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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 파당의 지진 현장에서(상)

인도네시아 파당의 지진 현장에서(상)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26 0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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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의동(진해복음외과)
2009년 9월 30일에서 10월 7일까지 인도네시아 파당에서 의료 선교차 9월 30일 오전 10시 35분에 출국하여 자카르타에 오후 3시 30분에 도착했다.

당일 갈 수가 없어서 10월 1일 오전 6시 10분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 호텔에 머무르고 있는데 오후 5시 15분쯤에 진도 7.6도의 강진이 파당에 터졌다는 것이다. 당일 저녁에는 공항이 폐쇄되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공항엘 갔더니 탑승수속을 하는 것이다. 공항이 열린 후에 첫 비행기로 파당에 도착한 첫 의료 응급 구호팀이 된 것 같았다. 비행기는 한 좌석도 빈 좌석이 없이 꽉 차있었다. 사실 의료 선교차 이곳을 방문하는 길이었지만 응급 상황이 발생하여 응급 의료 구호팀으로 변신을 하게 된 것이다.

▲ 의료선교활동을 위한 출국을 앞두고 공항에서(사진 왼쪽)

10월 1일 첫 방문한 곳은 국군병원(소디 위르요병원)이었다. 차량을 빌려준 호텔 주인이 자기의 직원이 호텔이 무너지면서 중상을 입고 국군병원 응급실에 있는데 그 환자를 보아달라고 해서 이곳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곳은 시내의 응급 환자가 다 몰려오는데 군의관들이 경험이 없어서인지 이 환자들을 처치를 못하고 복도에 즐비하게 뉘여 놓고 있었다.

차량을 빌려준 분의 직원을 보고 그렇게 중상이 아니라고 알려주고 진통제와 약을 투약해 주었다. 그 후 응급실로 가서 병원장을 만나서 한국에서 온 외과의사라고 나를 소개하고 도움을 주고 싶다고 하니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터이라 도와 달라고 한다.

외상 환자들이 주된 환자이므로 창상을 봉합해 주고 골절이 의심되는 환자는 깁스를 해 주었다. 전력 공급하는 곳이 지진이로 피해를 보게 되어서 전기와 전화등 모든 기능이 없는 상태였다.

나의 외상환자의 처리 능력을 병원장이 보고 자기들 군의관보다 월등한 것을 눈치채고 병원장이 중환자를 계속 진료하게 하니 약 3∼4시간이 지나서 응급실이 정리가 되었다.

▲ 진료에 여념이 없는 김의동 원장

나는 국제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에 여러번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들보다 수월하게 일도 처리하였고 외과적 술기등이 외과의사 30년의 세월 때문이라도 인도네시아 군의관들보다는 우월할 수 밖엔 없었다. 사실 후진국의 외과 기술력은 정말 뒤떨어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파키스탄 대지진때에 발라코트에서 파키스탄 군의관들과 진료를 한 경험이 있어서 이들의 외과적 기술을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인도네시아 의사들의 외과적 술기 또한 많이 뒤떨어져 있음을 알게 되었다. 거의 응급 환자가 정리된 후에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한다고 청소를 하고 난리 법석이다.

우리나라와 비슷한 모습을 보고 우리도 한때는 대통령이 오신다고 하면 저랬는데 하며 씁슬한 웃음을 지었다. 환자가족들이 나의 진료하는 모습을 보고 자기 가족도 보아 달라고 한다.

입원실에 있는 환자라 조금은 조심스러웠다. 담당 군의관이 기분이 나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약간의 담당 군의관과의 신경전도 벌이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한 최대한 그들을 돕게 되었다.

지진으로 모든 호텔과 식당등이 다 부서진 상태라 머무를 곳을 정한 상태는 아니지만 병원을 떠나서 나오려는데 병원장이 나를 잡으며 이곳에서 계속 도와주기를 요청한다.

일행이 11명이라고 하니 조금 난색을 표하면서 그러면 지진의 진앙지에 가서 도움을 주었으면 한다. 그곳에는 의사들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일월에 의료 선교차 왔다가 진료 중 쫓겨났던 곳이었다. 파리아만이라는 지역인데 외국인에게 아주 배타적인 장소였다. 그래서 병원장의 소개장을 부탁해서 받고 내일부터 그곳에서 진료하기로 하고 시내에 숙소를 찾아 나서야 되었다. 다행히 먼저 나갔던 일행이 호텔을 하나 찾았고 거주 하게 되었다.

경찰이 운영하는 호텔이었는데 자가발전으로 전기도 들어오고 지하수도 공급이 되어서 샤워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진으로 전기와 수도 공급이 끊어지고 통신마저 되지를 않아 여간 활동이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 폐허간 되어버린 '파당'시내 모습

건물의 붕괴등으로 식사할 식당이 없어 한국에서 가져간 밑반찬은 있는데 밥을 구할 수가 없는 차에 메단에서 어제 못 들어 온 선교사님이 먹을 양식을 가지고 올 수 있게 되어서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온 기자들과 방송팀들 그리고 여러 NGO들에게 식사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매일 아침 7시에 숙소를 출발 하여 2시간을 차로 달려가서 지진 피해 지역의 외상환자들과 일반 환자들을 저녁까지 진료하고 숙소로 돌아오곤 했다.

지진이 발생하니 주유소에 기름을 넣기 위해서 차, 오토바이와 기름통을 든 많은 사람이 주유소에 몰려서 인산인해를 이루는 통에 길이 막히고 기름도 한사람에게 10리터만(50,000루피아) 판다고 한다. 우리가 타고 다니는 차는 밤에 줄을 서서 네 번에 걸쳐서 기름을 주유해야 하루를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하루는 경찰이 도움을 주어서 기름을 가득 채워서 쓸 수 있기도 했다.

큰 지진이 발생하면 집이 완파된 분들이나 조금 무너진 분들도 집 속에서 주거가 불가능하고 밖에서 텐트 생활을 해야 된다. 후속으로 일어나는 여진 때문에 다시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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