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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봉사하니 더 풍요로워 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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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30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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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희산부인과 조·종·남 원장

노후 대책은 대개 이런 것이다. 정기적으로 예금을 하거나,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하는 것 말이다. 그런데 조종남 원장이 알려 준 노후 대책은 조금 다른 것이었다.

"봉사활동은 왜 이렇게 많이 하냐고 묻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건 바로 제 노후 대책이에요!"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지식과 재능을 기꺼이 나눌 수 있는 삶, 그 과정에서 만나는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야말로 풍요로운 삶에 필요한 원금이고, 막연한 기쁨과 보람은 달콤한 이자인 셈이다.

요즘 적극적으로 노후 대책(!)을 마련하고 있다는 그녀답게, 조종남 원장의 하루 일과는 빡빡했다. 퇴근 후에는 물론 병원 진료 시간 내에도 수 많은 외부 강의와 각종 회의가 기다리고 있었다. 특이한 점은 그녀의 봉사는 단순한 '진료'의 영역을 넘어서 있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무료 진료를 하는 의사이자, 직업 교육에 대한 강의를 하는 강사이며, 국민들에게 올바른 의약 지식을 알려 주고자 만들어진 대한의사협회의 국민의학지식향상위원회(이하 지향위)의 기획위원장이자, 한 때는 한글을 채 배우지 못한 이들을 위한 한글 학교의 교장이기도 했다.

움츠린 여성들의 자립을 돕다

"다양한 일을 맡게 된 것은 YWCA와의 인연 때문이에요. 고등학교 때 처음 YWCA의 봉사활동에 참여했었는데, 의사가 된 뒤에 우연히 제가 근무하는 지역의 YWCA 브랜치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어요. 저에게 직업 교육을 해달라는 독특한 요청이었죠."

YWCA가 그녀에게 부탁한 직업 교육은 조금 특별한 것이었다.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던 YWCA가 산모 도우미 양성과정을 시작했던 것. 조종남 원장 역시 출산한 산모들을 돕는 인력의 필요성을 고민하고 있던 차였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 조종남 원장은 1990년부터 2005년까지 강사로 활동하며, 불안함과 막막함으로 움츠린 그녀들의 여린 어깨를 잡아 주었다.

그런데 이 활동은 그녀에게 또 다른 봉사활동을 시작하게 했다.

"1998년, 가정폭력 피해 여성들이 모여 지내는 쉼터에 가게 되었어요. 몸과 마음이 지쳐 있는 만큼 월경 불순이나 불규칙적 질 출혈 등의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쉼터에 온 여성들에게 자기 건강을 돌보는 일은 생각도 하지 못했죠. 의료보험이 있는데도, 좀처럼 병원을 찾지 못했어요.

혹시라도 남편이 병원 기록을 확인하고 자신을 찾아 나설까 봐 두려웠던 거죠. 그래서 저라도 그녀들을 진료해야겠다고 생각했죠."

검진을 하다 보니, 갑상선 이상이나 유방암이 의심되는 환자도 있었고, 요실금 때문에 문제를 겪는 환자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종남 원장은 동료 의사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도움을 청하면 마다하시는 분들이 거의 없었어요. 무료로 필요한 수술을 해 주시기도 하고, 검사를 해주시기도 했죠. 그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진료를 계속할 수 있는 거고요."

병원 밖 환자의 삶도 돌보는 의사

YWCA의 회원들은 십 년 동안 한결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조종남 원장을 더욱 신뢰하게 됐다. YWCA의 회원들은 그녀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탁하며 2000년 그녀를 YWCA 이사로 선출했다.

"이사가 되면서 활동 범위가 굉장히 넓어졌어요. 기청공민학교의 교장을 맡게 되기도 했죠."

기청공민학교는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학업을 마치지 못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초등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초등학교다. 학생들은 대개 한글을 몰라 생활 속에서 어려움을 겪어온 40~70대 여성들이다.

조종남 원장은 기청공민학교에서 4년간 교장으로 재직했다. '의사'와는 전혀 무관한 활동은 사회를 바라보는 그녀의 시선을 한결 깊어지게 했다.

"의사로 병원에 앉아 있을 때는 질병이 문제의 전부인 것 같아 보이죠. 하지만 사회 속으로 나와 보니 달랐어요. 삶의 모퉁이, 모퉁이 마다 뜻밖의 어려움들이 참 많다는 걸 알게 되었죠."

한글을 모르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위축시키는지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는 그녀는, 한글을 깨치고 자신이 업그레이드 된 것 같다며 좋아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보며 한없이 미안해졌다고. 또 그 연장에서 모두의 풍요로운 삶을 위해 우리 사회가 더 많은 종류의 프로그램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쉼터의 여성들에게도 필요한 것 역시 의료 프로그램만이 아니에요. 사회적·문화적 프로그램도 필요하죠. 실제로 쉼터에서 뮤지컬 관람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든요.

그런 문화 관람이 그녀들을 움직일 때가 많아요. '이렇게 살 수도 있구나' 새로운 삶의 방향을 짚어 보게 되는 거죠. 제가 하는 일이 정말 행복한 일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바로 그런 때이고요."

이렇게 늘 해오던 것이 아닌, 더 필요한 것을 찾으려 하다 보니,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늘 여러 가지 아이디어와 해야 할 일들이 우선순위를 다툰다.

"지금 집중하고 있는 것은 세계여의사대회에서 쉼터 여성들의 의약적·사회적 지원 방안에 대한 발표를 잘 해내는 것이에요. 자녀 교육, 법률적 문제, 자립과 관련한 지원 방안도 포함되어 있죠. 발표를 잘 해서 같은 일을 하는 다른 나라 의사들에게도 도움이 되면 좋겠어요. 또 지향위에서 하는 일도 중요해요.

잘못된 의약 지식은 정말 위험하니까요. 9월 정도면 책자로 배포될 텐데, 많이들 보시고 참고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생명 잇기 프로그램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빼놓을 수 없죠. 장기 기증에 관해 더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고 실천했으면 좋겠어요."

이 일들을 마치면 조종남 원장의 우선순위는 다시 바뀔 것이다. 여전히 해야 할 일도, 나누어야 할 것도 너무 많기 때문이다. 조종남 원장의 노후 대책은 이미 완벽하지만, 아무래도 그녀의 정년은 한참 뒤로 미루어져야 할 것 같다.

글·사진=박수정(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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