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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고마운 세상에 감사를 보냅니다"
"고마운 세상에 감사를 보냅니다"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7.09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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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원 춘천소년원 의무과장

2001년 11월 우리는 한 의사의 이유있는 저항을 만나게 된다. 충청북도 제천시보건소 의무과장으로 일하던 이희원 씨는 뚜렷한 결격사유 없이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보건소장 임용에서 배제된다.

당시 제천시장은 전임 소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보건소장직을 9개월이 넘도록 임명을 하지 않다가 그 해 10월 22일 의사가 아닌 노 모씨(보건직 4급)를 임명한다. 이 씨는 11월 14일 제천시보건소 의무과장직을 사임하고 그해 발족된 국가인권위원회에 장애인 차별에 대한 판단을 묻게 된다. 이 일은 국가인권위원회 발족 후 첫번째 진정사건으로 기록된다.

지금 그는 춘천소년원(신촌정보통신학교) 의무과장이다. '그 일'이 있은 해 12월부터 시작된 일이다. 사회에서 조금은 어긋나고 가정과 유리된 채 삶을 이어가는 아이들과 함께 인생을 이야기하고 아픔을 같이하며 살을 부대끼며 지낸지 여러 해이다.

그 때 그 일에서부터 아이들과 함께 해 온 10년. 그 짧지 않은 시간 속에 녹아 있는 사연이 궁금해진다.

 

 

전날 시원스레 뿌린 빗줄기 때문인지 맑게 개인 하늘은 옹골진 햇발을 내려 눈이 시리게 했다.

춘천. 이십여년전 입대하는 친구를 배웅하러 처음으로 찾았던 이 도시는 시간이 흐르고 세상은 달라졌어도 변함없이 포근하다. 멋진 도시이름 때문일까, 오래된 친구가 있어서일까….

아무튼 이희원 과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인터뷰이에 대한 설레임과 함께 낯설지 않은 이 도시의 기운이 한껏 몸을 달궜다. 시 외곽인듯한 춘천소년원 근처 막국수집에서 그와 자리를 마주했다. 가느다란 안경테 넘어로 보이는 그의 평온한 눈빛에 낯선 이방인은 이내 편안해졌다.

곱배기를 청하며 제천시보건소장 임용배제 사건에 대해 먼저 물었다.

"그 당시 2002년도 지방자치단체 선거에 집중하던 시장에게는 제 불편한 몸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봅니다. 지역 특성상 시장을 수행해서 다니면서 시정과 관련한 보건소업무 안내와 불편사항 해소에 나서야 하는데 제 여건이 그렇지 못하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전임 소장의 사망으로 공석이 된 소장직 임명에 상당한 시간을 보낸 후 보건직 공무원을 보건소장에 임명하는 무리수를 둔 것 같습니다. 저와 연관된 일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결국 시장은 다음해 선거에서 낙선하고 말았습니다."

그 일은 국가인권위원회 첫 진정사건으로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도 큰 관심을 끌었다.

"제가 부당하다고 느꼈던 것은 장애인이라는 점이 임용배제 사유가 됐다는 점입니다. 시장은 그 일이 있기전 저를 우수공무원으로 표창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보건소장 임용 배제 사유가 '장애가 심해 업무에 적합치 않다'라니 스스로의 행동을 부인하는 것 아닙니까. 국가인권위원회는 조직관리 및 직무수행능력, 행정능력 미비, 직무수행 태도 불량 등의 이유로 저에 대한 임용을 배제했다는 제천시 주장에 대해 '직무수행 능력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고 직무수행 태도에 대한 지적도 차별행위를 정당화 하기 위한 조치로 의심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대리 진정인으로 제 일에 관심을 가져주신 김용익 서울의대 교수님께도 감사함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결국 이 사건은 법원의 위법 판결을 받게 된다.

시민단체 등으로 구성된 제천시 장애인 차별 공동대책위원회가 국가인권위의 '장애인 차별행위' 규정에도 제천시가 그에 대한 적극적인 구제조치를 하지 않자 2002년 7월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는데 2년여가 흐른 2004년 2월 12일 청주지법 제천지원은 제천시의 위법성을 인정하며 그에게 3000만원의 위자료 지급을 판결한다.

'장애인 차별행위'로 규정된 이 사건이 법적으로도 위법행위로 인정된 것이다. 배상금 전액을 사회복지단체에 기부한 그에게 그 이후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별도로 제기한 보건소장 임용 취소 소송에서 법원이 '행정적인 절차로는 위법성이 없다'라는 판단을 하게되자 제천시에서 소송비용 300여만원을 부담하라는 최고장을 보낸 것. 그는 당시 기억을 떠오리며 말했다.

