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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story 위험한 한방…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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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석영 기자 lsy@doctorsnews.co.kr
  • 승인 2010.12.17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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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테로이드 화장품·중금속 한약· 불법 한방성형…
복지부·식약청 나몰라라"…관련법은 '수면 중'

Cover Story

식품의약품안전청은 올해 10월과 이달 초 두 차례에 걸쳐 시중에 유통중인 화장품 가운데 스테로이드 성분이 함유된 불법 화장품 7곳 업체, 8개 제품을 적발했다.

이들 제품은 화장품 배합금지성분인 클로베타솔 프로피오네이트·트리암시놀론 아세토니드·21-초산프레드니손·길초산베타메타손 등 스테로이드 성분이 1~2종류씩 각각 검출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가운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상품명에 '한방'을 명시하거나, 마치 한의학적 효능이 있는 것처럼 광고한 다밀멀티한방영양크림(아이엔코스메틱)·도두원복합한방크림(위듀한방생명공학연구원)·노아-케이원크림(포쉬에화장품) 등 제품.

노아-케이원크림의 경우 광고<사진>에 '한약제 발효추출물', '아토피 치료에 효과가 있는 한약재들…'이란 문구를 삽입함으로써 일반인이 보면 영락없이 한방 치료약으로 오인할 수밖에 없다.

 

스테로이드 성분은 전문가인 의사의 처방으로만 사용할 수 있는 전문의약품으로서 장기간 사용하면 모세혈관 확장·피부위축·붉은 반점 등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50g 연고 1통에 10만원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진 노아-케이원크림은 적발 전까지 무려 약 8만개가 판매됐으며, 대부분 소아 아토피 환자에게 사용된 것으로 전해져 피해 규모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행정처분? 코웃음치는 제조업자

식약청은 이들 제품 제조업체에 대해 업무정지 12개월의 행정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관련 업계는 별로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현행 화장품법이 실효성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품법은 화장품 제조업자가 업무정지처분을 받을 경우 5000만원 이하 과징금으로 갈음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과징금을 납부하고 다시 화장품을 제조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것.

실제로 이번에 적발된 업체 한 곳이 과징금을 내고 행정처분을 면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 한방화장품은 한의학·한방에 대한 국민의 맹신과 업체의 부도덕성, 특히 주무부처의 무관심과 태만이 빚어낸 합작품이다.

식약청은 한방화장품의 위험성에 대한 국회의 경고 마저 귀담아 듣지 않았다.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 열린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신상진 의원은 "한방화장품에 한방 성분이 얼마나 포함돼 있으며 어떠한 효능이 있는지 알 수 없다"며 "한방화장품의 안정성과 효능에 대한 전반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노연홍 식약청장은 "지금까지 한방화장품을 조사해 본 적이 없다"고 시인했다.

그러나 "앞으로 관련 기준을 마련할 것"이라는 형식적인 답변에 그쳤다. 현재까지 아무런 기준도 발표된 게 없다.

화장품은 빙산의 일각…한약은 중금속 덩어리

한방화장품 사건은 한방·한약의 안전성에 대한 우려를 다시 한번 환기시키고 있다. 지난해 6월 민주당 전혜숙 의원에 따르면 수입 한약재 12개 품목 약 92톤이 납·카드뮴·수은 등 중금속 기준치를 초과한 부적합 한약재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 83톤의 약재로 제품화됐다. 회수량은 974㎏(회수율 1.2%)에 그쳤다.

민주당 이낙연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서도 지난해 부터 올해 6월말까지 1년 반 동안 중금속 부적합 판정을 받은 규격 한약재 4만 1627kg 가운데 실제 회수된 것은 1.4%인 597kg에 불과했다. 중금속이 함유된 한약재 대부분이 국민의 몸속에 그대로 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불량 한약재가 인체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는 우려는 오래 전부터 의료계에서 지적돼 왔다. 김동준 한림의대 교수가 2006년 부터 2008년까지 17개 대학이 참여해 37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연구에서 독성 간염 환자의 간세포 손상 원인으로 한약이 40.1%를 차지, 상용약·건강표방식품·민간요법 등에 비해 가장 높은 비율을 나타냈다.

