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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연리지(連理枝)

청진기 연리지(連理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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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10.22 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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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만빈(계명의대 교수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 임만빈(계명의대 교수 동산의료원 신경외과)

그가 비틀거리며 진료실로 들어섰다. 부인이 그의 한 쪽을 부축하고서 였다. "오랜만이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책상 앞 의자에 앉는 그를 보고 물었다.

10여 년 전, 그의 나이 29세 때 제 4뇌실에 커다란 맥락총유두종이 발견되어 수술한 환자다. MRI상 종양과 함께 심한 수두증 소견이 관찰되었고, 안저검사상 시신경의 유두부종이 심했다. 종양 제거 수술은 별다른 문제없이 이루어졌고 수술 후의 경과도 양호했다.

퇴원을 기다리던 중 갑자기 시력 감퇴를 호소했고 시신경위축이 관찰됐다. 안과와 협진아래 치료를 시행하였으나 결국 눈앞의 물체가 희미하게 보일 정도의 시력으로 퇴원했다.

약 6개월 후였다. 그가 갑자기 양하지가 마비되고 감각을 잃어 응급실로 실려 왔다. 뇌 및 척수의 MRI를 촬영했다. 뇌에는 특별한 이상 소견이 없었으나 흉수부에 척수염의 소견이 관찰됐다.

치료를 시행하였으나 호전은 느렸고 2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목발집고 비틀거리며 걸을 정도가 되었다. 환자는 집에서 요양했고 2달에 한번씩 그의 부인이 외래를 방문하여 약을 처방받아 갔었다. 그가 대답했다.

"방안에서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들으며 하루를 보냅니다. 텔레비전은 희미하게 형체만 보이기 때문에 그냥 소리만 듣습니다. 아침과 저녁은 아내와 같이 먹고 점심은 아내가 밥상을 차려 놓으면 혼자 먹습니다. 문지방을 못 넘어가기 때문에 목발집고 방안만 혼자 걸어 다닙니다.

사람들도 말소리로 구별합니다. 새소리, 닭소리, 개소리도 하나하나 구별해 낼 수가 있습니다. 그래도 혼자 있으면 불안합니다. 모든 청각은 아내의 발소리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하루 종일 그 소리만 쫓습니다."

나는 같이 온 그의 아내를 쳐다보았다. 10여년이 지난 것이다. 그의 나이 29살에 수술 받았으니까 그때 그녀의 나이는 그보다 더 젊었을 것이다. 20대 젊은 여인의 나이로 10여년을 견딘 것이다.

앞을 보지도 못하고 혼자서 밥도 찾아먹지 못하는 그를 거두면서 얼굴은 까맣게 탔고 젊음은 흘러 간 것이다. 얼마나 원망했겠는가, 그들의 운명을 그리고 나를.

"장애진단서를 끊으러왔어요. 다시 장애 등급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진단서를 쓰면서 제천 청풍면에서 보았던 연리지를 떠 올렸다. 두 소나무가지가 오랜 세월 서로 맞닿아 지내다가 합쳐져 하나가 된 소나무였다. 그리고 정끝별 시인의 '연리지'란 시를 중얼거렸다.

너를 따라 묻히고 싶어/ 백년이고 천 년이고 열 길 땅속에/····/ 그물은 달빛 한 동이에 삼베옷을 빨고/ 한 종지 치자 향으로 몸단장을 하고/ 살을 벗은 네 왼팔 뼈를 베개 삼아/····/ 오래된 잠을 자고 싶어/ 남아도는 네 슬픔과 내 슬픔이/ 한 그루 된 연리지/ 첫 움으로 피어날 때까지 그렇게 한없이 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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