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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자랑스런 의사상 30일 마감

한미자랑스런 의사상 30일 마감

  • 송성철 기자 good@doctorsnews.co.kr
  • 승인 2010.09.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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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부문 공모…시상식 12월 의협 송년의 밤 때
논문 중점…진료·학술·교육 등 전생애 업적 평가

'한미자랑스런 의사상' 공모가 30일 마감을 앞두고 있다.

한미자랑스런 의사상은 의학·의술 및 보건의료정책의 발전과 인류복지 증진에 공헌한 의사 회원 또는 단체를 선정, 시상함으로써 이들을 격려하고, 대외적으로 한국의사와 의료계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지난 2008년 대한의사협회와 한미약품㈜가 공동으로 제정했다.

3회를 맞는 이번 공모는 학술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거둔 의사회원이 대상이다. 응모자격은 의학·의술분야 발전에 탁월한 업적을 이룩한 회원 또는 단체. 후보 추천인은 대한의학회장·시도의사회장·군진지부장·의대 학장·협의회장 및 협의회 산하 단체장·학회장·정부기관장 및 정부산하단체장·의료단체의 장 등이며, 1명 만 추천할 수 있다.

제출서류는 추천서·피추천자 이력서·피추천자 사진(명함판)·피추천자 업적 및 심사에 필요한 증빙자료(대표논문 5편 사본 1부) 등이다. 서류는 9월 30일까지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 1동 302-75 대한의사협회 6층 의료정책국에 도착해야 한다. 제출서류는 반환하지 않는다.

수상자에게는 상패와 1억원의 상금(세액 포함)이 전달된다. 시상은 12월 13일 열리는 한미 자랑스런의사상 시상식 및 의협 송년의 밤 행사 때 한다.

의협은 3일 조선호텔 나인스게이트에서 신원형 위원장(상근부회장)을 비롯해 장성구·이원철·김성훈·안덕선·유혜영·정지태 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제1차 심사위원회를 열고 심의기준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위원들은 이 상이 타 기관의 상과 비교해 규모가 크고, 의협이 회원에게 수여하는 상임을 감안, 일정기간의 공적이 아닌 전생애 동안의 업적을 평가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업적은 논문을 중심으로 하되 진료·학술·교육 등을 포괄적으로 심사키로 했다. 이와 함께 논문을 제외한 업적은 추천서에 기재하는 것으로 가닥을 잡았다. 논문은 서류제출 때 리스트를 작성, 제출하도록 했으며, 대표논문 5편의 사본을 제출받기로 했다. 아울러 다른 단체에서 받은 수상경력을 반드시 추천서에 기재토록 방침을 정했다. 후보자는 회비 납부라는 회원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 미납회비는 9월 30일 전까지 전액 납부해야 한다.

■ 1회 수상자 고 이종욱 WHO사무총장

▲ 고 이종욱 WHO사무총장이 2004년 9월 14일 내한한 길에 보건복지부 기자실을 방문했다. 고인은 당시 감염병 퇴치를 위한 국가간 공조와 저개발 국가 및 북한에 대한 의료지원을 강조했다.
제1회 한미자랑스런의사상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수장에 당선돼 대한민국과 한국의사의 명예를 드높인 고 이종욱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받았다.

고 이종욱 WHO사무총장은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국제기구의 수장에 당선돼 대한민국과 한국의사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 공과대학을 나와 동기들보다 5년 늦게 서울의대에 입학한 이 박사는 경기도 안양 나자로 마을에서 한센병 환자를 위해 봉사하며 사회봉사에 눈을 떳다. 1981년 미국 하와이 주립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과정을 마친 이 박사는 1983년 WHO남태평양 사무처 한센병퇴치팀장을 맡은 것을 계기로 가난하고 소외받은 지구촌 가족들을 위해 평생을 헌신키로 결심했다. 누구도 돌보지 않았던 벽오지인 타히티·뉴칼레도니아 등 남태평양지역을 돌며 한센병 퇴치에 팔을 걷은 이 박사는 서태평양 지역사무처 질병관리국장을 거쳐 1995년 마침내 WHO본부에 입성했다. WHO백신면역국장을 맡아 백신 보급에 힘써 소아마비 유병률을 세계인구 1만명당 1명 이하로 떨어뜨리는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 미국의 과학잡지 'Scientific American'은 이 박사를 '백신의 황제'라 칭송했으며, 이후 이 박사의 닉네임이 되기도 했다.

