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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세계의사회 밴쿠버 총회를 다녀와서

2010 세계의사회 밴쿠버 총회를 다녀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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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0.29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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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방권 지키기 의사의 사명' 의협 주장 관철

▲ 문태준(대한의사협회 명예회장, 전 세계의사회장, 전 보건사회부 장관)
10월 13일부터 나흘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열린 제62차 세계의사회총회는 대단히 큰 성과를 얻은 뜻 깊은 총회였다. 이번 총회에서 대한의사협회는 '처방권에 관한 결의문'과 '의사와 약사와의 관계에 관한 성명'에 중점을 둬 충분히 준비하고 대응했다.

우리는 처방권은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당연히 의사가 가져야 하고 많은 나라에서 이러한 내용을 법적으로 확고하게 규정하고 있는 현실에 근거할 때, 사회주의 의료 관습에 젖은 일부 국가들의 주장대로 처방권을 다른 직종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의사의 기본 사명은 환자에 대한 진단과 치료이고 아울러 약에 대한 처방도 당연히 이에 포함되는 것이 우리의 상식이다. 또 처방권을 간호사·약사 등의 다른 직종과 공유하는 것은 의료의 기본에 어긋나고 환자의 안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스웨덴·캐나다 등과 같은 유럽과 북미 일부 의사회에서는 의사가 처방권을 독점하는 것이 시대 조류에 맞지 않을 뿐더러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었다.

이같은 일부 선진국의 주장은 처방권을 자격 없는 사람들에게 위임하거나 공유하는 것과 다름 없으며, 약에 의한 부작용으로 환자가 입을 수 있는 피해를 도외시한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했다.

일부 선진국 처방권 타 직종 공유주장은 환자 건강에 위험천만

4년 전 스페인의 제안으로 의사의 처방권에 대한 결의문을 작성할 때만 하더라도 의료의 원칙에 부합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출발했고 의사의 권익을 옹호한다는 점도 중시됐다고 본다.

그러나 그 후 일부 선진국들의 처방권 공유 주장으로 인해 교착 상태가 지속됐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결의문 작성 자체의 목적이 왜곡되고 우리의 입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진행될 위험성이 있다고 판단한 필자는 2009년 5월 이스라엘에서 열린 WMA 이사회에서 실무위원을 자원했다.

실무그룹은 스페인을 의장으로 하여 이스라엘·브라질·핀란드·호주·한국에 이어 러시아가 추가돼 활력을 얻게 되었다. 이후 한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처방권에 대한 결의문의 수정안 작업을 진행, 심각한 의사부족 상황 등의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진료와 처방에 대한 교육을 받은 의사만이 처방권을 가질 수 있다'는 취지가 담긴 안을 작성해 세계의사회에 제출했으며 회원국 각국의 의견을 취합하기로 결정되어 각국의사회에 회람하기에 이르렀다.

'처방권 결의문'과 관련,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기 위해 세계의사회 회원국 중에서도 CMAAO(아시아오세아니아의사회연맹)에 가입한 여러 나라를 상대로 그간 끊임없이 서신 또는 유선을 통해 우리의 입장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는 데 노력을 기울여 왔다.

아시아 일부 지역은 아직도 의사회 간의 신속한 커뮤니케이션 체제가 갖추어져 있지 않아 상대국의 회신을 얻는 데 큰 어려움이 있었고 수십 번씩 전화에 매달려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후 필자는 지난 9월 말레이시아에서 열린 제46차 CMAAO 이사회에 참석해 '처방권을 지키는 것이 의사의 사명'이라는 원칙을 호소할 수 있었고 이에 공감대가 형성되어 CMAAO 여러 나라가 합심해서 처방권의 원칙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공고히 하는 단결된 입장을 얻게 되었다.

밴쿠버 총회에서는 논의가 시작되자마자 예상한 대로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나 대세는 막을 수가 없었으며 결국 처방권 결의문을 관장하는 사회의무위원회 표결 결과 10:1이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우리 주장이 통과됐고, 총회에서도 전체 취지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정 제안을 한국과 일본이 받아들이는 선에서 우리 뜻대로 된 것이다. 참으로 다행이고 만족할 만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사회주의 국가 반발에도 '처방권 지키는 것이 의사 사명' 한국 주장 압도적 지지

우리가 전력을 기울였던 또 하나의 이슈는 '의사와 약사의 관계에 관한 성명'이었다. 약물 치료에 있어 의사와 약사의 책임과 업무 구분에 관한 내용을 골자로 하는 이 정책은 1999년 채택 이후 지난 2009년 아이슬랜드에 의해 개정 작업이 진행됐다.

개정 과정에서 약물치료를 지나치게 직종 간 협력에 중점을 두는 차원으로 환원시킴으로써 약물치료에 대한 의사 개개인의 역할보다 보건의료인 간의 협력에 초점이 맞춰지게 된 감이 없지 않았다.

이에 독일의사회가 지난 5월 프랑스 에비앙에서 열린 이사회에서 '처방권은 의사 고유의 권한이다'라는 문구 삽입을 요청했고 한국·일본·브라질·러시아 등의 지지를 바탕으로 독일 의견이 반영돼 밴쿠버 총회에 상정됐다.

