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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천덕꾸러기 의학교육의 쾌거

시론 천덕꾸러기 의학교육의 쾌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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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7.09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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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용진(서울의대 교수 의료정책실)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강행군의 막을 내렸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사실상 정책실패를 인정하고 입장을 선회한 것이다. 어느 정권이 들어서도 행정부 관료들이 한 번 추진한 정책을 돌이키는 법이 없는데 매우 예외적인 일임에 틀림없다.

지난 10년간 의약분업 정책을 재평가하자고 주장하고 있는 의료계의 입장에선 정부의 후퇴를 두고 쾌거란 말을 쓸 만하다.

이번 일을 두고 여러 가지 평가가 있다. 사단법인이 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장협회(KAMC)가 조직적으로 일을 잘했다, 한나라당 박영아 국회의원의 도움이 컸다, 이공계교수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교과부 고위관료들이 의전원 반대했던 사람들이었다 등등.

또한 '학장들이 모여서 큰일 하셨네'하며 신기해하고 칭찬하는 분위기가 주도적인 반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며 시기하는 분위기도 일부 있다. 정부와 번번이 부딪히며 뭐하나 제대로 되는 일 없는 의료계에선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기본의학교육(BME; Basic Medical Education)문제는 의료계 현안에서 항상 천덕꾸러기였다. 수가문제보다 중요하게 다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고 자율징계권 문제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진 적도 없다.

대한의사협회 학술이사는 연수교육(CME; Continuous Medical Education)을 담당하고 있고 대한의학회 교육이사는 전공의교육(GME; Graduated Medical Education)을 주로 담당한다.

기본의학교육문제는 담당자가 없는 셈이다. 의사협회나 의학회는 말할 것도 없고 학장협의회조차도 몇 년 전까지 친목단체 수준을 넘지 못했다. 각 대학마다 의학교육실이 생기고 겸임이라도 담당교수가 생긴 것도 최근 인정평가 기준이 바뀌면서부터다.

이런 현상은 우리나라 의료계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한다. 정부는 환자는 많고 의사는 없던 시절, 의사를 빨리 많이 만들어 내는 것이 정책목표였고 의과대학들은 임상지식과 술기를 가르쳐 내보내기에 급급했다. 의사 한 번 만나고 죽는 것이 소원이었고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대학병원에 한 번 모시고 가는 것이 효도였던 시절이 엊그제였다.

그런데 한국의 근대화 속도는 단연 세계 1위다. 의료분야도 마찬가지다. 의사가 귀하던 시절 의사들이 의료현장에서 환자들과 밤낮으로 사투를 벌이는 사이에 의과대학은 무더기로 허가되었고, 보험제도는 점점 규제의 강도를 높여갔으며, 의사들에게 밀린 약사들은 생존을 위한 정치세력화에 여념이 없었다.

의사들이 사회에 눈을 떴을 2000년 당시는 이미 대부분 국민들은 30분 이내에 전문의가 있는 병원을 골라서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적으로는 민주화를 넘어 투명하고 공정한 사회를 만드는 것이 국가적 과제가 되어있었다. 당시 의사들은 좋은 개혁 대상이었다.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했고 기존의 시스템 안에서 바쁘기만 했기 때문이다. 의료보험을 시작하면서 의사들의 수입보전책으로 묵인되어왔던 의약품 리베이트, 병원의 선택진료비 등은 순식간에 개혁의 대상이 되었고 의사들을 옥죄어 왔다. 그 때야 비로소 의사들은 자신들의 위기가 단순한 정치적·경제적 위기가 아닌 심각한 전문가 정체성의 위기라는 것을 깨달았다.

해법을 찾기 위한 의료계는 의사라는 사회적 직업인이 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의사라는 전문가가 가진 사회적 권력의 핵심요체인 전문지식과 윤리의 중요성도 부각되었다. 사실 오래 전부터 의료계 안팎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새겨듣지 못한 책임도 있다.

어찌되었든 의료계는 현재 의료계가 겪고 있는 사회적 수난을 극복하기 위해서 전문가적 정체성을 확고히 할 수밖에 없다. 최신의학지식으로 무장하고 의사집단 스스로 정한 기준을 따르는 윤리적 태도를 갖추는 것, 그것이 사회적 요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의학교육은 의사들의 전문지식 수준을 유지하도록 한다는 측면에서 의사들의 전문가적 정체성을 확고히 하는데 가장 핵심적인 요체이다. 환자들은 윤리적인 의사보다 병의 잘 고치는 의사를 선호한다는 면에서 더욱 그렇다.

아무도 거들떠 볼 수 없었던 의학교육분야가 의료계에게 있어 이 시대에 가장 중요한 화두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의사양성학제는 자율에 맡겨졌다. 승자도 패자도 없지만 의학교육계가 정치적으로 쾌거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의사가 사회의 전문직으로서 정체성의 위기를 극복하기까지 가야할 길은 멀다. 이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의사를 양성하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 깊이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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