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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는 돌팔이 의사였소"
"여보 나는 돌팔이 의사였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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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2.21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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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바치는 마지막 편지

▲ 변형석(서남의대 교수 서남대병원 소아청소년과)
여보,나는 돌팔이였소.

수신제가후 치국평천하라 했는데 의사 남편, 의사 아들을 두고도 폐암 4기가 되어서야 발견한 나는 죄책감 때문에 의사이기를 포기하고도 싶었다오.

그러니까 2008년 1월 당신 두피에 난 작은 뽀드락지가 사형선고 암시일줄이야? 조직검사상 전이암에세포가 보였다는 이야기와 전신 PET-CT상 좌측폐에 탁구공만한 크기의 암덩어리를 직접보곤 난 망치로 머리를 얻어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모두 비어 하얗게 변해버린 느낌이었다오.

고등학교때부터 40여년간 쓴 일기장 위에 평소 눈물이 없던 나였는데, 흘러내리는 눈물때문에 더 이상 일기쓰기를 중단해버렸다오. 35년간의 함께한 생활중 아웅다웅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런 상대도 없다는 외로움에 가슴이 찢어지는듯한 아픔으로 자살하는 사람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오.

의사의 딸로 태어났고 의사의 아내로서 그 흔한 검은비닐 봉투를 사지않고 다른 물품을 담아온걸로 대용하며 근검절약 했던 당신.

세 아이들을 소위 명문대에(당신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진학시키고, 돈은 많이 없어도 대기업 회장이 부럽지 않다며 행복한 웃음을 짓던 우리 부부였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자만이었는지 하느님은 한 사람에게만 모든 걸 다 주진 않나보오.

그래서 난 니체의 말처럼 "신은 죽었다"며 당신에 이끌려 성당에 나가던 것 마저도 끊고 냉담자가 되었다오.

항암치료를 받고 내려온 어느날, 꿈을 꾸었는지 "여보, 저승사자가 나를 끌고가니 붙잡아주오"하며 생생하게 얘기를 하기에 잠에서 퍼뜩깨어 손을 꼭잡았더니 꿈을 깨며 당신이 아니었으면 저승사자에 끌려갈뻔했다고 말했던 당신.

그렇잖아도 전날 같이 있는 정형외과 교수의 꿈에 내가 산에 올라가서 명당자릴 찾는 꿈을 꾸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가슴이 미어지고 터져 버릴듯해 다음날 뒷산에 올라 고래고래 악을 쓰고 내려온 적도 있었다오.

거실의 소파에 앉으면 무등산 정상이 바라보이는 아파트로 이사를 했더니"당신이 일생동안 잘한 것이 딱 두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자기와 결혼한 것이고, 둘째는 이 집을 사준거라"며 해맑게 웃던 당신의 모습을 이제는 더 이상 볼수가 없게 되었나보오.

항암 주사를 맞고 녹초가 되어 누워있으면서도 나더러 골프도 계속 치고 모임에도 개의치 말고 떳떳이 나가라며 나를 위로하던 당신은 진정한 나의 동반자 아니 나의 스승이었나 모르겠소.

젊었을 때부터 죽음이 두렵지 않다고 자주 얘기했던 당신. 폐암 사형선고를 받고도 가정을 이끌어갈 내가 아니고 당신이 암이여서 얼마나 다행이었다는 말을 듣는 순간, 하나뿐인 목숨인데 그런 말을 하는 당신은 종교의 힘도 아니고 죽음에 초연한 슈퍼인간이었소.

세 아이들을 소위 명문대에 보냈고, 특히 딸아이를 결혼시켰으니 최선을 다한 삶이었고 자기 할일을 다했다며 남들에게 마지막 뒷모습을 추하게 보이고 싶지 않다 했던 당신. 그래서 죽을 날짜를 받아두고 5주간의 금식을 할 때 난 입에 들어가는 것이 모래알을 씹는 듯 했다오.

그리곤 멀리 강원도 횡성(광주에서 꼬박 5시간이 걸리는)산골의 휴양림으로 떠난 이유가 첫째는 매일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것을 꺼려했고, 둘째는 소위 시내에 나가면 모델 출신이었냐고 물어보더라며 자랑했던 당신의 모습이 남들에게 추하게 비출까봐였던 것을….

산새들을 벗삼아 새벽에 앞뜰에 떨어진 잣나무 열매를 주어 모아 구석기시대인 처럼 돌로 깨어만든 잣을 2주만에 올라가는 내게 자랑하며 점점 말라가며 통증이 심해도 꾹 참으며 패치와 파스로 온몸을 도배했던 당신.

외로움과 추위에 결국은 집으로 내려와 드러눕게되면서도 그동안 산책길에 캐온 야생화들을 심은 베란다 화단의 꽃들에 물을 주며, 피고지는걸 보면서 꽃을 잘 가꾼것이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었다며 흡족해 하던 당신.

편히 저승으로 가길 기원했으나 암세포는 야금야금 상지부터 하지까지 당신의 몸을 파고 번져가고 있었다오.

올해를 못넘길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더니 올 11월의 마지막 밤을 넘겨 2010년을 맞이 할 줄 알았는데 12월의 첫날 새벽 3시에 갑자기 호흡곤란이 심해 병원 응급실에 실려가서부터 산소 호흡을 하면서 죽음과의 전쟁을 시작했다오.

모니터에 나타난 심전도·호흡수·산소농도를 들여다보는 내마음은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오. 인공호흡기는 사용하지 말아달라고 미리 유언처럼 얘기했듯이 나도 그렇게 당신을 붙잡고 싶지는 않았다오.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나를 만나서 행복했노라고 하기에 우리 주례 선생님이 백년 해로 하라 했는데, 이승에서 못다한 백년해로를 저승에서 다시 만나, 천년 아니 만년 해로를 하자며 뜨거운 눈물이 주체할 수 없었다오.

당신이 그처럼 안잊혀 눈을 못감겠다 했던 효자 둘째 아이도, 결혼을 결정한 여자친구를 당신이 의식이 있을 때 보았으니 모든걸 잊고 편히 잠드소서.

입관하기 직전 자는듯이 평온한 당신의 차디찬 얼굴에 내 얼굴을 부벼대니, 또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더군.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당신이, 하고 많은 날을 놓아두고 이 추운 계절에 차거운 땅속에서 혼자있을거라는 생각이 앞섰지만 애들과 당신이 원했던 화장을 안하고 내가 우겨 매장을 택한 것은 당신이 누워있는 곳에 평소 좋아했던 장미 한송이씩을 바치고 가고 싶은 나의 욕심이었다오.

하늘도 슬퍼하는지 하관을 하는 이 순간 차거운 겨울비가 내리고 있소.이 편지를 당신의 관위에 바칩니다. 당신이 누워있는 이 곳에 자주올테니 외로워 말고 고이 잠드소서.

2009년 12월 9일

돌팔이 의사 남편으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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