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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낙태 천국, 그동안 의사로서 무엇을 했나?
시론 낙태 천국, 그동안 의사로서 무엇을 했나?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30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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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승희(산부인과 전문의·진정으로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의사들 모임 회원)

낙태시술을 옹호하고 낙태시술이 여성을 도와주는 시술이라고 주장하시는 선생님을 만날 때면 그분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정녕 낙태시술을 받으러 온 여성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자신의 아이를 없애는 것이라 생각하는지, 그녀는 그 아이를 낳아서 기르지 않고 낙태시술을 받을 수 있는 것에 더 행복해 하는지….

혹시나 그녀들이 원하는 것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자유롭게 낙태를 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 어떤 임신도 축복받는 사회인 건 아닌지, 임신이 고통과 고난과 수치가 아닌 기쁨이고 자랑인 그런 사회를 원하는 건 아닌지….

여성이 자신의 모성을 부인하고 마취된 채 수술대에 올라가 평생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안겨주는 것이 여성을 도와주고 여성의 권리를 지키는 것이라고 표현되는 의사들의 아전인수격인 해석에 솔직히 할 말을 잃는다.

낙태시술을 필요한 일이며 마치 의사 자신의 이익보다는 시술받는 여성을 위해 봉사하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여성을 도와주고 여성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한낱 의사들의 자기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아는 여선생님은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서 임신된 아이를 포기했고 그 후로 십여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자신의 마음 한 구석에 후회와 자책감으로 항상 죄인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겠다고 심정을 토로하셨다.

낙태시술이 여성의 당당한 권리라면 그런 죄의식은 필요없는 것일텐데도 실제로 낙태시술을 받은 많은 여성들이 심리적 정신적 후유증을 앓고 있다는 보고도 있고, 종교단체에서 낙태시술후 정신적 후유증을 치료하는 프로그램들을 운영하는 것을 보면 낙태시술이 그리 당당한 권리도, 여성을 돕는 일도 아닌 것 같기 때문이다.

사회적·경제적인 이유로 행해지는 불법낙태 시술을 반대하는 운동이 시작되면서 산부인과 의사사회 내에서 낙태시술을 반대하는 의사들보다 낙태시술을 옹호하는 의사들의 목소리가 더 당당하고 크다는 현실에 정말 깜짝 놀랐다.

낙태시술을 안하는 선생님들은 오히려 조용히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떠들어대지 않는데, 엄연히 법적으로 불법이며 윤리적으로도 문제가 있는 불법낙태시술을 하고 있는 의사들은 부끄러워하지도 범죄라는 인식도 없는 것처럼 소리를 높인다.

중환자실에서 치료중단을 선언하며 인공호흡기를 떼거나 심폐소생술을 하던 환자에게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을 하지 않기로 결정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이 괴롭고 안쓰럽고 안타까운 심정이 드는데, 오히려 펄떡펄떡 심장이 뛰고 있는 태아를 짓이기는 일에는 왜 이토록 무감각해진 걸까? 그 태아를 짓이기는 이유가 산모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닌 단지 산모의 경제적·사회적·개인적 이유에 의해서인데도 말이다.

사회경제적 문제와 생명의 문제가 서로 상충되었을때 의사로서 무엇을 우선순위로 두어야하는 지는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다.

아이 하나 더 키우기 힘들어서, 미혼이라서 아이 낳는 게 내 인생의 짐이 되는 게 싫어서, 학생이라 공부해야 하니까, 내가 성공하는 데 육아는 걸림돌이 되니까, 그런 생명과 멀찌감치 떨어진 단지 '싫다' '곤란하다' '힘들다'는 이유와 심장이 벌떡벌떡 뛰고 어떤 경우는 사지 멀쩡하게 자신의 탄생을 기다리며 엄마의 자궁속에서 자라고 있을 태아의 생명이 서로 상충되었을 때, 의사인 우리들은 무엇을 선택해야하는지가 논란이 되고 있는 현 대한민국의 의료윤리는 한심하기 짝이 없다.

우리가 자궁속을 긁어주는 시술이나 하는 테크니션이 아닐진대 이런 선택이 논란속에 있다는 것 자체가 우습지 않은가? 말 못하고 저항하지 못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짓이겨지고 찢겨지고 사라져간 작은 생명들의 피울음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가?

의사는 의심의 여지도 없이 생명을 지키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한다. 생명을 지키는 것보다 환자의 사회적·경제적 상황이 더 중요할 수 없다. 또한 사회적·경제적 문제는 의사가 해결해 줄 수도 없기에 그것이 기준이 되어서도 안된다.

그런 문제는 정부와 사회가 풀어야할 문제이고 그들이 해결해야 할 일들이며 그들의 임무이다. 우리는 정부 정책자의 입장이 아니라, 사회학자의 입장이 아니라, 일반 국민의 입장이 아니라 바로 생명을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기로 약속한 의사로서 판단해야 한다.

처음 의업을 선택하기로 한 순수했던 초심으로 돌아가 의사 본분에 맞는 원칙과 기본에 충실한 대답을 찾아야 한다.

낙태를 옹호하는 산부인과 의사들의 또 다른 잘못은 임신을 바라보는 그들의 관점이다. 그런 선생님들의 낙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전제조건에는 임신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있다. 이 임신은 잘못된 것으므로 바로잡아야하고, 문제이므로 해결해야하고, 고통이므로 벗어나게 해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거다.

다른 과도 아닌 임신과 출산, 모성을 존중하고 모성을 지켜야할 산부인과 의사가 생명잉태를 부정하고 모성이 파괴되는 것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불법낙태시술이 너무나 쉬운 일이 되고 연간 35만건 이상의 낙태시술이 이루어지는 현실에서, 한 여성의 딱한 처지를 돕는다는 자기합리화와 변명을 하며 오히려 여성에게 임신이 고난과 고통이며 실수로 여기게 하는 이런 사회의 분위기와 여성에게 출산보다는 낙태를 선택하게 강요하는 모성이 짓밟힌 대한민국을 유지시키고 부추기는데, 모성을 지켜야할 산부인과 의사들이 그동안 공범자로 살아온 것은 아닌가?

이제 겸허한 자기성찰이 필요한 때이다.

※ 이 글은 의협신문의 입장이나 편집 방침과 같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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