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4 13:12 (수)
coverstory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이다"

coverstory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이다"

  • 이석영 기자 lsy@kma.org
  • 승인 2009.11.27 11:20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법부가 인정한 '임의비급여' 허용 범위는?

Cover Story

요양급여기준이 우선인가, 의사의 의학적 판단이 우선인가. 이른바 '의학적 임의비급여' 사건으로 불리며 세간의 큰 관심을 모아 온 가톨릭대 성모병원의 부당청구 환수 및 과징금 취소 소송.

10월 29일 건강보험 청구분에 이어 지난 20일 의료급여분에 대한 선고가 내려짐에 따라 3년을 끌어온 사법부의 1차 판단이 종료됐다. 결론은 병원측의 승리.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보건복지가족부가 성모병원에 부과한 과징금과 환수조치를 "모두 취소하라"고 판시했다.

성모병원이 환수당한 급여비용은 건강보험분 19억 3000여만원, 의료급여분 9억여원으로 총 28억 3000여만원이며, 그에 따른 과징금은 각각 96억 9000여만원, 45억여원으로 총 141억 9000여만원에 이른다.

법원 판결의 요지는 '의사의 진료행위가 비록 요양급여기준이나 의약품 허가사항을 위반했다 하더라도, 환자의 치료를 위해 꼭 필요한 것이었다면 부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것. 이는 현행법이 금지하고 있는 임의비급여 행위도 일정 요건을 갖춘 경우에는 허용할 수도 있다는 취지다.

복지부가 '전가의 보도' 처럼 여기며 요양기관의 진료비 삭감, 과징금 처분의 무기로 삼아 온 각종 요양급여기준, 의약품 허가사항 등이 결코 환자의 생명과 의사의 의학적 판단보다 우선시되는 절대적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라는 엄중한 선언인 것이다.

법원이 제시한 임의비급여 허용 조건

재판부는 몇 가지 '특수한 상황'에서는 임의비급여, 즉 의료기관이 의약품의 허용범위·기준을 벗어난 용도로 환자에게 처방·투약한 뒤 그 비용을 모두 환자로부터 지급받는 행위가 허용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가 적시한 특수한 상황이란 ▲불치병 또는 난치병과 같이 현대의학상 치료방법의 한계가 있고 ▲치료과정이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중대하고 심각한 질병인 경우다.

이같은 상황을 기본 바탕으로 ▲의학적 타당성과 불가피성 ▲환자측에 임의비급여 행위의 의미와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설명 ▲환자의 동의를 모두 충족시킨 경우에는 임의비급여가 반드시 위법한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성모병원 사건의 경우 면역력이 현저히 떨어져 있는 백혈병환자를 치료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고 충분한 예방과 즉각적·선제적인 치료가 이뤄져야 한다는 점이 감안됐다.

예를 들어 성모병원은 급여기준·허가사항에 만성동맥폐쇄증·진행성전신성경화증·진동병·당뇨병 등 환자에게 투여토록 제한돼 있는 '프링크주'를 간정맥폐쇄질환 예방요법으로 사용했다가 삭감처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환자의 면역력 약화에 따른 추가 감염 위험 등을 방지하고 환자의 생명과 건강을 구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경우"로 인정한 것이다.

특히 재판부는 "특수한 경우에까지 요양급여기준·허가사항을 준수해야 한다는 국민건강보험법을 예외없이 적용하는 것은 의료기관의 '직업수행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으로써 헌법에 위반될 가능성이 크다"며 임의비급여 환수·과징금 처분에 대한 위헌소지까지 언급했다.

복지부는 재판 과정에서 "기준을 초과한 의료행위를 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신의료기술 등의 요양급여 결정신청, 항암제에 관한 사전신청 등 절차를 거쳐 인정받은 후에 시행해야 한다"며 이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은 병원측의 위법성을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사건 당시에는 사전신청제도나 비급여대상승인신청 등 제도가 구비되지 않았었다"며 "무엇보다도 이같은 제도를 이용한다고 하여 시급을 요하는 백혈병 등 혈액질환 환자의 치료를 미루어 둘 수는 없다"고 못박았다.

"자기 돈 내고 치료 선택할 권리 있어"

성모병원은 백혈병 환자들에게 골수천자생검을 실시하면서 'NEEDLE-BONE MARROW BIOPSY (MANAN)'를 사용했다. 문제는 이 바늘이 '척추성형용'으로 허가받았다는 사실. 골수천자생검은 다회용 바늘 사용을 전제로 3만1040원의 수가가 책정돼 있다.

그런데 성모병원은 다회용 바늘 대신 개당 5만5000원짜리 척추성형용 바늘을 1회용으로 사용하고, 그 비용을 환자에게 부담토록 한 것이다. 이처럼 이미 수가에 포함돼 있어 별도 산정이 불가한 치료재료 비용을 환자에게 청구했다는 이유로 '부당청구' 판정을 받은 액수가 1억 206만여원에 이른다.

성모병원이 기준을 어기면서까지 척추성형용 바늘을 사용한 이유는 백혈병환자 골수천자생검에 다회용 바늘을 사용할 경우 바늘을 통한 추가 감염이 우려되고, 여러번 사용함에 따라 바늘이 무뎌져 환자의 고통이 가중되기 때문이었다.

재판부는 환자를 위해 기준을 위반할 수 밖에 없었던 병원의 상황을 존중했다.

특히 환자들이 자신의 부담으로 척추성형용 바늘을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해 달라고 복지부에 탄원한 사실에 주목하며 "환자의 생명에 관한 권리 내지 자기의 비용으로 특별하고 특수한 치료를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을 침해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밝혔다.

