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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진기 자부심을 갖자

청진기 자부심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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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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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단국의대 교수 기생충학)

▲ 서민(단국의대 교수 기생충학)

의대를 목표로 삼던 고교 시절, 막내고모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의대만 가면 신부감이 줄을 설게다."

하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한 게 아니어서, 의대 입학 후 난 그리 환영받는 상대는 아니었다. 심지어 날 본 지 십여 분만에 자리를 뜬 처자도 있었으니, 의대생이란 타이틀이 안생긴 얼굴의 면죄부는 되지 못했다.

이건 다른 친구들도 마찬가지여서 내 주변 친구들은, 비교적 괜찮은 외모를 가진 친구마저, "어디 여자 없느냐?"며 날 닥달했다. 고교 때 지인들이 말한 것처럼 여자들이 날 놓고 싸우는 광경은 연출되지 않았다.

고교 때 들은 얘기 중 어긋난 게 한 가지 더 있다면 그건 '돈'이었다. 막내고모에 의하면 의사는 무조건 떼돈을 버는 존재였건만, 의사 선배들을 보면 별반 돈이 많아 보이지 않았다.

아이가 둘인 전공의 선배는 유치원 보낼 일을 걱정하며 한숨을 푹푹 내쉬기도 했는데, 전문의를 딴 뒤 병원에 취직한 의사들도 떼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돈이 안되는 기생충학을 택한 내가 그저 그렇게 사는 건 당연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그만둔 우리 학교 선생 하나가 "월급이 너무 적다"고 푸념할 땐 마음이 아팠다.

일부 개업의야 사정이 좀 낫겠지만, 요즘 돌아가는 세태를 보면 개업의의 좋은 시절도 끝난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남들은 이런 사실을 잘 모르는 듯하다. 기사에서 '의사'라는 단어만 보면 분노에 차서 "잘 먹고 잘 사는 족속"이란 댓글을 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며, 남녀의 건전한 만남을 추구하는 '듀오'라는 회사의 내부 기준표에 의하면 판·검사·벤처 사장이 30점 만점, 의사는 변호사와 함께 25점이라는 후한 점수를 얻고 있다.

학벌, 재산 등을 합쳐 65점이 돼야 회원으로 등록되는데, 의사는 일단 25점을 따고 들어가니 회원이 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지난달 5년 후배가 결혼을 했다. 사전 정보가 없이 갔는데 신부가 글쎄 이름만 대도 알만한 아나운서인 거다. 아나운서라면 미모와 지성을 모두 겸비한 일등 신붓감이 아닌가? 어쩐지 평소 보기 힘든 미녀들이 잔뜩 있다 했더니, 40이 다 되도록 신붓감을 기다려 온 그 후배가 대견하기만 했다.

근데 그날 집에 가서 관련 기사를 보니 다들 이런 댓글만 달려 있다.

"아나운서들은 역시 결혼을 잘 하는군요. 성형외과 의사랑 결혼하다니."

"성형외과 의사면 돈도 잘 벌 텐데, 역시 아나운서는 대단해요."

해마다 나오는 남자의사 수는 2천여 명, 반면 여자 아나운서의 수는 십수 명에 불과하니 의사보다 아나운서랑 결혼하는 게 훨씬 더 어려운 일이 아닌가? 그 친구가 성형외과인 건 맞지만 미용보다는 재건을 주로 하고, 대학병원에 근무하는 봉직의라 월급이 그리 많지도 않은데 아나운서가 뭐 그렇게 결혼을 잘했다는 걸까?

의사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자기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그리 높은 것 같진 않다. 아마도 일은 힘든 데 비해 사회로부터 받는 대접이 만족스럽지 않아서일 것이다. 위에서 예로 든 것처럼 의사들이 잘 살던 시대는 시나브로 지나가고 있다.

하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은 의사를 오해하고, 잘 먹고 잘 사는 줄 알고, 아나운서와도 능히 결혼할 수 있다고 믿는다. 환자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면서 이렇게 사회적으로 추앙을 받는 직업이 의사 말고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니 의사 선생님들, 자부심을 가집시다. 아직은 의사라고 하면 먹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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