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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울림…그의 손끝은 쉬지 못한다"
"영혼의 울림…그의 손끝은 쉬지 못한다"
  • 이영재 기자 garden@doctorsnews.co.kr
  • 승인 2010.04.26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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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설가 이선구 원장

10여년 전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와의 이별은 진료실안에 머무르던 한 의사의 삶을 바꿔놓는다. 무기력하게 친구의 죽음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던 그에게 벗을 잃은 슬픔과 인생의 허무함에서 벗어나기 위한 탈출구는 글쓰기였다.

무엇인가 끄적이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던 그 고통의 순간을 그는 그렇게 거친 몸짓으로 맞서기 시작했다. 의사소설가 이선구 원장(전북 군산·군산 안과).

그동안 장편 <시의 갈레누스>(2006) <베테치아 코덱스>(2007) <왕롱의 잔>(2008)과 지난해 단편소설집 <유리병속의 코끼리>에 이르기까지 매년 장단편 소설을 발표하고 있는 그는 올해도 몇편의 작품을 마무리짓고 세상에 내놓기 위한 탁마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치지 않는 그의 손끝은 오늘은 또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사실 그의 문재는 의대 재학시절 이미 드러났다. 대학시절 시조시인인 구름재 박병순 선생과 최승범 전북대 명예교수를 사사해 시 공부에 입문하기도 했고 몇 편의 시작이 소개되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쓴 단편소설 <동역자>가 '성의문학상'을 받게 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성의문학상 심사위원장이셨던 소설가 이범선 선생님의 심사평입니다. 과분하게도 선생은 그 때 제 글을 통해 소설가의 자질을 발견했다늘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의사의 삶이 그렇듯 대학졸업 이후 전공의를 거쳐 군의관과 개원의 길에 들어서면서 녹록지 않은 의사로서의 삶을 이어가다보니 본격적인 작품활동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틈틈이 습작수준의 시와 소설로 옛시간을 추억하기도 했지만 본격적인 글쓰기와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슬픔과 아픔은 예술을 잉태한다고 했던가…. 예기치않던 친구의 죽음은 그를 걷잡을 수 없이 한 곳으로 내몬다. 소설가 설민호와 공학자 이덕봉. 두 친구가 잇달아 질병의 고통속에 세상을 등지게 되고 의사로서 현대의학의 한계와 무기력함을 절감하면서 갑자기 밀려온 허무함에 몸부림친다.

"누가 이야기했는지는 모르지만 쓰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다는 말, 그 말이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머릿속을 맴돌아 그대로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글쓰기 여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가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길, 가고 나서는 힘겨워, 고통스러워 다시 돌아보고 또 돌아보게 되는 길에 들어선 그에게 소설은 과연 어떤 의미이고 어떤 매력이 있을까?

"고통스럽습니다. 그렇지만 펜을 잡으면 그 고통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사실 창작의 고통 못지않게 작품 속 인물에 이입된 고통도 적지 않습니다. 작품 속에서 한 인물이 느끼는 고통을 작가인 저도 똑같이 느낍니다. 이중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의사로서 환자를 치료한 후 감사의 뜻을 전해받을 때 보람을 느끼듯이, 요즘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작품을 구상하고 글을 꾸리고 여러번의 퇴고를 거쳐 책으로 만날 때의 환희는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삶의 카타르시스입니다."

그에게 글쓰기는 인간에 대한 탐구이다. 자기에 대한 사랑도 말한다. '나'를 사랑하는 것은 내 단점을 사랑하는 것이고 다른 이의 단점을 인정하는 것이라는 생각이다.

"흔히들 사랑을 이야기하는데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천주교인인 제가 문득 깨달은 것은 바로 '나는 과연 나를 사랑하는가'였습니다. 타인을 사랑하면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이 창피스런 판도라상자라는 인식 때문입니다.