이와함께 재판부는 병원측이 환자로부터 받은 비용은 치료재료의 실거래가격으로서 병원이 별도의 이익을 얻지 않은 점, 병원이 치료재료 비용을 보전받을 수 있는 실효적인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은 사실 등을 병원측의 유리한 정황으로 꼽았다.

강경근 숭실대학교 법대 교수는 "의학적으로 타당해도 보험급여기준을 초과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고려할 때, 환자가 의사의 설명을 듣고 동의한 뒤 급여기준 초과 부분에 대해 자비로 진료받을 수 있는 '사전적 권리구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국민 건강권을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주진료과 의사에 선택진료 포괄위임 인정

성모병원이 22억 7000여만원의 선택진료비를 부당청구했다는 판정을 받은 이유는 이렇다. 환자는 애초에 주진료(혈액내과)과 의사만 선택진료 의사로 선택했는데, 병원이 임의로 진료지원과(영상의학과 등) 의사까지 선택진료 의사에 포함시켜 선택진료비를 청구했다는 것.

즉 주진료과목 선택의사에게 진료지원과 선택진료에 대한 '포괄위임'을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이번 사건의 또 다른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포괄위임을 인정할 현실적 필요성이 있다"고 못박았다. 주진료과의 선택진료 담당의사는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진료지원과 의사에게 검사·영상진단·방사선치료 등을 의뢰하고, 그 결과에 따라 환자에 대한 치료방법과 범위 등을 결정한 뒤 치료한다.

따라서 신속하고 효율적인 치료를 위해 주진료과목 선택의사에게 진료지원과 선택진료에 관한 포괄위임을 인정할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복지부는 "환자들이 진료지원과 의사들을 알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의사 선택권을 적정하게 행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으나, 재판부는 "병원측이 환자에게 포괄위임에 대해 설명하고 동의를 받은 사실이 인정된다"며 그 같은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삭감 우려해 환자에게 청구…'위법'

행정법원 재판부가 이번 사건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 대해 병원측 주장을 수용한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급여기준·허가사항을 위반한 의약품 가운데 복지부가 나중에 성모병원의 투약 방법대로 기준을 바꾼 몇 가지 약품을 적시하며 "적어도 이들 의약품은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볼 여지가 있다"고 밝힌 것이다.

그런데 재판부가 복지부의 환수·과징금 부과 처분을 모두 취소하라고 주문한 것은 법원에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의학적 타당성이 인정되는 의약품 등에 대한 환수액·과징금을 구체적으로 산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지부는 재판부가 의학적 타당성이 있다고 인정한 진료행위 이외의 건수를 모아,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재판부가 성모병원이 행한 모든 진료행위에 대해 그 타당성을 인정한 것은 아닐지라도, 의학적 임의비급여의 현실적 불가피성을 받아들인 판결의 의미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재판부는 또 급여기준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이뤄진 진료비용을 공단에 청구하지 않고 환자측으로부터 징수한 행위는 모두 '위법하다'고 판시했다. 과거 동일한 진료행위에 대한 진료비 삭감 사례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진료비 삭감을 예상해 환자로부터 전액 본인부담금으로 징수하는 행위는 위법하다는 것이다.

성모병원의 소송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학기 교수(소아청소년과)는 "우리가 모든 것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한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단지 의사가 자신의 양심과 학식에 따라 환자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선택한 의료행위를 단순한 기준·규정의 획일적인 잣대로 재단하지는 말아달라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제부터 시작…민사소송 등 '첩첩'

한 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이번 사건을 담당한 서로 다른 재판부가 거의 동일한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는사실이다.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 중 건강보험분에 대한 소송은 서울행정법원 제1부(재판장 한 승)가, 의료급여분은 제3부(재판장 김종필)가 각각 맡았다.

두 재판부가 판결문을 통해 의학적 임의비급여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그 요건과 범위를 제시한 부분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서울행정법원 최의호 행정공보판사는 "동일한 사건이 서로 다른 재판부에 배당된 경우, 실무적인 차원에서 협조할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판결 내용에 대해 서로 합의를 한다거나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재판부의 독립성을 강조했다.

의학적 임의비급여에 대한 이번 법원 판단에 신뢰성을 더해주는 부분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다. 이제 막 1심이 끝났을 뿐이며 복지부가 항소 방침을 굳히고 있어 사법부의 최종 판결까지는 험난한 여정이 남아있다. 게다가 성모병원이 복지부로부터 환수당한 진료비와 납부한 과징금을 돌려받으려면 민사소송을 따로 제기해야 한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대형병원들과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다투고 있는 '원외처방약제비 소송'의 전철을 밟게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이렇게 될 경우 전망은 매우 불투명하다.

서울대병원의 경우 행정소송을 통해 '의학적 타당성 등을 고려하지 않은 공단의 약제비 환수조치는 무효하다'는 대법원 확정판결을 받고, 환수당한 41억여원을 되찾기 위한 민사소송을 제기, 1심에서 이겼으나 고등법원에서는 패소했다.

사건과 관련된 모든 처방 건수마다 일일이 의학적 타당성을 증명하라는 법원의 요구를 총족시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원외처방 약제비 소송을 맡고 있는 대외법률사무소 관계자는 "성모병원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민사소송으로 갈 경우 병원측으로서는 결코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공중파 시사프로그램에 방영될 정도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성모병원 임의비급여 사건. 의사와 환자, 정부를 둘러싼 현실과 제도 사이의 힘겨운 줄다리기는 내년에도 계속 이어질 전망이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