이 박사는 WHO 활동을 통해 보여준 탁월한 추진력과 지칠줄 모르는 열정을 인정받아 2003년 1월 28일 제111차 WHO집행이사회에서 제 6대 WHO 사무총장에 당선, 한국인으로서는 처음 세계기구의 수장으로 등극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사무총장 재직할 당시 현안이던 담배규제협약 체결을 이끌어냈으며, 국제보건규칙을 개정하는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2006년 5월 WHO 총회 준비에 매달리며 과로를 거듭한 이 사무총장은 제네바 사무실에서 갑자기 쓰려져 끝내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다.

2008년 11월 한미자랑스런의사상을 대신 받은 유가족은 "소외된 계층과 제3세계에 대한 보건의료 지원을 위한 봉사를 계속해야 한다"는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상금 1억원 중 7000만원을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에, 나머지는 중남미 국가인 페루에서 활동하고 있는 '파트너스 인 헬스'에 기부했다.

한국국제보건의료재단은 개발도상국 및 북한, 국내 거주 외국인 근로자, 재외동포, 해외긴급재난, 이종욱 기념사업 등을 위해 지난 2006년 8월 보건복지부 산하 보건의료지원 전문기관으로 출범한 기관. 국제보건의료재단은 고인의 유지를 잇기위해 2007년 개발도상국 보건의료인력 연수 프로그램인 '이종욱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개설, 매년 아시아 각국의 보건의료 인력을 국내로 초청해 연수교육을 하고 있다. 2009년에는 WHO와 공동으로 총 상금 10만 달러에 달하는 '이종욱 공공보건 기념상'을 제정, 5월 열리는 WHO 정기총회에서 시상하고 있다.

'파트너스 인 헬스'는 미국 하버드대학 의료인들이 중심이 되어 만든 비영리 의료운동단체로 페루의 수도 리마 인근에서 결핵퇴치와 에이즈환자 치료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 NGO는 페루 빈민촌에서 빈민구호활동을 벌이고 있는 '소시오스 엔 살루드'의 자매단체. '소시오스 엔 살루드'는 고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의 부인 레이코 가부라키 여사가 사무총장으로 활동한 인연이 있다.

■ 2회 공동수상자 고 이태석 신부

▲ 고 이태석 신부의 일대기를 담은 <울지마 톤즈> 영화 포스터. 지난 9월 9일부터 13일까지 5일 간 전국 주요 개봉관에서 상영된다(마운틴 픽쳐스 제공). KBS스페셜로 방영된 다큐멘터리를 극장판으로 제작했다. 아나운서 이금희 씨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제 2회 한미자랑스런의사상은 아프리카 수단의 오지 톤즈에서 의료와 청소년 교육에 헌신한 고 이태석 신부와 유럽 발칸반도 서북부에 위치한 알바니아에서 의료봉사를 통해 사람들에게 사랑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심재두 샬롬클리닉 원장이 공동으로 받았다.

1962년 부산에서 10남매 가운데 아홉 번째로 태어난 고 이태석 신부는 자갈치 시장에서 삯바느질을 하며 생계를 꾸린 어머니를 도우며 인제의대에 합격한 자랑스런 아들이었다. 군의관 시절, 가난한 사람을 도우며 살고 싶다는 어릴적 꿈을 실천하기로 다짐한 그는 1991년 군 복무를 마친 후 한국천주교살레시오회에 입회, 뒤늦게 성직자의 길을 걸었다. 2001년 사제 서품을 받은 뒤 그가 찾은 곳이 바로 20년 넘게 같은 나라 사람끼리 총질을 해 대면 내전을 벌이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

"가장 보잘 것 없는 이에게 해준 것이 곧 나에게 해준 것"이라는 예수님 말씀을 좇아 아프리카에서도 가장 가난하고 헐벗은 나라 수단 남부의 톤즈 마을에 뿌리를 내렸다.

