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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해진 해에 대하여

정해진 해에 대하여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10.02.11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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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만빈(계명의대 교수)

사람이 정해진 해가 없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해 저 해 마음대로 품어 안을 수만 있다면, 진시황도 못 얻은 불로장생약을 얻은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데 아쉽게도 우리들은 이 해 저 해를 마음대로 품을 수가 없다. 정해진 해에게는 꼼짝없이 머리를 숙이고 정해진 해를 따라 나서야한다. 아무리 떠나고 싶지 않은 정든 안식처라 할지라도, 정해진 해가 한 번 눈을 딱 감으면 두 말 없이 짐을 싸야 하는 것이다.

떠나는 자 마음이 아플 것이다. 아프다기보다 허망할 것이다. 한 잠 푹 자고 일어난 것 같은데 벌써 떠나야 할 시간이 다가 온 것이다. 조금은 얼떨떨하고 실감이 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약간은 막막하기도 할 것이다. 30년 넘게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오로지 천직처럼 일하던 곳이 아닌가? 마취 백을 쥐고 손아귀가 아프도록 주물렀던 삶이 아니던가? 마취를 유도하려고 정맥에 약을 주입했을 때 스르르 감기던 환자의 눈꺼풀, 기관(氣管) 관을 삽입할 때 열리던 성대의 모습, 기관 관을 넣은 후 주무르던 마취백의 감촉, 정상적으로 마취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들던 안도감, 무엇하나 싶게 떨어져나가지 않는 그리운 기억들일 것이다.

그러면 정든 자 떠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남아 있는 자들은 기뻐하겠는가? 떠나는 자의 모습이 얼마 후면 자신들의 모습이라는 것을 만물의 영장인 인간이 왜 모르겠는가? 그래서 남은 자들은 더 슬퍼하는 것이다. 매를 맞을 때보다 매를 맞을 순서를 기다릴 때가 더 괴로운 것과 같이, 남은 자들은 더 가슴을 아파하며 애달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떠나는 자를 진심으로 위로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국은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기 때문이다.

30여년을 꼭 같이 일을 했다. 같이 일을 했다기보다 도움을 받았다. 어떤 때는 억지를 부리고, 어떤 때는 떼를 쓰고, 어떤 때는 되지도 않은 일로 짜증을 부리고, 어떤 때는 앙탈을 하면서 그를 괴롭히기도 했다.

그 때마다 그는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이해하려고 악을 쓰면서, 앙탈하는 동생들을 돌보는 자상한 형처럼, 의연하게 우리들을 도와주었다.

그것은 밖으로는 마치 망나니 같은 우리들을 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환자를 진심으로 위하는 그의 마음이 녹아들어 배어나오는 행동이었을 것이다.

지금 배정인 교수가 정년이 되어 수술실을 떠나려고 하고 있다. 그가 없는 수술실을 나는 지금껏 한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수술실에 환자가 들어가면 그가 어련히 마취를 해 주고, 내가 그와 함께 수술하는 광경만 떠오를 뿐이다. 그런데 실제로 그가 수술실에 없는 그런 상황이 문득 닥쳐온 것이다.

텅 빈 수술실을, 마치 황량한 벌판을, 나무도 없고, 풀도 없고, 물도 없는 누런 황토 흙만 한없이 뻗어있던 모로코의 사막을 혼자 걸어가는 듯한 외로움을 나는 지금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정해진 해는 자꾸만 배 교수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마지막으로 단언한다. 배 교수만큼 동생 같은 외과 의사들에게 잘 대해 주고, 망나니 같은 외과 의사들을 잘 다독거리면서 마취를 해 주는 마취과의사가 있으면 나와 보라고, 우리들은 절대로 그런 사람이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믿고 단언하고 싶은 것이다.

끝으로 배 교수께 첨가하여 기원한다. 부디 남은 생애, 즐겁고 건강한 삶을 사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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