식약청 오히려 중금속 기준 낮춰

김동준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독성 간독성은 예상보다 심각한 편"이라며 "가장 흔한 원인이 한약이지만 한약 그 자체가 원인인지, 한약의 오남용 때문인지, 한약재의 오염 문제인지는 불분명하다"고 밝혔다. 한약 감시체계 마련 등 국가 차원의 대책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그러나 식약청의 대응은 국민을 아연실색케 하고 있다. 현행보다 더 높여도 모자랄 한약재 중금속 허용 기준을 오히려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식약청은 지난 2일 한약재 품질에 대한 국민 신뢰도 저하 등을 이유로 국민이 자주 복용하는 한약재 21종의 카드뮴 허용기준을 현행 0.3ppm에서 1.0ppm으로 재설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식약청은 기준을 높이더라도 인체에 충분히 안전하다고 밝히고 있으나 국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김재욱 소비자시민모임 회장은 "중금속 기준 완화는 소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약 업계 유통을 위한 조치"라며 "기준을 개정하면 정부 불신임 운동과 함께 한약 안먹기 운동을 벌이겠다"고 반발했다.

'이상한' 한약재 유통 경로

불량 한약재가 단속망을 피해 버젓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근본적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국내 한약재 유통 경로의 희안한 구조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현재 한약재는 식품용과 한의학품용 두 가지로 유통된다.

문제는 한의약품으로 신고된 한약재에 식품용 약재가 섞여들어갈 가능성에 대해 속수무책이라는 점이다. 현행 제도상 국내에 수입되는 모든 한약재는 수입의약품 관리 규정에 따라 통관 전에 유해물질이나 중금속 함유 여부를 검사받는다.

반면 식품용 한약재는 최초 수입시에만 위해물질검사를 실시하고 있으며 한약재용에 비해 통관절차 및 검사체계가 간단하다. 또한 국산한약재는 농약잔류물 검사나 중금속 함유 검사를 받지 않고 그대로 유통시킬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일부 업자들이 식품용으로 중국산 한약재를 들여온 뒤 이를 국산과 섞어 마치 100% 국산인양 버젓이 시중에 내놓는 일이 가능한 것이다. 관련 업계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유통되는 국산 한약재의 약 70~80%가 중국산으로 추정된다.

복지부 '수수방관' 국회는 '뒷짐'

중국산 수입 한약재가 일단 국산과 섞이면 전문가가 아닌 이상 육안으로 구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사전에 차단하는 것만이 유일한 방안인 셈. 그러나 지금까지 보건복지부의 수입 한약재 불법 유통 감시기능은 꺼져 있는 상태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2003년부터 2007년까지 복지부의 단속 실적은 단 한건도 없다. 전문가들은 불량 한약재를 거꾸로 역추적하는 관리제도 마련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의계 조차 중국산 수입 한약재에 대한 철저한 관리를 촉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대구 모 한의대 교수는 "현 구조 아래에서 불량 한약재의 사전 차단은 거의 불가능하다"며 "한약재 제조업소에서 출하된 한약재만 한의약품으로 인정하고, 사후 관리 체제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국회에는 한약의 생산·수입·제조·유통 각 단계별로 정보를 기록·관리함으로써 한약을 추적관리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내용의 '한약이력추적관리에 관한 법률안'이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의 대표발의로 올라온 상태다.

그러나 법안이 발의된 지난해 6월 이후 1년 반이 넘도록 해당 국회 상임위인 보건복지위원회가 법안을 심의했다는 소식은 전혀 들리지 않고 있다.

CT·IPL…이제는 한방성형까지

우리나라 한방 의료시장은 한약을 중심으로 성장해왔다. 그러나 한약에 대한 국민의 신뢰 도 저하, 건강보조식품의 발달 등으로 한의원의 주된 수입원인 보약 수요가 위축되면서 한의계는 전래없는 불황을 겪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 통계에 따르면 폐업 한의원 수는 2005년 668곳, 2006년은 776곳, 2007년은 843곳, 2008년은 823곳으로 매년 증가추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같은 경영난의 가속화는 한의계의 관심사를 '약'에서 '시술'로 옮겨가도록 부채질하고 있다. 현대 의료장비를 이용한 한방시술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한의사가 CT(컴퓨터단층촬영)를 사용해 진료하거나 피부과 의료장비인 IPL(Intensive Pulsed Light)로 시술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성형수술의 영역에까지 한방이란 이름이 등장하고 있다.
 
'매선침'

한방성형은 최근 한의계의 새로운 '블루오션'으로 각광받는 분야다. 특히 '매선요법'이라 불리는 방법으로 주름살제거, 가슴 확대, 안면비대칭 교정 등을 시술하는 한의원들이 크게 늘고 있다. 매선요법은 침을 이용해 봉합사를 피부 속에 매설, 피부나 근육 조직을 견인함으로써 성형효과를 얻는 시술법.

