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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의사에게 쉬운 용어, 환자에게도 쉬울까?
청진기 의사에게 쉬운 용어, 환자에게도 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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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2.0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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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지현(중앙의대 교수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 안지현(중앙의대 교수 용산병원 내분비내과)

전방에서 군의관으로 근무할 때의 일이다. 필자가 근무하기 오래 전부터 의무대에 처음 온 병사들을 위해 진료에 앞서 의무대를 찾아온 이유, 즉 주증상인 '주소(chief complaint)'를 쓰도록 입구에 안내문이 있었다. 그런데, 하루에도 몇 명은 자기 집이나 부대가 위치한 주소(address)를 적어내곤 했다.

"환자 분께서 객혈이 있으셔서 CT 촬영을 했는데 폐 실질에 결절이 관찰되었습니다. 감별진단을 위해 기관지내시경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작년부터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의사국가시험에 도입된 실기시험은 물론이고, 일상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이다.

언뜻 보면 충분한 설명 같지만 환자들에게는 어떻게 들릴까? 아마도 "환자 분께서 OO이 있으셔서 씨티 촬영을 했는데 폐 OO에 OO이 관찰되었습니다. OO진단을 위해 기관지내시경을 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라고 들릴 것이다.

환자들에게 마치 수능시험 언어능력 듣기평가에서 문장의 맥락에 비추어 OO에 들어간 단어의 의미를 유추해 보라고 하는 것 같다. 요즘에 많이 보편화 된 CT, 내시경 같은 검사의 경우 환자들도 곧잘 이해하지만 당연히 우리말이어서 알거라 생각하는 '객혈', '실질', '결절'과 같은 용어는 병원에 근무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낯설기 마련이다.

'감별'이라는 용어도 '태아의 성 감별', '친자감별'이라는 말 때문에 '감별진단'의 의미도 짐작은 하겠지만 환자들에게 쉽게 와 닿는 표현은 아니다.

외국인 환자를 진료할 때에도 비슷한 경험을 한다. 영어권 환자라도 'rhinorrhea(콧물)'보다는 'runny nose'라는 표현이 익숙하다. 환자에게 "비루(鼻漏)가 있으세요?" 대신 "콧물이 나세요?"라고 묻는 것과 같은 연유다.

비단 질환이나 증상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다. 위의 예처럼 주소·감별진단·예후·관해 등의 표현은 의료인 간 소통을 위한 의무기록지에 자주 쓰지만 환자와의 대화에 사용할 때에는 많은 장벽이 느껴진다. 더욱이 교과서에서 흔히 보는 '이학적 검사(physical examination)'라는 용어는 어색하기 그지 없다.

20여년전 꽤나 유명했던 외국 의학소설이 국내에 소개될 때 'physical examination'의 의미를 잘못 이해해 의사들이 '물리시험'을 치른다고 번역된 적이 있다.

우리말로 '신체진찰' 또는 '진찰'로 쓰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을 일제 강점기 동안 일본을 통해 '이학적 검사'라는 용어로 굳어진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일본에서조차 이 어색한 표현을 쓰지 않기로 했다.

지난 달 대한의사협회에서 "의학용어 한글화와 소통의 문제"를 주제로 심포지엄이 열렸다. 어려운 의학용어가 환자-의사 소통에 걸림돌이 되지는 않나 되돌아보는 뜻 깊은 시간이었다. 취지는 이해하지만 개인적으로 아직은 '두피(scalp)'보다 '머리덮개'라는 용어가 어색한 것이 사실이다.

앞으로 좀더 자연스럽고 이해하기 쉬운 순우리말 용어가 보급되겠지만 순우리말 여부를 떠나 잘못된 표현, 이해하기 어려운 용어부터 차차 다듬어나가면 어떨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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