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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dated. 2024-04-20 06:00 (토)
새해의 결심

새해의 결심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2.31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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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하나(이화이대 교수 이대목동병원 비뇨기과)

나이가 들면 시간이 빛의 속도로 간다고 하던가. 벌써 해가 바뀌어 버렸다. 한해를 마감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이 기분은 뭐랄까, 왠지 아슬아슬하게 정류장에 도착해 방금 떠나는 버스 뒤꽁무니의 하얀 연기를 보며 어쩔 수 없이 곧 오게 될 다음 버스를 기다리는 마음이랄까.

게으르고 늑장을 부린 것에 대한 자책, 바쁜 일들은 왜 늘 몰려다닐까 하는 한탄을 담은 한숨을 잠시 쉬고, 그리고는 마음을 다잡는다. 다음 버스를 타고 가면 약속한 시간에 늦지 않을지, 미리 늦을 것 같다고 연락을 해야 할 지 등을 바쁘게 계산하고 할 일을 계획하기 시작한다.

한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을 때도 같은 마음인 것 같다. 어찌 하다보면 어느새 한해가 끝나가 버리고, 그제서야 정신을 차려 넋 놓고 미뤄두고 있었거나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었던 일들을 허겁지겁 해치우면서 찜찜한 마음을 애써 접어둔 채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으려 한다.

때에 따라선 '설날'이라는 민족 고유의 명절이 진정한 새해라고 우기거나 우리집에서는 설날에만 떡국을 먹는다며 일제의 잔재를 버리고 예로부터 대대손손 지켜져 온 조상님의 설날을 진정한 '새해'로 맞겠다는 핑계로 새해의 준비를 맘대로 약 한 달간 늦출 수도 있다(아, 우리나란 정말 좋은 나라야!).

각설하고, 1999년 12월 31일 컴퓨터 프로그램의 대혼란을 염려하여 전 세계가 프로그램 재점검과 교체로 그야말로 새해 첫 날을 뜬눈으로 맞았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정말 로봇으로 수술을 하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나이가 들수록 느껴지는 시간의 흐름도 빨라지지만 과학의 발전은 그를 능가하는 것 같다.

덕분에 의학에서도 예전 같으면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이 가능해졌다. 암도 예전처럼 '진단=사형선고'는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감기는 완벽히 예방하지 못하고, 어이없게도 암환자·당뇨환자를 비롯한 많은 중환자들은 폐렴·패혈증 등 세균 감염 합병증으로 가장 많이 죽으며, 해마다 기괴한 이름의 인플루엔자가 인류를 무형의 공포로 몰아넣는다.

뒤집어 생각해보니 기술과 과학의 발전을 토대로 거침없이 발전하고 있는 현대 의학을 위협하기도 하고, 그 존재 자체로 의학의 발전을 도와주고 있기도 하는 것이 결국 생명체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병을 주고 옮기는 병원체이든, 아름다운 자연을 구성하고 유지시켜주는 식물과 동물이든, 우리의 소중하고 신비로운 인체이든, 그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서로를 돕기도 하고 위협하기고 하는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나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이 소중하고, 사람이 소중하고, 우리에겐 그것을 알고 경외하고 아끼는 마음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결국 다시 원점으로 돌아와 버리고 말았다. 새해가 되어도 오랜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또 해버려야겠다. 새로운 전공의들이 들어올 때마다, 첫 강의를 시작할 때마다 하는 말을 새해에도 나는 또 반복할 것이다.

"여러분은 모든 첨단 장비와 기술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여러분이 평생 만나고 치료해야 할 사람은 은하철도999의 기계인간이 아니라 심장이 뛰고 붉은 피가 돌고 있는 여러분, 그리고 여러분의 가족과 똑같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소중히 대해 달라.

제발 언제 어디서든 그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

아쉽게도 요즘 부쩍 그 사실을 잊고 있는 의학도들과 의사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 가슴 아프지만, 나라고 뭐 늘 잘하고 있는 건 아니니깐.

새해의 결심? 나도 이 마음을 잊지 말자는 것이 늘 하는 내 새해의 결심이다. 그런데, 설날은 아직 한 달도 더 남았으니 좀더 미뤄봐도 될까나…그럼 안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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