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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3-28 17:57 (목)
'자녀문제'의 대의어(對義語)?
'자녀문제'의 대의어(對義語)?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10.03.05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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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선아(인천기독병원 정신과)

정신과 진료의 대상이 되는 진단과 그 치료방안이 다양하기 때문인지 정신의학계에는 분과학회가 유별나게 많다. 더구나 정신과 환자에게 여러 질환이 같이 있는 경우도 많고, 경과 중에 또는 연령이 증가하면서 다른 정신질환이 추가로 나타나기도 하니 다양한 학회에 참가하는 것을 거를 수가 없다.

요즘은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학회도 증가하는 추세여서 외국 출장을 꺼리는 의사에게도 좋은 기회가 늘어난 셈이다.

필자도 작년 가을 국내에서 개최된 아시아치매학회에 참석했다가 노인 자살에 대한 영국 학자의 강의를 들었다. 국가에 따라서 노인 자살률 변화 방향이 다른데 연구 대상 중 노인 자살률 1위 국가가 대한민국이라는 내용이었다.

강의를 들을 당시에는 일제 강점기와 6·25 한국 전쟁 등 고난과 역경을 견뎌내신 우리 부모님 세대가 이제는 부강해진 조국에서 행복하게 지내는 것이 마땅한데 이게 뭐란 말인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그 후 두 달 가까운 시간이 흘러 필자가 준비했던 학회에서 광치료(light therapy)의 효과와 임상적 유용성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그 날 밝은 빛이 나오는 조명기기를 우울증과 불면증의 치료에 사용하는 발표 자료를 대하곤 순간적으로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임대주택의 월세, 자녀들이 드리는 생활비와 용돈 등 매달 수백만 원의 수입이 있는데도 전기요금 몇 만원을 아끼려고 어둡게 지내면서 수면제를 찾으시는 시댁 어른 생각이 났다.

오래 전 의대 재학 당시 우울증의 광치료에 대한 강의를 듣기는 했었지만 학회에 참석해서 치료용 조명기기를 소개하는 자료를 직접 보니까 역시 문제 파악이 잘 되었다.

필자가 진료하는 환자 중에는 자녀 집에서 같이 생활하자는 권유를 거절하신 노부부도 여럿 있다. 어떤 분은 부부 모두 청력이 안 좋은데 매일 밤 빗장을 단단히 걸어 대문을 잠근다.

진료 받는 날, 오전 예약 시각에 맞추려고 며느리가 아침 일찍 가서 초인종을 눌러도 귀가 어두운 시부모님께서 대문을 열지 않고 전화도 안 받아 고충이 크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등이 아프시다는 노인 환자를 동반한 자녀에게 확인한 결과,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은데도 난방비를 아낀다고 춥게 생활하면서 병원에 와서는 여기저기 통증을 호소하신다.

이 지경에 이르면 사교육비에 허리가 휘고 '자녀문제'로 신경을 쓰는 대한민국 중년세대에게 듣기에도 낯선 '부모문제'라는 또 다른 과제가 주어진 형국이다.

그나마 정신과 진료니까 자녀들이 그런 하소연을 할 여유가 있고, 필자도 정신과 의사라서 진료 중에 그런 말을 듣고 이렇게 상황을 정리할 수 있는 것 같다. 진료를 받으러 오시는 노부모를 모시고 내원하는 자녀가 모두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모교 동창회 소식지 편집회의에서 들은 말이다.

대학병원에서 진료하는 동문 한 분은 노인 환자와 함께 내원하는 가족에게 관계를 알아보고 "천당 가시겠습니다"하고 덕담을 한다는 말씀이었다.

몇 년 전부터 필자도 위급 상황에서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보안업체 시스템을 설치해드리고 사용료를 대신 내드리지만 부모님 진료에 동반하는 일은 정성이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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