이번 총회에서 캐나다·영국·스웨덴·네덜란드·아이슬랜드 등이 해당 문구의 삭제를 강력히 요청하면서 이 성명은 '처방권 결의문'과도 유사한 논쟁 양상이 벌어졌는데, 이 또한 약간의 수정만 거쳐 우리의 뜻대로 통과되었다.

'처방권 결의문'과 '의사와 약사의 관계에 관한 성명' 두 정책 모두 약간의 문구 수정이 이루어진 형태로 통과되긴 했으나 의사에게 중요한 상징성을 갖는 '처방권'에 대한 세계의사회의 정책이 우리 협회와 아시아 각국의 주장과 일치하는 형태로 통과된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영국·북유럽 등의 반대가 심했고 또 이들이 다른 국가들의 정당한 주장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하지 않아 논의를 어렵게 만들었지만 한국·일본·독일 등이 정확한 판단과 신속한 대응으로 두 정책 모두 채택되는 결실을 맺을 수 있었다. 우리들의 의사로서의 신념, 환자를 위해 최선이 되는 것을 지켜나가겠다는 신념을 인정받게 되어 자랑스러웠다.

WMA 회장에 수바차트라스 박사 당선…아시아 지역 안배 호소

이 두가지 사안 외에 이번 총회에서는 세계의사회장의 보궐선거도 중요한 이슈였다. 2009년 인도의사회의 데사이 박사가 아시아 지역의 지지를 받아 차기회장으로 당선돼 밴쿠버 총회에서 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취임을 앞두고 인도 정부와의 마찰로 구속되는 불행한 사건이 발생했다.

다행이 밴쿠버 총회 직전 구속 상태에서 벗어나 총회에 참석할 것이라는 얘기가 들려왔으나 비자 문제로 결국 참석이 좌절됨으로써 보궐선거를 통해 신임회장을 선출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페렐만 러시아의사회장, 바겐홀름 스웨덴의사회장, 수바차트라스 태국의사회 차기회장(CMAAO 이사장) 이 WMA 회장에 출마했는데, 필자는 수바차트라스회장이 온순하고 화합 능력을 지닌 사람으로서 회장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판단하여 그를 위해 적극적인 선거운동을 펼쳤다.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이틀 동안 쉴 새 없이 각국 대표들에게 그를 소개하고, 그의 성품과 능력을 설명했다. 아울러 세계의사회에의 대표성 확보를 위해서는 아시아 지역 안배가 필요하다는 견해를 강력히 피력했다.

다행이 미국과 브라질을 비롯한 남미 여러 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CMAAO 전 회원국들이 지지를 얻게 되어 수바차트라스가 압도적 표차로 당선됐다. 필자 자신이 25년 전 세계의사회장 선거에 출마해 단신으로 돌아다니면서도 당당히 당선됐을 때와 똑같은 기쁨을 느꼈고, 세계 무대에서 아시아 지역에서 온 약소국의 대표로서 온갖 어려움을 극복해야했던 과거의 일이 떠올라 감개무량했다.

우리의 좌표는 한국 넘어 세계..차세대 지도자 양성도 중요한 사명 명심해야

마지막으로 향후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해 여러 회원들께 간곡한 부탁말씀을 올리고자 한다. 의사의 사회적인 위상, 환자와 국민들로부터 받아야 하는 존경, 그리고 국제적인 인정과 참여 등을 유일한 보람으로 살아왔던 필자로서는 우리 의사회가 앞으로도 많은 노력을 통해 더욱 발전을 거듭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에서 국제적인 식견도 있고 인격·능력 등 여러 면에서 국제적으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우리 사회로부터 존경받고 인정받는 의료계의 지도자가 배출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불행하게도 올 대의원총회에서 지도자 양성을 위해 세계의사회가 운영하고 있는 '리더십 프로그램'을 도입하기 위한 예산이 전액 삭감되는 안타까운 일이 있었는데, 지도자를 양성하는 것은 향후 의사회를 활성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동력을 키우는 것이며 그만큼 우리들의 중요한 사명이라는 점을 부디 잊지 말았으면 한다.

한편 국내 문제도 버거운데 "국제회의는 왜 참석하느냐"는 의문을 가진 분들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국제화 시대가 아닌가.

국제화 시대에는 그에 맞는 국가, 또 개인으로서의 책임과 사명이 있고 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곧 우리가 대하는 환자 더 나아가 인류 전체의 번영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것을 인식하고 국제 문제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참여해 주기를 바라는 희망이 간절하다.

2008년 대한의사협회가 주최한 세계의사회 서울 총회는 그동안의 국제 의료계에서의 경험과 참여를 바탕으로 앞으로 더 많은 기여를 하겠다는 의지를 세계 각국 의료계에 보여준 것이었고 2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서울 총회를 역사상 최고의 총회로 인정해 주는 것을 보면서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확신한다.

우리의 좌표는 한국이 아닌 세계라는 것을 잊지 말자. 높은 수준의 경제 발전을 이룩한 나라, 높은 수준의 의료를 갖춘 나라, 의사들이 존경을 받는 나라로서 우리들은 지속적인 희생과 공헌을 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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