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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낙태…이상과 현실의 충돌
시론 낙태…이상과 현실의 충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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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0.04.02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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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용학(의료와사회포럼 정책위원)

인간의 육체는 배고픔이나 성적 욕구와 같은 생물학적 욕구를 바탕으로 유지한다. 배고픔은 음식을 먹게 만들고 음식 에너지로 신체를 유지한다. 성적 욕구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를 닮은 후손을 생산하여 또 다른 자신을 유지하고자 한다.

그러나 인간의 정신은 육체적 현실에 만족하지 않는다. 육체라는 제한된 공간을 넘어 더 나은 곳으로 나아가기를 원한다. 천국과 극락이라는 이상(IDEA)세계를 믿기도 하며 나아가 그곳에 살기를 원한다. 육체 욕구를 넘어서서 정신이 원하는 고매한 자아를 실현하기 원하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려 노력한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을 함께 가진 존재로 육체적 욕구와 정신적 욕구 모두 충족하기 원한다. 정신없는 육체는 인간이 아니듯 육체없는 정신도 인간이 아니다. 육체와 정신이 서로 다른 것을 요구하면, 때로는 육체적 욕구를 누르며 때로는 정신적 욕구를 누른다.

강열한 육체적 욕구가 넘칠 때에는 정신이 요구하는 도덕성을 무시하게 되고, 정신적 욕구가 강력할 때는 배고픔이라는 육체적 욕구를 누르기 마련이다.

인간의 탄생을 육체적 욕구가 아닌 고매한 정신적 산물로만 볼 수는 없다. 인간의 탄생은 성적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본능이라는 이름의 행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이러한 성적 본능을 도덕적 행위로 인정하기위해, 사회는 제한된 성적 행위를 요구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태어난 아이를 인간이라 부르며, 고귀한 존재라고 말하며, 따라서 서로 죽여서 아니 된다고 말한다. '고귀한 존재', '존엄한 존재'인 인간을 또 다른 인간이 해칠 수 없으며 따라서 태아도 인간이라면 죽여서는 아니 된다고 주장한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엄마의 배속에 있는 존재가 실재 고귀하든 않든 관계없이 적절히 낙태시킬 수단이 없었다. 불만족스런 낙태방법을 이용하여 낙태를 시도해보지만 산모의 건강을 심하게 해칠 뿐 효과가 신통치 않았다.

따라서 태아를 고귀한 존재로 안정한다 해도, 다른 방법을 선택할 수 없는 임신한 여성은, 낙태 문제가 그들에게 선택할 고통을 더하지는 않았다. 낙태 선택권이 없는 당시 여성은 낙태 금지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의학의 발전은 '낙태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임신한 여성들의 낙태 여부 선택이 가능하게 되었고, 그것이 과거에 무조건 고귀하다고 받아들이던 태아를 이제는 고귀하다고 해야 할지 말지를 고민하게 만든다.

태아의 생명을 고귀하다고 할 경우 여성은 자신의 온 삶을 태아에게 바쳐야한다. 실수로 임신한 태아를 결혼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낳아 기르게 된다면 미혼모라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견디어야한다. 또한 이로 인해 혼자 짊어질지도 모를 경제적 부담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입장의 사람들은 임신한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이미지를 바꾸기를 요구하고, 육아 문제, 성(GENDER)문제까지 들고 나온다. 이들은 태아의 삶도 중요하지만 자신들의 삶도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임신 가능한 여성이라는 이유로 너무나 가혹한 요구를 하지 말아 달라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가혹한 요구를 하려면 미혼모라고 비난받지 않게 해줄 것과 육아 문제로 인한 경제적 고통을 사회가 분담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러한 환경이 되어야 태아를 키울 현실이 마련된다고 주장한다. 오늘날 낙태문제는 무의미한 연명치료 문제처럼 발달한 의학에서 파생되었다.

의학의 발달은 다양한 가치 판단을 요구하게 만들었다.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한 가지 가치관으로만 판단된 낙태문제가 의학이 발달한 후 여러 가치관으로 판단하게 된 것이다. 가치 판단은 인간의 생물학적 욕구나 이상세계에 관한 꿈과 관련되어 만들어진다.

생물학적 욕구나 여성의 사회 환경적 입장을 고려한 한 가지 극단적 가치 판단은 '무제한적 낙태'를 허용하자고 주장할 것이며, 인간 생명 존엄이라는 이상적 가치를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은 '절대 낙태 금지'를 주장할 것이다.

양 극단적 주장이 강력하면 할수록 미국에서처럼 상호 비난을 넘어선 테러로 이어질지 모른다. 낙태문제는 가치관의 차이이다. 따라서 양측의 극단적 가치관을 만족시킬 낙태법은 있을 수 없다. 대한민국의 낙태 관련법이 죽은 법이 되어버린 이유는 국민의 가치 기준에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터넷이라는 정보도구는 대한민국을 더욱 빠르게 다원적 가치를 인정해야하는 세상으로 만들고 있다. 그러한 세상은 하나의 가치 판단 도구로 모든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없다. 따라서 유연하지 않고 경직된 줄을 그을 수밖에 없는 '법이라는 가치 판단 도구'는 매우 불안정한 도구일 수밖에 없다.

법이라는 가치 판단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면, 법과 다른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을 억울한 희생자로 여기고 중세시대 마녀사냥으로 억울하게 희생된 사람처럼 여기게 될 것이다. 이러한 가치 판단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낙태 찬성론자나 반대론자 모두 낙태를 줄여야 한다는 점에 동의할 것이다.

따라서 낙태를 줄이고자 원한다면 불만족스런 강력한 법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환경변화와 의식변화를 통해, '다양한 가치 판단에 적합하게' 낙태를 줄이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며, 처벌 문제가 따라다니는 법의 강제가 아닌 도덕적 판단에 더 많은 비중을 두어야 할 것이다.

최종적으로 생명을 중요시하는 교육과 여성들이 견딜 수 있는 사회 문화 환경 개선을 통해 자율적으로 낙태를 줄여야할 것이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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