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story 의사실기 불합격 소송, 제도정착 기회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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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현식 기자 hslee03@kma.org
  • 승인 2010.02.26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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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지난해 처음 실시된 의사국시 실기시험에서 한 표준화 환자가 모의환자 연기를 하고 다른 한 명은 채점을 하고 있다.

지난해 아시아 최초로 우리나라에서 실시된 의사 국가고시 실기시험에서 불합격한 66명이 최근 보건복지가족부장관을 상대로 불합격처분을 취소해 달라는 소송을 서울행정법원에 제기했다.

의사 국시가 73년간 필기시험만으로 시행되다가 실기시험을 포함한 다단계로 변경된 첫 해인 만큼 실기시험 제도 정착을 위해선 피할 수 없는 진통으로 보인다.

이번 실기시험에서 탈락한 학생은 총 응시자 3456명 가운데 4.8%(167명)로 필기시험 불합격률 3.0%(총 응시자 3452명 중 103명)보다 높다. 실기시험에서 고배를 마신 167명 가운데 142명은 필기시험에는 합격한 경우인데 이 학생들은 다음 시험에서 필기시험은 면제받고 실기시험만 치르게 된다.

실기시험에 불합격한 학생들은 의대 학장·교수들과 복지부에 간곡한 심정을 담은 호소문을 각각 보냈다. 이들은 "저희도 실기시험이 양질의 의사를 배출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에 대해선 절대적으로 인정한다"면서도 "'아시아 최초 시행'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급하고 무리하게 강행해 제도 최초 도입의 희생양이 됐다"고 말했다.

소송대리를 맡은 최 욱 변호사(법무법인 원)는 "실기시험 준비는 한두 달이면 충분한데 시험을 일 년에 한 번만 시행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는 큰 손해"라며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에서 주로 참고했던 미국의 사례를 보더라도 일 년에 여러 번 응시할 기회를 부여해 시험의 공정성과 형평성을 확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학생들 주장의 핵심은 ▲채점자가 전문적인 의학지식을 갖춘 의사나 교수가 아닌 표준화환자(standardized patient, SP·모의환자)라는 점 ▲합격인원이 정해지지 않은 자격시험인데도 합격기준을 사전에 정하지 않고 시험 시행 후 합격선을 정한 점 ▲문제은행 출제방식에 따라 수험생이 속한 조별로 각기 난이도가 다른 문제에 응시했다는 점 등을 꼽을 수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소송을 제기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아직 소장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피고를 복지부 장관으로 지정했지만 국시원장으로 피고 경정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소장을 접수하는 대로 국시원에서 변호사 선임 등 대응에 나서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불합격한 학생들의 고충은 1년을 통째로 쉬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미국처럼 여러 번 시험을 볼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요구가 나오고 있다.

미국의 의사자격시험(USMLE)은 3단계로 나뉘는데, 이 중 2단계(step 2)는 다시 진료 지식에 관한 CK(clinical knowledge)와 진료 기능에 관한 CS(clinical skills)로 구분된다.

바로 이 CS가 우리나라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해당하는데, 미국은 한 단계의 시험에 불합격하더라도 1년에 3번까지 재응시가 가능하다. 우리나라도 인력과 시설·비용만 뒷받침할 수 있다면 고려해 볼 만하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해 단 한 번의 실기시험를 치르는 데도 국시원은 준비상사태로 운영됐다. 2009년 9월 23일부터 12월 1일까지 공휴일을 제외한 51일동안 매일 12명의 수험생을 한 조로 해서 국시원 건물 안에 마련된 의사실기시험센터 2곳에서 하루를 3번으로 나눠 72명(12명×2개 센터×3사이클)을 대상으로 시험을 치르는 데도 너무나 벅찼다.

별도의 국고지원이 없다면 응시횟수를 늘리는 일은 요원해 보인다. 다만 2004년 국시원의 연구용역으로 수행된 '의사 다단계 면허시험제도 실행방안 연구' 논문(책임연구자 이윤성 서울의대 교수)에서 제안했듯이 현재처럼 한 곳에서 시행하는 '중앙센터형' 대신 전국 10~15곳의 대학병원을 실기시험센터로 지정해 단기간에 시행하는 '분산형'을 채택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 실기시험 센터.

"인턴 부족한데…"

최근 전국 수련병원에서는 인턴을 구하지 못해 애먹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의대·의전원 졸업생 수가 인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해서다. 실기시험 불합격자들은 인턴 과정에서 1년간 제도적으로 임상술기를 배울 수 있기 때문에 기존의 필기시험을 통과하면 인턴 수련을 조건으로 의사면허를 인정해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 의료법 체계에서는 의사국시에 합격하면 이후 전공의 수련과 관계없이 진료에 제약이 없다.

