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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뻔 하다 살아난 내 아들

죽을 뻔 하다 살아난 내 아들

  • Doctorsnews kmatimes@kma.org
  • 승인 2009.10.16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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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해숙(서울 중랑·고운나래산부인과/전정으로산부인과를 걱정하는 사람들 모임 회원)

나는 의과대학 졸업 직후에 결혼했다.

1년 인턴십을 끝낸 뒤 쉬면서 레지던트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어느 봄날, 나는 내가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순간 기쁨보다는 앞이 캄캄해짐을 느꼈다. 분만예정일이 12월인데, 그러면 배부른 몸으로 공부하고 시험보고 면접을 봐야했다.

여자 의사 선발을 기피하던 당시 의료계 현실에서 그것도 배부른 임부가 지원을 한다고 하면 받아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나는 남편과 상의 끝에 임신중절을 하기로 결정했다. 어린 마음에, 생명의 소중함보다는 우선 눈앞의 현실만 생각했던 것 같다.

힘들게 힘들게 찾아간 산부인과. 내가 의사라고 밝힐 수는 없는 노릇이라 직장 때문에 지금 아기를 낳을 수 없다고 선생님께 말씀드렸더니, "아기 안낳고 1년간 벌면 얼마나 더 벌 것 같아요?"라고 말씀하시는 의사 선생님. 초음파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아기가 이렇게 건강하게 잘 크고 있어요.

그래도 수술하실래요?"라고 하셨지만, 이미 굳은 결심을 하고 온 나의 마음을 움직일 수는 없었다.

그러나, 그 다음에 이어지는 선생님의 한 마디가 또 눈앞을 캄캄하게 만들었다.

"그럼, 오늘 자궁문이 열리도록 준비해서 내일 수술해야 합니다."

자궁문이 열릴 수 있도록 준비한다는 말은 라미나리아를 넣는다는 말인데, 나중에 후유증이 생기면 어쩌나 하는 겁이 덜컥 나면서 염려도 됐다.

나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보고 오겠노라고 말씀드리고 허겁지겁 산부인과를 나와서 남편과 다시 상의를 했다. 그리하여, 우리는 철없는 결정을 철회하고 아기를 낳기로 생각을 바꿨다. 고향으로 내려가서 산부인과를 지원했고, 배부른 몸으로 열심히 공부했다. 그리고 시험도 보았다.

1차 시험에 합격하고 면접을 보는데 면접 날짜는 분만예정일을 일주일 앞둔 때였다. 면접 전에 진통이 올까봐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진통 전에 면접을 끝냈다. 면접이 끝난 날 석양 무렵, 이슬이 보이기 시작했고 진통이 시작되면서 다음날 새벽에 나는 건강한 아들의 얼굴을 보게 되었다. 또, 시험에도 합격했다.

아들은 그렇게 드라마틱하게 이 세상에 태어난 녀석이다. 이제는 키가 180cm가 넘게 커서 '엄마'하며 나를 내려다보는 녀석을 보고 있노라면, 잠시였지만 아이의 생명을 내 마음대로 없애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곤한다.

최근 여러 이유로 낙태가 늘어나고 있고 심지어는 우리나라가 '낙태공화국'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가운데 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낙태 근절 운동'의 불이 지펴지기 시작했다.

가임기 여성을 접하는 현장에 있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죽을 뻔한 아들을 둔 엄마로서 귀한 생명들이 소중히 여김을 받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돕고 싶은 마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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