판도라상자는 인간의 굴레가 아니라 나름대로 가치가 있는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것입니다. 제 글쓰기는 이렇게 저에 대한 탐구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품은 기독교적인 배경을 뒤로하고 있다.
"몇몇 작품을 쓰면서 스스로 종교에 심취해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종교도 사회를 위해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쓴다기보다는 인간의 삶 속에서 소외와 절망과 극한의 고통에 대한 접근입니다. 이에는 구원이 필요하고 자연스럽게 종교성이 개입됩니다. 과거의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결국 종교는 인류사에 큰 역할을 담당해 온 것은 사실이니까요."

의사와 국민간의 소통문제에 대해서는 의학교육에서 인문학적인 접근이 더욱 활성화돼야 한다는 생각이다. 의료현장의 도식화된 시야를 보다 넓은 공간으로 안내해주면서 오랜동안 고착돼 온 간극을 좁힐 수 있다면 의료인들도 주저없이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다.

"히포크라테스·갈레누스 시대에는 의학과 인문학이 동떨어진 학문이 아니었습니다. 의학자가 철학자이며 기하학자이고 수학자였습니다. 흔히 의사라면 냉정한 논리로 무장한 지적인 인간이 떠오릅니다. 안으로만 지식으로 넘치는 불안정한 의사이미지를 바꾸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의 '클레멘트운동'이 좋은 예인것 같습니다. 도시 빈민가 부랑자들에게 범죄의 악순환에서 그들을 구원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정서·문화적으로 다가온 삶에 대한 새로운 기회였습니다. 고대역사·고전·연극·박물관을 통해 그들의 일그러진 내면은 회복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 사회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판타지와 신화(신학)를 넘나드는 그의 다음 작품은 2030년 독도를 사이에 두고 한국과 일본이 벌이는 일전을 배경으로 한다. 1900년대 이 준 열사의 이야기가 액자소설로 삽입돼 흥미를 더할것으로 보여진다. 3권 분량으로 이전 작품보다 긴 호흡으로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게다가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어두운 사회적 문제도 짚어갈 계획이다.

"10대들의 탈선, 다문화가정문제, 노인의 성문제, 편부모 슬하 아동 문제를 다룬 단편을 생각중입니다. 또 어렵고 삭막한 세상에서 도움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의 소외된 현실을 고발하는 글과 자기의 실수로 인해 자기모순에 빠지지만 결국 구원에 이르게 되는 작품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소설은 '체험과 상상력이 빚어낸 언어 예술'이라고 하듯 그는 절제된 체험과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상상력에다가 세상과 '나'에 대한 사랑으로 여백을 채워간다. 때로는 여행이 소설을 낳기도 하고 소설을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문장을 생각하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작가이다'라는 릴케의 말을 전하는 그에게 글쓰기를 원하는 동료나 후배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을 구했다.

"먼저 쓰고싶은 글을 직접 쓰는 일부터 필요합니다. 수필을 통한 문장연습도 좋겠습니다. 좋아하는 글을 베껴서 끝까지 써보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됩니다. 몇 번이고 되풀이하다 보면 자기만의 언어를 갖게되고 그 언어를 자기 것으로 정리하는 방법을 찾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글을 쓸 수 있을 지 없을지에 대한 생각이 정리됩니다. 마음 속에 감춰놓은 내면의 목소리를 담기 시작하고 신중하게 내면을 들여다보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곁에서 자리를 함께 한 그의 문학적인 스승이자 도반인 소설가 라대곤 선생은 "이 원장님은 미래를 보는 상상력으로 글을 씁니다. 시간이 지나서 남을 수 있는 소설입니다. 소설 속의 미래가 현실화되는 것을 직접 느낄 수도 있습니다."라고 말한다.

10년째 날마다 글을 쓴다. 쓰지 않으면 몸이 아프고 가슴이 저린다. 줄타는 광대가 되어 실수 없이 줄을 내려올 때까지 열정적인 줄타기는 계속된다. 독선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세상의 중심에서 흔들리지 않으며 소외된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눈길도 잃지 않으려 한다. 자신을 사랑하면서 남을 인정하고 소통의 너른 마당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영혼이 녹슬지 않도록 채근하는 그의 손끝은 지금도 쉬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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