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을 위한 바른 소리, 의료를 위한 곧은 소리
updated. 2024-04-20 06:00 (토)
진정 '국민의 봉'이고 싶어라

진정 '국민의 봉'이고 싶어라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1.27 10:15
  • 댓글 0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밴드
  • 카카오톡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박광선(제7대 보건복지가족부 중앙배치기관 공중보건의사협의회 대표)
최근 여러 현안에 있어 공중보건의사를 배치하여 무리하게 활용하려는 시도들이 논란이 되고 있다. '신종플루 예방접종 사업'에 공중보건의사를 차출하는 것과 '응급실 만취자 치료'에 공중보건의사를 쓰겠다는 발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신종플루 대유행'이라는 재난 상황에 공중보건의사들이 묵묵히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은 분명 국민에게 인상 깊게 각인되어, 보람으로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수천 명의 환자들을 만나 예방접종 예진을 해야 할 공중보건의사들에게 신종플루 백신 우선접종도 하지 않은 채, 이상반응에 대한 대책과 면책 여부에 대한 명확한 지침도 없이 일방적인 차출을 종용하는 행정은 현장의 많은 선생님들을 분개케 했다.

경찰 공권력 낭비를 막겠다는 취지로 발의된 '주취자 처리에 대한 구호조치'의 운영에 공중보건의사를 배치, 활용하겠다는 발상 역시 허탈한 웃음만 짓게 한다.

가뜩이나 만취자로 인해 원활한 진료가 방해되는 경우가 다반사인 응급실 상황에서 이 제도가 무조건 떠넘기기식으로 남용될 소지가 다분하다는 비판은 경찰 공권력 강화라는 미명하에 그냥 묻혀버린다.

위의 두 문제는 복잡다난한 의료 현장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 본질은 외면한 채 미봉책만으로 임하려는 정책집행자의 안일함과 공중보건의사는 언제나 동원할 수 있는 값싼 대체 의료인력이라는 인식이 그 근저에 자리잡고 있기에 불거진 것이다.

700만명이 넘는 대규모 학교 예방접종을 진행하기 위해 사전에 민-관의 긴밀한 협조가 필요했음에도 '최대한 단기간 내 완료'라는 현상에만 집착한 나머지 '충분한 인력 확보'를 통해 '안전한 예방접종'이 이루어지도록 하여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는 문제의 본질은 간과되었다.

'응급실 만취자 치료'에 공중보건의사를 배치, 활용하겠다는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지금도 응급실 내 만취자의 난동에 대해 경찰 공권력의 개입이 미미한 상황에서, 경찰관이 경고해도 위험성이 해소되지 않는 만취자를 인계한다면 의료진 뿐 아니라 많은 응급의료를 제공받는 환자들이 위험에 노출되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응급실은 분초가 시급한 '응급하고 위중한' 상태의 환자에 집중하는 곳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오히려 만취자들의 응급실 난동에 경찰공권력이 보다 책임감있게 개입해야 하는 것이 문제의 본질인 것이다.

더불어 만성알코올중독자, 상습 만취 난동자에 대한 중장기적인 관리 및 대책 수립이 필요함에도, 알코올상담센터 예산을 폐지하고 통합 운영하겠다는 정부 방침은 이러한 문제의 본질과 한참 비켜서있다.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노라면, 붕어빵에 붕어가 있다며 본질을 외면한 채, 현상에만 집착하는 작태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리는 슬프다. 우리로 인해 문제의 본질이 은폐되고, 오히려 문제 해결이 더뎌지는 모습에, 죄인이 된 듯하다.

우리 공중보건의사는 진정 국민의 '봉'이고 싶다. 섬에서, 산골짜기에서, 사회복지시설에서, 공공의료기관에서, 교도소에서, 극지에서 우리는 오늘도 묵묵히 자리를 지킨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누구의 '봉'인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기사속 광고는 빅데이터 분석 결과로 본지 편집방침과는 무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