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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리학자의 눈물

병리학자의 눈물

  • 이현식 기자 harriso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6.1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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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년쯤 전 일로 기억한다. 서정욱 대한병리학회 이사장(서울의대 교수)과 서울대병원 출입기자단이 저녁식사를 하던 자리였다. 당시 기자단 중 한 고참 기자의 아들이 부산의 한 의과대학에 입학한 직후였던지라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마침 병리과 전공의 미달 사태 얘기가 나오자 그 기자가 "나중에 아들이 병리학을 전공하게 되면 서울대병원에서 받아주실거냐"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었다. 서 이사장은 화색을 띠며 "꼭 병리학을 선택하게 해달라"고 당부했다.

장면을 바꿔서 지난 4일 세브란스병원 병리학회 비상총회장. 일각에서 학회 보험위원장이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수가 인하 결정을 사전에 알았는데도 이를 묵인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자 서 이사장은 극구 부인하면서 학회의 내분을 차단했다. 이어진 기자간담회와 임원 회의로 그는 매우 분주해 보였다.

7일 대한의사협회와 보건복지부를 항의방문하고 돌아온 서 이사장을 서울대병원 병리과장실에서 만났다. 그는 막 부산지역을 중심으로 병리과 전공의들이 파업에 돌입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였고, 사실 확인을 하려는 교수들과 기자들의 전화에 한참 시달렸다.

바로 옆에 있던 기자는 3분 인터뷰를 위해 30분을 기다리며 통화 모습을 지켜봤다.

8일 오후 2시 병리학회 비대위 결성을 알리는 기자회견장에 들어서는 서 이사장의 손에 2000원쯤 할 것 같은 김밥이 들려 있었다. 그는 오전 11시 비상총회를 주재했고, 그에 앞서 학회 상임이사회를 열었다고 했다. 점심 먹을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서 이사장은 전공의 파업에 대해 정부가 수가 인하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도록 시간을 준 뒤 했으면 한다는 의견을 피력했지만, 한편으로는 미래가 없다고 느낀 전공의들의 심정을 헤아리는 듯 했다.

급기야 그는 기자회견 도중 갑자기 감정이 격앙돼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을 보였다. 손에 들고 있던 책자로 얼굴을 가렸지만, 기자는 다 보고 말았다.

그때 서 이사장은 "파업하는 전공의 대표들이 병리학회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라. 전공의들은 일생을 병리학에 바치겠다고 한 의사들이고… 후배들이지만 존경한다. 그런데…"라고 말하던 중이었다.

끔찍할 것 같은 해부 얘기도 특유의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에 웃으면서 재밌게 말해주던 서정욱 교수의 모습이 요즘 부쩍 그리워진다. 서울대병원 병리과장조차 전공의 모집을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녀야 하는, 그래도 정원을 못채우는 현실은 언제쯤이나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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