오랜 내전과 감염병에 신음하는 톤즈의 재건을 위해 손수 벽돌을 찍어 병원을 세웠다. 한센병 환자들은 손수 고름을 짜내고 붕대를 감아주는 이 신부의 따뜻한 손길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학교가 없어 배우지 못하고 그로 인해 가난이 대물림 되고 있는 톤즈의 현실을 조금이나마 바꿔보기 위해 그는 돈보스코 초·중·고등학교와 기숙사를 건립했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내몰린 소년병들에게 총 대신 악기를 들려줬다. 전쟁과 가난에 찌든 아이들의 마음을 음악으로 치유할 수 있기를 바랐던 이 신부의 소망은 남부 수단의 유일한 35인조 브라스 밴드를 결성하면서 꽃을 피웠다.

하지만 2008년 모처럼 한국을 방문한 길에 받은 건강검진에서 예기치 못한 말기암 판정을 받은 그는 그토록 보고싶은 아이들이 기다리는 톤즈로 돌아가지 못한 채 2010년 1월 14일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다.

■ 2회 공동수상자 심재두 원장

▲ 유럽의 빈국 알바니아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는 심재두 원장이 2009년 12월 17일 열린 한미자랑스런의사상 시상식에 참석한 길에 본지와 인터뷰를 했다.ⓒ의협신문 김선경
심재두 원장은 해부병리학 의사인 부인과 함께 1993년부터 알바니아에서 의료봉사를 펼치고 있다.

의료봉사와 선교의 터전으로 삼은 알바니아는 세계의 화약고랄 수 있는 발칸반도에 위치한 유럽의 최빈국. 오랫동안 터키의 지배를 받았고, 1993년까지 공산주의체제였다.

심 원장은 공산주의가 해체된 직후인 1994년 알바니아에 들어가 트리아나 대학병원에서 자원봉사 의사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의료기술은 물론 의료장비와 물품이 열악한 이곳에서 심 원장은 호흡기와 결핵 환자를 치유하는 일에, 부인 유소년 씨는 해부병리과 자원봉사 의사로 일하며 호흡기질환 세미나를 열고 결핵약을 기증 하며 후진국형 질병을 퇴치하기 위해 팔을 걷었다.

의료봉사를 더욱 체계적으로 하기 위해 1996년 '한국 알바니아 건강법인'을 설립하고, 2001년에는 건강법인 내에 '샬롬클리닉'을 개원, 수만 명의 환자들을 돌봤다.

현지 의사들의 교육에도 힘썼다. 모교인 경희의대의 도움을 받아 2400여권의 의학서적·논문·저널들을 기증받아 의학도서관을 설립, 최신의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디딤돌을 놨다.

1997년 내전이 일어나자 온 가족이 이탈리아로 탈출해야 하는 아찔한 고비도 겪어야 했다. 알바니아에 대한 애정은 1998년 재입국이라는 결단으로 다시 이어졌다.

1999년 코소보사태로 30만명이 넘는 난민이 알바니아로 유입되자 코소보와 알바니아 국경인 쿠커스와 수도 티라나에 의료캠프를 설치, 6000여명이 넘는 난민들을 진료하기도 했다.

2000년에는 알바니아 의사면허와 의료기관 개설권을 얻어 현재의 샬롬클리닉을 개원했다. 4만 여명에 달하는 환자들이 샬롬클리닉에서 새로운 희망을 찾았다.

진료수입이 전혀 없는 이곳에서 심 원장은 소속 교회와 선교회 그리고 경희의대 동문들의 후원으로 진료와 선교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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