몸에 후천적으로 흑점을 지니게 된 연유를 설명하며 "어른이 되면 마음속에 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어린시절 가르침의 뒤안을 좇는다.

홍지헌 원장(연세이비인후과)은 '진달래 명함'에서 지난 봄 꽃잎을 틔워 불쑥 자신의 명함을 보여준 진달래꽃 같이, 때아닌 꽃잎이 피어나 스스로를 알리는존재감 없이, 변변한 명함도 없이 인생의 무상함을 돌아본다. '낙엽을 기다리며' '돌탑을 쌓으며' '흔적' '같이갈래?' 등에서는 자연과 동화되는 필자의 신선한 마음을 접할 수 있다.

문정림 가톨릭의대 교수(성모병원 재활의학과)의 '여성 대변인 시대'는 대한의사협회 역사상 첫 여성대변인으로서 고뇌와 함께 남은 임기동안 이루고 싶은 일들에 대한 속내를 잔잔하게 담아내고 있다. '중증 장애인 가족의 삶'는 중증 장애가 가족의 행복장애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고 전하고, '소랑소랑, 내사랑'에서는 애견 '소랑'과 가족들이 나눈 소담스런 정이 풋풋하게 묻어난다.

이헌영 원장(세영정형외과·재활의학과의원)은 '작은 거인과 키 큰 난쟁이'에서 자녀의 키에 대한 일반인들의 열망을 짚어보며, 눈에 보이는 키 보다는 지적인 성숙을 위한 교육에 더 많은 열정과 시간을 기울일 것을 권한다. '마중물' '치간칫솔' '라면' '다시 올 봄을 기다리며' 등에서는 놓치고 살기 쉽지만 기억해야 할 것들에 대해 말한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새로 글을 싣게 된 채종일 서울의대 교수(기생충학)는 '송어의 수난' '압해도의 참굴' 등에서 기생충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관심으로 불거졌던 에피소드와 함께 학문적인 성과와 관련된 일화도 소개한다. '라오스 예찬'에는 작고 가난한 나라 라오스 국민들이 기생충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바라는 염원도 담겨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찾아온 그들의 숨결은 시간이 흐를수록 각박해져가는 세태에 대한 저항인 듯 내내 따뜻하고 정감 넘친다. 서른일곱 해를 이어온 박달회 동인들의 마음은 이미 우리에게 신뢰의 마중물이 되고 삶의 윤활유가 되고 있다(☎02-785-0760).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