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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율성만 기억하는 생각의 습관

효율성만 기억하는 생각의 습관

  • Doctorsnews admin@doctorsnew.co.kr
  • 승인 2010.03.19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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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범은경(광주 중앙 아동병원)

시간과 돈의 갈림길에 서면 나는 거의 시간을 아끼는 쪽을 선택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정말 지겹다고 맨날 징징거리기는 했지만 내심 그럴 수 있어서 좋았다.

톨게이트가 있는 자동차 전용도로와 신호등이 많이 있는 일반도로의 갈림길을 만나면 잠깐 망설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동차 전용도로로 접어들었다. 핑계는 정말 많았다. 시간이 없어서, 배가 고파서, 너무 피곤해서….

그러나, 역시 빠른 판단이 필요한 직업을 가지고 직장과 가정을 양립하며 항상 바쁘게 살아오고 있기에 내게는 시간의 효율성이 몹시도 중요하다는 이유를 은연중에 찾아낸 날이 가장 많았다.

자동차 전용도로로 다니다보면 이곳은 왜 하이패스가 안 되는 것인지 불만이 생긴다. 진료가 힘들었던 날의 퇴근길이면 어김없이 차문을 내려서 돈을 내야하고 때로는 기다렸다가 거스름돈을 받아야만 하는 일에 짜증이 난다.

나는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을 미리 준비한 다음, 빠른 속도로 건네주어도 떨어뜨리지 않도록 각을 잡고 쪽창으로 빠져나온 팔을 향해 접근해서 릴레이 바톤을 건네듯 재빠르게 돈을 건네고 바로 악셀을 밟으며 지나간다. 거스름돈이 필요 없는 날에는 브레이크를 완전히 밟고 서야 하는 수고로움을 피하기 위해 영수증 따위는 절대 받지 않는다.

어느 날엔가, 젊고 호감형인 남성이 운전하는 차를 탄 일이 있었다. 그도 역시 자동차 전용도로의 톨게이트를 통과하게 되었는데 내게는 팔로밖에 존재하지 않는 쪽창 속의 그녀가 그에게는 완전한 인격체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창을 내린 뒤 미리 준비한 돈을 집어 들면서 만남의 인사를 하고 돈을 내민 뒤에는 수고하시라는 끝인사까지 한 뒤에 비로소 창을 올리고 출발하는 것이었다.

멋져보였다. 다음날부터 나는 훈남의 흉내를 내 보기로 한다. 시작은 어색하였기에 창을 내리고 만남의 인사를 할 때까지는 눈 맞춤을 하지 못했고 거스름돈을 받으면서 끝인사를 하려다가 비로소 쪽창속의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세상에! 그녀는 아직도 내 기억 한 편에 남아 가끔씩 떠올려보곤 하는 중학교적 친한 친구였다. 별 놀라움 없이 나를 향해 그저 멋쩍게 웃는 것으로 보아 그녀는 벌써 나를 몇 번 보았던 것 같다.

미안했다. 너를 일부러 모른 척 한 것이 아니었다고 오해를 풀어주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나의 효율성에 대한 철학부터 설명해야 하는 일이 너무 길어 자신이 없었다.

지난해 가을, 교외에 집을 짓고 이사를 했다. 출퇴근에 걸리는 시간은 자동차 전용도로에 왕복 4000원을 바쳐도 약 30여분. 봄이 오면 몸 바쳐서 관리해야 하는 정원이 100여평이며 집기 하나라도 고장 나면 달려와 줄 관리실도 없다.

게다가 내 동거인은 나보다 훨씬 더 바쁜 남편과, 새벽에 나갔다 밤중에 돌아오는 고등학생 아들 뿐이다. 모든 일이 다 내 손안에만 있을 줄 모르지 않았다. 그래도 하고 싶었다.

집을 짓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힘든 것은 은퇴도 아직 먼 이 시점에 내가 이곳에 집을 짓고 돈으로 보나 시간으로 보나 효율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짓을 하고 사는 이유가 궁금한 지인들을 만나는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도 나는 자동차전용도로와 일반도로의 갈림길에 서면 기어이 자동차 전용도로 쪽으로 가고 만다. 기껏해야 10여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 길인데도 여전히 머릿속에는 돈보다 시간을 택해야 하는 수 없이 많은 이유들이 줄지어 서있다.

여유를 바라는 것은 가슴 뿐 생각과 결정은 모두 익숙해진 습관대로이다. 아름다운 추억 속의 친구를 무안하게까지 만든 효율성만 기억하는 생각의 습관은 참으로 고약해서 여간해서는 고치기가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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