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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인칼럼]빵꾸똥꾸
[편집인칼럼]빵꾸똥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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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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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훈정(대한의사협회 공보이사 겸 대변인)
다사다난했던 올해도 다 저물어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그 해 유행했던 말들이 회자되곤 하는데, 그 중에 유난히도 눈에 띄는 말이 '빵꾸똥꾸'다. 이 말은 MBC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출연하는 열 살 남짓한 '해리'라는 여자애가 자기 맘에 들지 않는 상대에게 쏘아대는 욕이다.

극중에서 해리는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충분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하여 항상 욕구 불만에 차있고 그러다보니 나이에 상관없이 불만스러운 대상에게 직설적으로 거친 표현을 하곤 한다.

그런데 이 말이 급속도로 세간의 관심에 집중된 계기는 며칠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위)가 권고조치를 내리면서부터다. 방통위는 해당 시트콤에서 어린이가 지나치게 거친 언행을 자주 반복했다는 이유로 '방송법 제100조 1항'에 의거하여 이러한 권고를 내린 것이다.

그러면 이쯤에서 도대체 '빵꾸똥꾸'가 무슨 뜻인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충 짐작하시겠지만 '방귀'와 '똥꼬'의 합성어가 다소 변형된 것이 빵꾸똥꾸다. 결국 방귀와 똥구멍이라는 뜻인데 이것이 방송법을 위반하는 그런 용어라는 말인가.

유치원에 다니는 내 여섯 살짜리 큰 애가 하는 가장 심한 욕이 '똥개'다. 그리고 어린이집에 다니는 둘째가 할 줄 아는 가장 심한 욕이 '방구'다.

똥개나 똥꼬가 비슷한 수준이라고 쳐도 결국 여섯 살 정도의 어린아이가 할 수 있는 욕이 빵꾸똥꾸일진대, 그 보다도 훨씬 큰 열 살짜리 애가 그 정도의 말을 했다고 해서 그리 큰 문제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다.

솔직히 말해 요즘 길 가다 보면 지나치는 중고등학생들이 내뱉는 말들을 스쳐 들어보면 쌍시옷 소리가 없으면 문장 구성이 되지 않을 정도로 욕이 생활화 되어있다. 그러면 요즘 아이들은 왜 그렇게 욕을 입에 달고 사는 것일까 하는 문제부터 접근해야 되지 않을까.

어느 사회, 어떤 단체든지 구성원들이 풀기 힘든 불만이 있으면 가장 쉽게 표출되는 방식이 바로 '욕'이다. 자고로 유난히 수탈이 심했던 남도 지방에서 걸죽한 욕설들이 발달되었던 것처럼 사회에 불만이 커질수록 욕이 심해지고 늘어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이 기성세대들보다 욕을 더 많이 하고 있다면 그만큼 그들에게 가해지는 스트레스가 더 크다는 뜻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확실히 지금 청소년들은 과거보다 더 많은 학업 스트레스와 유해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그러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단순히 욕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올바른 해결책일까. 그 배경이 되는 기성세대의 잘못은 도외시 한 채 어린아이의 욕 한 마디가 그렇게 듣기 싫었던 것일까. 욕쟁이 '해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섣부른 질책이 아니라 어른들의 따뜻한 관심과 애정이다.

우리 청소년들이 사회의 이해와 배려 속에서 사랑받고 불만이 해소된다면 아마 누가 강제로 시킨다 해도 욕을 하지 않을 것이다.

가만히 보면 해리와 우리 처지가 비슷한 것 같아 씁쓸한 헛웃음만 나온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해주지 않고 어쩌다 한 번 불만을 터뜨리면 표현 방식을 문제 삼는 고루한 나으리들 말이다.

나날이 나빠지는 의료 환경 속에서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서 나도 한 마디 쏘아붙이고 싶다.

"새해에는 똑바로 좀 해라, 이 빵꾸똥꾸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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