앞서 언급한 논문에서도 이러한 점을 언급하고 있다. 즉 실기시험을 의사면허 취득의 조건으로 정할 수 있지만, 의대 졸업 후 기초의학이나 연구직 등 진료행위를 수행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오로지 실기시험의 불합격만으로 의사면허 자체의 취득을 제한하는 데에는 반론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예상했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필기시험에 합격하면 의사면허를 부여하되 실기시험 불합격자는 독립적인 진료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지만 현 제도는 실기시험에 불합격하면 의사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도록 했다.

이윤성 교수는 "당시 의사 자격과 진료 면허 개념을 구분해 제시한 하나의 방안"이라며 "하지만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면 정책 결정은 정부에서 하는 것이고 현행 의료법에서는 이런 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국시원 "미국도 모의환자가 채점"

▲ 의사국시 실기시험 응시모습.
실기시험 불합격자들은 의료법 시행령(제6조)에서 시험위원은 전문지식을 갖춘 자로 위촉하도록 돼 있는데도 총 900점 가운데 600점을 차지하는 CPX(Clinical Performance Examination)의 경우 표준화환자가 채점하게 돼 있어 위법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국시원에서 올해 1월 공고한 표준화환자 모집공고에 따르면 모집대상은 20~50세의 주부·자영업자·연기자 등으로 의학적인 전문지식을 요건으로 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국시원은 미국에서도 표준화환자가 채점을 하고 있고 문제가 될 소지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시원 관계자는 "표준화환자에 대해서는 의대 교수들이 기본교육·집중교육·추가교육 등 체계적으로 나눠 사전교육을 시행했고 채점기준표가 계량화되어 있기 때문에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표준화환자는 두 명이 한 팀이 되어 한 명은 모의환자로 연기를 하고 한 명은 채점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면 '소변 색깔을 질문했는가'와 같이 행위 여부를 질문해 행위를 했으면 5점, 안 했으면 0점 방식으로 매길 뿐이라는 것이다.

다만 환자와 의사와의 관계의 경우 '친절도'에 대한 평가가 있기 때문에 약간의 주관성은 배제할 수 없는 측면이 있다.

'시험 시행 후 합격선을 결정한 것'과 관련 국시원에서는 사전에 합격선을 정했더라면 훨씬 많은 항의가 제기됐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첫 시험인 만큼 시험 시행 전에는 학생들이 느끼는 난이도 수준에 대해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전문가들이 충분히 검토한 방법(modified Angoff 방식)을 복지부 고시로 정했다고 덧붙였다.

'조별로 다른 문제가 출제돼 난이도가 어려운 문제를 접한 학생들이 손해를 봤다'는 주장에 대해 국시원 관계자는 "예를 들면 봉합술 문제의 경우 하루만 출제되는 게 아니라 무작위로 여러 번 출제된다"며 "같은 날 시험 보러 온 학생들끼리만 상대평가하는 게 아니라 출제된 모든 문제의 합격선을 문제별로 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이밖에도 전체 학생들에게 모의시험을 볼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던 점을 문제삼고 있다. 국시원이 실제 시험에 앞서 2번의 모의시험을 시행했지만 일부 학생만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응시하고 싶어도 참여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학생들은 "미국에서는 실기시험 도입 당시 응시대상 전체를 상대로 의무적인 예비시험을 거쳐 검증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시원 의사시험위원회 한 위원은 "그런 얘기는 들어본 적 없다"며 "모의시험은 각 대학에서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송 승패 떠나 제도개선 노력 해주길"

실기시험 불합격이 취소될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할 문제다. 다만 판례상 학생들이 구제될 가능성이 높다고는 볼 수 없다.

시험 불합격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판례의 일반적인 태도는 재량행위론에 근거하는데, 재량권을 남용·일탈하여 현저하게 불합리하지 않으면 취소하지 않는다.

지난 의사국시 실기시험에 대해 의료계에서는 큰 무리 없이 성공적으로 원만하게 치렀다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지만, 일각에선 첫 시험임을 감안하면 애초 예상보다 많은 학생들이 불합격했다는 반응도 있다.

김건상 국시원장을 비롯한 의사시험위원들의 각고의 노력 덕분에 한국은 아시아에서 처음으로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도입했고, 일본과 대만 등 다른 국가들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김건상 원장은 의사국시 실기시험을 보다 완벽한 제도로 정착하기 위해 계속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수차례 밝혀왔다. 부디 복지부와 국시원이 이번 소송의 승패를 떠나 다수가 아닌 소수 학생들의 권익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면밀히 검토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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