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인문학 교육의 필요성
의료인문학 교육의 필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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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9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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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민(단국의대 교수·기생충학)

천안함이 침몰했다. 혹자는 바다에 있던 기뢰 때문이라고도 하고, 북한이 어뢰를 발사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저런 의혹이 증폭되는 이유는 정부에서 제대로 된 진실을 알리지 않는 듯해서다.

하지만 진실을 그대로 알리는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공격이 사실이라면 그 뒷감당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난감하지 않겠는가? 지하벙커에서 며칠씩 안보회의를 하면서도 아무런 발표를 하지 못하는 이유는 거기 있으리라.

의사가 진료를 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예를 들어 회식 중간에 급한 환자가 왔을 때, 회식 자리를 박차고 달려가 응급수술을 하는 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하지만 이건 우리 생각일 뿐,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해주지 않는다.

응급수술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잘못된 경우, 의사의 과실이 없더라도 보호자들은 의사를 원망한다.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 중 일부는 변호사의 사주를 받고 전공의 선생에게 접근해 말을 건넨다.

"회식 중에 일부러 오셔서 수술도 해주셨는데, 고맙습니다."

환자가 잘못된 게 미안했던 전공의는 이 말을 듣고 긴장이 좀 풀린다. 보호자가 다시 입을 연다.

"회식 때 선생님들 술 많이 드시죠?"

"그럼요. 사실 그날도 좀 달렸죠."

이 대화는 그대로 녹취되어 법정에 증거로 제출되고, 회식 중 달려와 응급수술을 했다는 미담은 "술 취한 채 수술...막가는 의사"란 제목의 기사로 둔갑한다.

"미안하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의사 역시 인간인지라 환자가 잘못되면 당연히 미안함을 느낀다. 게다가 환자의 가족들이 거세게 항의한다면 의사가 할 수 있는 말이 "미안하다" 밖에 더 있을까? 그 '미안'은 '실수를 했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나중에 의사의 잘못을 인정하는 증거가 될 수 있다.

그렇다고 그 상황에서 "난 잘못이 없다"고 얘기한다면 더 큰 불만을 불러일으키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난감하기만 하다.

우리 병원 법무팀에 있는 변호사는 "환자와의 대화시에 동정적이거나 동조하는 듯한 발언은 금물이며, 사실대로만 이야기할 것"이라고 말하지만, 위의 사례에서 봤듯이 사실을 말하는 건 경우에 따라서는 해가 될 수 있고, 환자에게 동조하는 대신 잘못이 없다는 점만 강조한다면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욕을 먹기 마련이다.

과거 의사들은 그냥 최선을 다해 환자를 진료하면 됐다. 하지만 지금은 고도의 의료 능력과 더불어 약점을 잡히지 않을 냉철한 말솜씨도 기본으로 갖춰야 한다.

요즘 학생들에게 이런저런 인문학적 교육을 시키는 것도 그 때문일진대, 그 진의도 몰라주고 강의시간에 잠만 자는 학생들이 야속하기만 하다. 아마도 그건 내가 좋은 강사가 아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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