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3-29 20:40 (금)
시론 국가주도 임상진료지침 제정 우려
시론 국가주도 임상진료지침 제정 우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10.03.05 09:43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이원표(대한내과개원의협의회 부회장)

근거중심의학이 의학의 대세가 되면서 각국에서 임상진료지침이 활발하게 개발·사용되고 있다. 우리나라의 임상진료지침 작성은 아직 초기단계로 숫자도 수십 개에 지나지 않고 지침의 개발·유사한 지침들의 정리·인정 또는 수용 및 활용의 주체나 과정 등에 대한 원칙이나 합의도 정립되지 않은 상황이다.

각종 학회에서 자생적으로 개발한 지침 외에 정부도 제법 많은 예산을 들여 연구를 하고 있고 의학회도 수년간 정부지원을 받아 지침 발간사업을 하고 있어 약간은 혼란스럽고 중복되는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최근 정부의 '근거창출 임상연구국가사업단'이 구성되고 '한국보건의료원'이 신설되면서 지침개발의 비효율성을 개선한다는 논리로 국가기관이 지침 개발과 활용의 전반을 관장하려는 의도를 보여 정부와 의사협회 및 의학회 사이에 갈등과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우선 우리나라 대부분의 임상의사들은 임상진료지침 논의 자체가 그리 탐탁하지 않다. 혹자는 지침의 정의가 '임상의사와 환자의 의사결정을 돕기 위해 체계적으로 개발된 진술'이고 지침의 내용은 권장사항이지 진료를 제한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침의 활용범위에는 급여나 심사기준 및 질평가기준이 당연히 포함되고 정부가 적지 않은 예산을 투입하는 동기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침의 개발이나 활용은 세계적인 추세이나 유독 의료계에 대해 비우호적이고 경직된 우리나라에서 지침의 부작용에 대한 임상의사의 걱정은 단순한 기우라고 할 수 없다. 기준이나 지침에 모든 진료사례의 다양성을 포함할 수는 없어 이를 벗어나는 진료는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때 최선의 진료를 위한 불가피성을 인정받는 대신 획일적으로 부당한 진료로 매도당하는 오랜 경험으로 임상의사들은 지침, 특히 공기관 주도의 지침 개발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다.

지침의 부정적인 한 사례로 대한간학회의 B형 만성간염 치료 가이드라인을 들 수 있다. 2004년도에 발간된 지침에는 라미뷰딘에 내성이 생긴 환자에서 아데포비어로 변경할 경우에 3개월만 라미뷰딘 병용요법을 권장하였다.

그때까지의 연구결과에서는 3개월 이상의 병용이 치료효과를 높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를 활용해 건강보험 급여기준은 3개월만의 병용을. 그것도 비급여로 인정하고 추가적인 병용요법은 아예 불가능하게 고시되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계속적인 병용요법이 내성발현율을 극적으로 낮춘다는 결과가 나와 세계적인 기준이 되었으나 대한간학회 가이드라인에서 이를 개정한 것은 2007년도였고, 그나마 비급여라도 계속적인 병용이 가능해진 고시는 2009년에나 개정되었다.

고시개정까지 의사들은 적절한 치료를 포기하거나 불법을 저질러야 하는 난감함을 감수해야 했다.

반면에 가이드라인에서는 조직학적 이상이 있는 환자나 간경변증 특히 비대상성 간경변증 환자에서는 조기에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하도록 권고하고 있으나 수없는 건의와 청원에도 불구하고 모든 B형 만성간질환에서 획일적으로 항바이러스 치료기준을 적용하는 인정하는 심사기준은 아직까지도 굳건하게 유지되고 있다.

이 사례는 끊임없이 진보하는 의학의 변화가 진료지침에 반영되고 급여기준까지 변경되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다, 보험재정에 유리한 부분만 자의적으로 활용하는 문제점을 잘 보여준다.

그러나 제일 중요한 부작용은 지침에서 벗어나는 진료를 아예 부당한 진료로 제한하는 우리나라의 획일적이고 경직적인 문화이다.

어떤 진료행위를 근거가 미약하거나 재정에 부담이 커서 급여에 포함시키지 못하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나 환자나 질환의 개별적인 다양성과 의사의 자율적인 전문성을 무시하고 아예 금지시키는 현실에서 진료지침에 대한 의사의 불신을 없애고 적극적인 참여와 활용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의료분쟁의 경우에 의사의 과실 여부의 기준으로 진료지침이 획일적으로 적용되는 것도 크게 우려되는 가능성이다.

이러한 문제점의 해결을 전제로 진료지침을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지침의 개발 및 활용의 모든 과정을 공기관이 관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은 신뢰의 문제로 활용의 제일 큰 주체인 임상의사가 그 의도가 의심되는 공기관 주도로 개발된 지침을 신뢰하고 적극적으로 수용할 가능성은 낮다.

지침 개발의 연구주체 선정 등에서도 국가기관이 의사협회나 학회에 비해 더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고, 오히려 의사협회와 의학회가 주관할 경우 개발 단계에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끊임없는 동료평가(peer review)와 검증으로 학문적이고 수용 가능한 지침 개발이 가능하다.

상충되는 지침들을 정리· 종합하는 단계에서도 학회간의 의견을 수렴하고 조정하는 과정의 주체로는 의료계의 대표성을 가진 의사협회와 의학회가 제일 합당한 기관이다.

국가주도의 지침개발의 장점으로 사회적인 합의의 용이성이 거론되나, 존엄사 문제처럼 사회 각층의 합의가 필요한 진료지침은 드물다.

게다가 사회적인 합의는 일단 의학적인 바탕에서 의료계가 진료지침을 개발, 발간한 후 이의 다양한 활용을 위해 필요한 과정으로 이때가 공기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한 단계다.

우리나라에서 임상진료지침이 성공하려면 부작용에 대한 확실한 대책을 전제로, 의료계를 대표하는 의사협회와 의학회가 수용 가능한 진료지침을 개발하고, 국가는 개발단계에 필요한 비용과 자원을 지원하고 활용단계를 주관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