한의원에서는 매선요법에 사용되는 봉합사가 체내에 흡수됨으로써 시술이 안전하고, 침과 봉합사가 경락을 자극해 한방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선전하고 있다.

매선요법은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매선요법에 사용되는 '매선침'은 침과 봉합사가 서로 결합돼 있는 구조다. 그런데 이같은 구조를 가진 침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품목허가를 받은 시점은 지난 12월 10일에 와서다.

따라서 이전에 사용된 매선침은 모두 불법 의료기기였던 셈이다. 식약청의 허가를 얻은 현 시점에서도 위법 소지는 다분하다. 매선침의 식약청 품목허가 정식명칭은 '폴리디옥사논봉합사'(4등급). 따라서 '매선침'이라는 이름으로 광고·영업하는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

식약청 재료용품과의 이원규 연구원은 "매선침은 단순히 봉합사로 품목허가가 났을 뿐"며 "매선침에 대해 어떤 의학적 치료효과가 있다고 표방하는 것은 안된다"고 말했다.

귀에 걸면 귀걸이…한방이론의 허구성

매선침에 사용되는 폴리디옥사논(polydioxanone) 봉합사는 이미 외과 수술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는 인체 흡수형 봉합사의 한 종류다(한의원에선 이를 '한방약실'이라 부른다). 침 역시 병의원에서 사용하는 1회용 멸균바늘을 주로 쓴다. 시술방법 또한 성형외과의 '리프팅시술'과 다를게 없어 말로만 한방요법이지 실상은 현대 의료행위와 거의 동일하다.

어떻게 한방을 표방하면서 현대 의료를 그대로 본따는 행위가 가능할까.

보건복지부의 유권해석과 법원의 판례는 의사와 한의사의 의료행위를 구분하는 기준을 각각의 '학문적 원리'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한의계는 매선요법의 한의학적 근거를 동의보감의 한 귀절에서 찾고 있다.

동의보감 내경편의 '탁음양도주이성형(託陰陽陶鑄而成形:음양의 조화에 의해 형체를 이룬다)'가 한방성형의 이론적 근거라는 것. 다분히 철학적 함의를 담고 있는 문장 한 귀절이 '바늘과 실을 이용해 피부조직을 끌어당기는 방법으로 주름살제거 등을 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한 한의사는 "동의보감에 '성형'이란 단어가 무려 18번이나 등장한다"며 "이는 성형시술이 우리 전통 한의학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현재 항소심이 진행 중인 한의사의 IPL 시술에 대해서도 한의계는 중국 고대 문헌인 <황제내경>의 '하삼월(夏三月)…무염어일(無厭於日)…동삼월(冬三月)…필대일광(必待日光)…'이란 부분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사시에 맞게 두루 햇빛을 쬐어야 한다'는 뜻. IPL의 이론적 토대로서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하버드의대 R.앤더슨 교수의 '선택적 광열분해(Selective Photothermolysis)'이론이 지금으로부터 2000년전에 이미 한의학 이론으로 정립돼 있었다는 주장이다.

옛 문헌에 대한 한의계의 이같은 해석 방식에 대해 유용상 대한의사협회 의료일원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은 "아전인수격 해석이자 견강부회"라고 일축했다.

복지부 눈치 살피기…국민건강 멍들어

한의사의 현대 의료기기 사용은 단순히 동서의학의 영역다툼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대 의학을 교육받지 못한 한의사가 현대 의료기기를 무분별하게 사용할 경우 국민 건강에 위해를 끼칠 가능성이 늘 따라붙게 된다.

실제로 의협 의료일원화특위는 한의사의 IPL 시술에 따른 부작용 사례 15건을 접수, 대법원에 증거물로 제출했다. 매선침의 경우 일부 한의원에서 동물의 창자를 이용해 만든 1세대 흡수사인 크로믹사(chromic catgut)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 봉합사는 염증반응이 심해 현재 외과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한 한의원에서는 "크로믹사가 체내에 들어가면 실 안에 존재하는 균에 의해 몸속 백혈구 등 치료인자들이 모여들어 환부를 치료한다"고 선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서울의 모 성형외과의원장은 "의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일고의 가치도 없는 황당한 소리"라고 말했다. 한의사들의 무분별한 현대 의료시술 모방행위를 차단하기 위해서는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의 명확한 '교통정리'가 필요하다.

그러나 복지부는 한의계 눈치를 살피느라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한의사들의 무리한 시술행위와 이를 방관하는 정부의 무관심 속에 애꿎은 국민 건강만 멍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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