"그냥 줘버렸습니다…."

그는 한쪽 팔과 다리가 불편한 3급 장애인이다. 서울의대 81학번이던 그는 1987년 졸업을 앞두고 마취과 실습 수업중 쓰러진다. 질환명은 '뇌동정맥류기형'. 다행히 병원에서 쓰러졌기 때문에 빠른 처치가 가능했지만 한달반을 코마상태로, 9개월을 식물인간으로 보냈다.

거의 1년만에 기적적으로 의식을 찾았지만 이번엔 양쪽 고관절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고관절 수술을 통해 실습실에서 쓰러진 지 2년반만에 휠체어에 앉을 수 있게 됐고 재활치료도 가능하게 됐다.

그는 이후 휠체어에 의지한 채 복학해 1991년도에 의대를 졸업하고 야간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후 연세대 대학원에서 보건학박사학위까지 받게된다.

"아마 저 스스로에 대한 작은 의지의 표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에게 주어진 상황은 그리 녹록하지는 않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계의 일단이나마 느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때의 기억과 경험이 지금도 몇몇 지인들과 새로운 분야를 톺아보며 학문적인 접근을 시도할 수 있는 그늘을 만들어주었던 것 같습니다."

그가 지금의 일을 찾은 것도 세상의 틀에 굴복하지 않는 삶과 궤를 같이 한다.

"이 곳에는 현재 100여명 아이들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들어오게된 상황에 따라 육개월에서 1년 남짓 머물게 됩니다. 오전시간에 그들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같습니다. 세상과 유리되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아픕니다. 저와 함께하는 시간은 잠깐이지만 그들에게 평안이 됐으면 합니다.

또 이 곳 생활이 그들에게 새로운 도전의 계기가 되고 꿈을 이루는 시간이 됐으면 합니다. 의료적인 지원도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야 한정돼 있지만 이곳 교육시스템은 체계적으로 잘 마련돼 있습니다.

인성교육·컴퓨터교육은 기본적으로 이뤄지고 있고 검정고시 준비반과 이·미용, 자동차정비 등 직업훈련교육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은 한사람이라도 더 세상 속 자연인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열과 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남다른 보람을 느끼는 것도 그가 이 곳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쁨이다.

"가끔 이 곳을 나간 제자들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일단 그들의 밝은 얼굴을 대할 수 있어서 기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모습에서 또 그렇습니다. 이곳에 있다보면 참 감사하고 고마운 일들이 많습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하지만 개인적인 역량을 넓히기 위해서도 그는 쉬지 않는다. 학문적 동지들과 새로움에 대한 도전을 멈추지 않고 성과가 쌓이면 논문으로 펼쳐보이기도 한다.

<치유의 예술을 찾아서> <질병은 문명을 만든다> <뇌에게 행복을 묻다> 등 몇 권의 번역작업은 한 권의 책을 상재하기 위해 몰두했던 시간의 열매로 책꽂이에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다.

50여년전 살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갖은 차별과 핍박을 받던 사회에 온몸으로 저항한 로자 팍스를 기억한다. 미국 민권운동의 표지석이 된 그는 흑인이기 때문에 버스자리 조차 허락되지 않은 현실에 맞섰다.

그의 저항은 대대적인 버스 보이콧 운동으로 확산되고 수많은 흑인들이 고통과 불편을 참으며 몇 시간씩 걸어서 출퇴근을 하고 허기진 일상을 감내했다. 이 발걸음은 381일 동안 계속됐다. 결국 미국 연방대법원은 '흑백인 분리승차법 위헌' 판결을 내리게 되고, 1963년 미국 최초의 민권법안이 통과된다.

지금 우리는 많은 차별을 지우고, 또 가리우고 있지만 아직 차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대부분은 불의와 불법에 저항한 이들의 희생을 딛고 일궈온 것이다. 소수와 약자에게 쏠리는 사회의 차별과 편견에 동참하거나 방관자로 머물지 말아야 한다.

때로는 저항하고 분노해야 한다. 좋은 세상을 만들어가는 데 가녀린 몸짓으로나마 세상을 향해 던졌던 그들의 물음에 답해야 한다. 우리는 빚을 지고 있다. 왜곡된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올바름을 이야기한 그들에게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한 사회의 건강성은 관용과 평등에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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